BIT & BEAT BLUE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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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 & BEAT BLUEDAC
  • 월간오디오
  • 승인 2016.06.01 00:00
  • 2016년 6월호 (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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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을 주는 D/A 컨버터

세상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의 이유, 방안에서 조용히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 라는 파스칼의 아포리즘에 가장 심미적으로 부합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 오디오 애호가 아닐까. 하지만 겉보기는 음풍농월의 우아한 한량의 취미 같아 보이는 이 온유하기 그지없는 청음 행위의 본질에, 피가 흘러넘치는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청각의 음모와 농간이 개입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오디오의 수렁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정신없이 빠른 패시지에서도 한 음 한 음 치밀하게 연주를 수놓아 가는 연주가의 열정과, 그들의 연주에 깃든 음표들의 공명을 섬세하고 투철한 분석력으로 음미하는 오디오 애호가의 열정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취미 영역 중에서 청각이 중심이 되는 오디오만큼 실로 난해하고 주관적인 취미도 거의 없을 것이다. 소리에는 명확한 실체가 없고 한 번 들었던 소리가 동일한 컨디션에서 재생된다 하더라도 동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같은 시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똑같은 오디오로 같은 음반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평가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시각이나 미각처럼 어느 정도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는 감각들을 기반으로 하는 취미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오디오라는 취미가 헤어나기 힘든 마력을 지닌 것도, 아마 딱 떨어지는 솔루션을 기대할 수 없는 무변광대한 세계에서 외로운 싸움과 타협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소리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속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많은 질문들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질문들 중에는 어떤 책이 재미있는지 어떤 영화가 감동적인지 어느 연주자의 어떤 음반이 좋은지 등의 선택과 추천을 요하는 부분도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오디오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는 대략 난감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어떤 냉장고가 좋아요?’, ‘컴퓨터 모니터는 어떤 게 좋을까요?’ 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예산과 선호하는 음악 장르에 맞춰 적당한 것을 추천해 주긴 하지만 나중에라도 원망을 듣게 되진 않을까 불안감과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얘기한 청각이라는 감각의, 밑도 끝도 없이 광대한 주관적 스펙트럼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취미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고수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게 되고, 가끔은 오디오 숍 주인이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취미로, 업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오디오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일을 해 온 경험이 있는 내게도,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하게 시스템을 선택하거나 조언해 주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차라리 어떤 오디오의 음질이 좋으냐는 질문보다는 어떤 오디오의 스펙이 더 좋으냐는 질문이 편하다. 그렇게 범위를 한정 짓는다면, 부담 없이 제안 가능한 다양한 제품의 목록을 얼마든지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디오 잡지 기자로 있으면서 하루 종일 스펙만 정리하던 때가 있었다. 수입사에서 팩스나 메일로 보내오는 영문 스펙의 Frequency Range를 주파수 응답 특성, S/N Ratio를 신호 대 잡음비 등으로 바꾸어 표기하는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대체 이따위 스펙을 보고 오디오를 고르는 인간들은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족속들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자신에게 맞는 좋은 오디오를 고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음악을 듣고 연주회를 찾아다니고 오디오 비청회도 참여해 보고 다양한 매칭을 시도하면서 내공을 쌓아야 한다. 이 정도의 수고는 비단 오디오뿐만 아니라 소위 ‘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해당 분야를 섭렵하기 위해 임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덕목이어야 한다.
사족이 길었지만 이러한 고독과 방황도 그나마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오디오 애호가들이 누릴 수 있었던 마지막 사치이자 낭만이었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 된다. 음반이 아니라 음원 재생이라는 다소 삭막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음원 재생에 필요한 오디오의 스펙도 예전보다는 정형화되고 있는 것을 본다. 회로 중심이 아니라 모듈과 칩 기반의 기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초저가 제품들이 하이엔드를 위협하는 대항마로 떠오르는 것은 물론 오디오에 대한 가치 평가의 기준과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것을 체감한다. 우리가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구매할 때 사양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듯, 컴퓨터가 재생의 근간이 되는 디지털 시대의 오디오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스펙의 역할은 아날로그 기기들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는다.
비트 & 비트 BlueDAC(이하 블루댁). 지금 내 눈앞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이 기기의 스펙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잡설을 늘어놓고 말았다. DAC를 사용하면서부터는 스펙 비교가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 기기의 가격과 비슷한, 혹은 더 고가 제품들의 스펙을 뒤져 보아도 이 기기가 제시하는 스펙만큼 매력적인 것은 별로 없다. 검색이 주특기인 내가 잡지와 온라인을 뒤져 봐도 이 가격에 이런 사양, 그리고 이런 음질은 납득 가능한 수준을 이미 상회하고 있다.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DAC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은 빼놓지 않고 모조리 챙기려 드는 폼이 기특하다. 블루댁은 정말 다양한 입·출력 단자들을 구비하고 있다. 디지털 입력으로 USB, 동축, 광, 밸런스(AES/EBU) 단자들이 달려 있고, DDC(Digital to Digital Converter)의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디지털 출력을 강화시켰으며, 아날로그 출력으로 언밸런스와 밸런스를 모두 장착하고 있다. 동봉된 매뉴얼을 살펴보니 핵심 부품은 X-MOS 칩셋 / ESS9018 DAC. 블루댁은 DSD 음원, 그것도 최근까지 접한 대부분의 제품들이 DSD128(5.6MHz)까지만 지원하고 있는 데 반해 DSD256(11.2MHz)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정도 가격에서는 내가 알기론 드문 사양이다.
에르메스 박스를 연상시키는 주황색의 고급스러운 박스를 열면 제품과 함께 USB 케이블, USB 메모리, 블루투스 안테나가 들어 있다. USB 메모리에는 블루댁으로 USB 연결을 처음 실행할 때 컴퓨터에 설치하는 드라이버 파일이 저장되어 있는데 설정 방법은 쉽다. 블루댁을 USB로 연결하면 자동 인식하고 USB에 들어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만 하면 되는데, 조금 있다 작업 표시줄에 생긴 아이콘을 클릭하면 PC 음원을 보내는 방식 등을 지정할 수 있다. 32비트/384kHz의 초고해상도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일반 음원을 재생할 때에도 32비트/384kHz로 업샘플링되어 출력되는 점 또한 이 기기가 가진 기특한 부분 중 하나다. 보통 고해상도가 지원되더라도 일반 음원 재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지만 디지털 신호를 업샘플링 전송하는 것은 음질적으로 분명 도움이 된다.
블루댁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제품은 블루투스를 지원하고 있다. 최신 코덱인 apt-X 방식을 채용해 예전에 블루투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가볍게 깨부수는 반전의 음질을 들려준다. 빽빽하고 고역만 강조된 음질일 거라 예상했지만 꽤나 풍성하고 중역대가 살아 있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의 재생에 제대로 한 방 먹은 기분이다. 다양한 입력으로 며칠 동안 음악을 듣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에이징의 묘미까지 제대로 살아나서 미소 짓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감성과 낭만은 있다. 우리가 좋은 소리로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와 가치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소형, 고성능, 저렴한 가격의 이런 기기를 만나면 모래알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라 반갑다. 더더군다나 한국 제조사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차기작이 기대되고, 앞으로의 행보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85만원   디지털 입력 AES/EBU×1, Coaxial×1, Optical×1, USB B×1  
USB 입력  PCM 32비트/384kHz, DSD 64/128/256   디지털 출력 Coaxial×1, Optical×1  
아날로그 출력 RCA×1, XLR×1    블루투스 지원   크기 (WHD) 20.7×4.3×15.3cm    무게 1.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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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6년 6월호 - 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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