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청춘이 찾은 동갑내기 빈티지 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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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 청춘이 찾은 동갑내기 빈티지 오디오
  • 정재천
  • 승인 2024.05.09 10:27
  • 2024년 05월호 (622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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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권 씨
어릴 때 형님의 내쇼날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인수의 ‘산유화’에 매혹되어 떠나게 된 서해권 씨의 소리 여행에, 매킨토시의 빈티지 앰프와 알텍 스피커는 좋은 동반자가 되고 있다. 그의 오디오는 잔류 노이즈가 없는 최상의 상태로 가동되고 있고 요즘 생산된 제품이라 해도 믿을 만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한 장씩 정성스레 모은 가요 LP가 삼천 장에 달한다.

오래된 사물에서는 스쳐간 많은 손길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한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들려주기도 하고, 지난 시절의 회한이나 연민도 이야기한다. 빈티지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마치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엄마 품과 같은 따스한 온기가 이 물건에서 느껴진다. 오래된 오디오와 LP를 모으고 아끼는 서해권 씨의 부산 양정 자택을 방문했다. 퇴직 경찰 공무원인 서씨는 54평 아파트 공간 곳곳에 빈티지 오디오를 채우고 있는 진정한 마니아다.

서씨가 본격적으로 빈티지 오디오에 눈을 뜬 것은 부산의 오디오 동호회 모임인 ‘파도소리’를 통해서였다. 재생음의 질감과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소리의 미묘한 변화의 세계를 알려준 것은 동호인들의 하이엔드 오디오였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우리 가요 LP 컬렉션이 본격화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또한 LP가 발매되던 당시의 오디오 위주로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티지 오디오에 빠지게 되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그에게 물었다. 소리의 취향뿐 아니라 견고하고, 싫증나지 않는 외관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매킨토시와 마란츠 앰프 위주의 재생 기기를 수집하다 보니 스피커 제품 역시 이 제품들과 잘 어울리는 알텍, JBL 등의 빈티지 스피커를 애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위 명기라 지칭되는 매킨토시의 MC240, 275, 60 파워 앰프를 필두로, C22, 20, 11 등 모델 번호만으로도 애호가의 부러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리앰프가 거실과 세 개의 방에 가득하다. 이 외에도 마란츠 7 프리와 피셔 500B, 리복스 리시버가 넓은 아파트의 모든 공간에서 언제든 가요를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스피커는 JBL 4344과 알텍 A7, 말리부.

가요 LP 재생을 위한 삼총사. 왼쪽부터 가라드 401, 야마하 GT-2000X, 마이크로 세이키 DD100

LP 재생에 필수인 턴테이블은 가라드의 401 제품을 주력기로 사용하고 있다. 301 제품이 더 좋다고 평가되고 있긴 하나, 가격대가 401보다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재도색 등 변형된 것들이 많아 상태 좋은 301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가라드 401에 만족하고 있다. 최근 대대적인 정비를 거친 마이크로 세이키 DD100 턴테이블은 깔끔한 소리가 장점인, 또 하나의 주력기이다. 이와 함께 안방에 놓인 야마하의 GT-2000X 턴테이블은 플래터를 황동 포금(건메탈)으로 교환한 것으로, 늦은 밤 부인과 함께 가요를 즐기는 데 사용된다.

70년 세월을 이긴 매킨토시 50W-2

그의 빈티지 오디오 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매킨토시가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약 5년간 출시한 50W-2 모노블록 파워 앰프다. MC275를 밀어내고 거실 주력기로 자리 잡게 된 이유가 궁금했지만, 이 의문은 1969년 발매된 빅 파이브 중창단의 음반을 듣는 순간 바로 풀렸다. 알텍 A7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남성 중창단의 목소리가 너무도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퇴역 군인 손에 들린 도시락 같은 겉모습의 이면에는 이러한 소리가 숨겨져 있었다.

매킨토시 50W-2 파워 앰프 외관(왼쪽 사진). 증폭부와 전원부가 모노럴로 출시된 것이어서 스테레오로 꾸미려면 동일한 특성을 지닌 한쪽 채널을 더 구해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위 뚜껑을 벗겨낸 내부 모습이며, 밸런스 입력이 가능해 프로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사진은 두 개의 트랜스가 제거된 상태다.

매킨토시 50W-2 모노 파워 앰프에 대해 좀더 탐구해 보자. 이 앰프는 군용 통신 장비의 외관을 이어받는 듯 알루미늄 케이스 2개에 나뉘어 담겨 있고, 높이는 요즈음 출시되는 진공관 앰프의 두 배 정도다. 이 앰프가 높게 설계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모든 트랜스가 케이스 아래부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앰프의 하부에는 전원과 초크 부분, 출력 트랜스와 중간단(인터스테이지) 트랜스가 단단한 수지 물질로 각각 함침되어 있다. 70년의 세월을 이기고 이 앰프가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트랜스류의 내구성과 잘 함침된 수지의 역할이 클 것 같다. 실버 햄머톤 도장의 상판에 체결된 나사 네 개만 풀면 진공관 소켓과 저항, 커패시터, 와이어가 결선된 상·하부가 가볍게 분리된다. 회로 설계도 비교적 단순하다. 12AX7 쌍삼극관으로 위상 반전을 하고, 15㏀ 부하 저항 양쪽에서 위상이 180도 바뀐 신호를 각각 인출해 두 개의 6J5 드라이브 관으로 보낸다. 드라이브단의 신호는 중간단(인터스테이지) 트랜스를 거쳐 출력관인 6L6-G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생성된 높은 임피던스의 출력은 출력 트랜스를 거쳐 연속 최대 출력 50W로 스피커를 구동한다. 잘 만들어진 인터스테이지형 파워 앰프는 대역 분리와 높은 입력 감도로 인해 악기 간 분리가 좋은 장점이 있다. 여기에 소리의 밀도 역시 전 주파수 대역에 걸쳐 빈 곳이 없이 촘촘하게 소리를 재생한다.

20Hz 구형파 응답(왼쪽)과 20kHz 구형파 응답(오른쪽), 부품 열화가 진행 중인 한쪽 채널의 파형이 좋지 않다. 열화 부품을 교체한 후 비교해 보니 양쪽 채널의 파형이 같아졌다. 왼쪽의 20Hz 파형이 변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측정에 사용된 케이블의 임피던스 정합이 되지 않아서이다.

매뉴얼에 나타난 이 앰프의 특성을 살펴보자. 전 가청 주파수 대역에서 0.1dB 응답을 유지해 평탄하다. 이 때의 왜율도 1% 이하라고 하니 요즈음 출시되는 진공관 파워 앰프 못지않다. 좋은 품질의 중간단 트랜스를 채용하면, 광대역 주파수 특성은 유지하면서 앰프의 위상 특성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출력관을 좀더 쉽게 드라이브할 수 있으므로 더 나은 음질을 지닌 파워 앰프를 만들 수 있다. 매킨토시가 단권 이중 권선 특허를 등록하고 제작한 것이 1946년이다. 이처럼 좋은 특성의 앰프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숙된 트랜스 제작 기술이 있었다.

거실 오디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씨의 오디오 친구들, 좌로부터 조태은, 하명환, 정흥상, 서해권 씨다. 박헌중 씨도 참석했는데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다.

‘파도소리’ 오디오 동호회에서 수년째 ‘죽림의 가요사’를 강의하고 있는 서해권 씨의 알텍 A7 스피커에서는 프리단에서 넘어오는 미약한 화이트 노이즈만 들릴 뿐 귀를 대고 들어도 전원 험이 감지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얼마나 오디오 제품의 구동에 진심인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오늘도 서씨는 오디오 친구들을 초청해 가요를 즐긴다. 역시 가요는 적당히 높은 볼륨으로 여럿이 흥얼거리며 듣는 맛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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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24년 05월호 - 6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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