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SCA-7511 M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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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SCA-7511 MK3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16.05.02 00:00
  • 2016년 5월호 (526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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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이여

괜한 꾐에 빠졌구나. 털털거리는 코란도 뒷좌석에 앉아 1시간을 넘게 시달렸더니, 드디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는 늦가을. 밤이면 찬바람이 무척 거세다. 술 한 잔 마시자는 유혹에 몸이 끌렸지만, 확실히 양평은 멀기는 멀다. 그리고 무슨 오디오 카페람.
사연은 이렇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알고 지내는 앰프 메이커 한 분이 아주 흥미로운 제품이 하나 있으니 함께 들어보자고 연락이 왔다. 양평에 있는 어느 오디오 카페에서 시연회를 하는데, 마침 제작자도 와 있다고 한다.
시연도 듣고, 술도 한 잔 하고, 얼마나 좋냐는 것이다. 평소 자기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한 그 분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에 왜 이리 열광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도 술이지만, 그 신비의 제품에 대한 궁금증도 사실 무척 컸다. 아무튼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무려 1시간이나 넘게 코란도에 시달렸던 셈이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어느 후미진 강변. 그래도 꽤 큼직한 카페 안에는 진지한 얼굴로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이 가득했다. 조명을 낮게 한 가운데,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교향곡의 느낌이 꽤 괜찮았다. 그 너머로 백발의 신사 한 분이 지그시 눈을 감고 음을 듣고 있었는데, 그 외모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분이 바로 나가이 상이었다.
한데 매칭된 스피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mbl의 북셀프. 상당한 고가에다가 울리기가 무척 까다로운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을 풍성한 음으로 가득 채웠다. 대체 앰프는 뭔가 기웃거리다가 또 한 번 놀랐다. 첫 대면상으로는 손바닥만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파워가 나올까? 또 저 고급스런 음색은 또 뭐람?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어찌어찌 나가이 상을 알게 되고, 사트리 회로에 대해 듣고 나서도 여전히, 아니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하다. 고작 10W의 출력으로, 어떻게 저런 낭랑하고, 기품 있는 음이 연출될 수 있을까? 스펙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MK3라는 형명에서 알 수 있듯, 본 기는 SCA-7511의 세 번째 버전에 속한다. 참고로 본 기는 모노럴 제품도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출력은 30W가 아닌 21W다. 좀 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S/N비라던가, 노이즈라던가, 여러 부분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려는 나가이 상에게 있어서 21W는 절체절명의 숫자이다.
예전에 들은 제품은 실은 KR이라는 모델명을 갖고 있었다. 대략 2007년경까지 생산되었다가 이듬해에 SCA-7511 MK2로 진화하여 판매되었고, 2012년에 세 번째 버전에 이른 것이다. 즉, 양평의 카페에서 들은 것은 KR이고 이번에는 무려 10년이 넘는 간격을 두고 최신작을 듣게 된 것이다. 이래저래 감회가 새롭다. 마치 첫사랑의 달콤한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이다.
사실 본 기의 내력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 처음 KR을 취급하던 회사는 얼마 후에 사라졌고, 당연히 그 카페도 문을 닫았다. 또 MK2 시절은 지독한 엔고 시대라 원화로 계산하면 전작보다 무려 2배 가량 비싸졌다. 공식적인 수입상도 없는데다가, 가격마저 올라서 이래저래 우리와 인연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수입선이 새로 정비되고, 2012년을 기점으로 전 제품이 새로 버전업되면서 드디어 우리 곁을 찾은 것이다.
그럼 왜 2012년인가, 이 시기가 중요하다. 바로 전 해인 2011년에 동경 대지진이 발생, 그 지역의 숱한 부품 가공 업체가 문을 닫아서 부품의 수급이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즈음, 나가이 상의 회로라던가 여러 노하우가 만개하면서, 더 범용적인 부품으로 제품의 퀄러티를 올릴 수 있는 솔루션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히 MK3로 바꾸면서 놀라운 업그레이드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우선 출력이다. 이전에는 클래스A 방식으로 10W였는데, 이제는 클래스AB로 15W를 내게 만들었다. 이렇게 쓰면, 무조건 클래스A가 AB보다 좋은 것 아니냐, 그러니까 ‘결국 타협한 것이 맞다’라고 반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들기 나름이다. 요즘처럼 하이 스피드와 와이드 레인지를 지향하는 시대에서 클래스AB가 가진 강점이 무척 많다. 이 부분을 최적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 개발한 바이어스 고정 회로를 투입한 것이다. 아니 TR에서 무슨 바이어스 고정?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실제로 TR도 진공관처럼 바이어스가 확고하게 되었을 때 더 뛰어난 음질을 구현한다. 지렛대의 중간을 고무줄로 묶은 것과 베어링으로 고정한 것의 차이를 떠올려 보라. 확고부동한 바이어스가 바로 놀라운 스피커 구동력의 비밀이라고 한다.

둘째는 새로운 높은 집적도의 SATRI-IC를 투입한 것이다. 사트리 회로를 작은 칩에 모듈화한 것인데, KR 시절에 투입한 칩은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고, 이후 SP(슈퍼 프레시전)과 EX(엑스트라) 버전을 거쳐서, 한국에 수입되는 제품에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UL(울티메이트) 버전을 탑재하기에 이른 것이다. TR의 집적도가 2배 이상 상승했다고 보면 좋다. 측정 장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밀도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을 때 왜율이 고작 0.00002%에 불과하단다.
셋째로, 비록 엔트리 클래스의 저가 모델이지만 한국에 수입되는 제품은 특주 사양으로 동사가 자랑하는 전류 전송 방식을 투입했다. 상급기가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전류 전송 방식의 장점은 외부 노이즈의 영향이 없을 뿐 아니라 손실 없는 정보 전달이 가능하고 빠른 스피드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추가로 언급할 것은 바로 헤드폰 단자. 바쿤은 앰프나 DAC뿐 아니라, 헤드폰 앰프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실 미세한 신호를 컨트롤하면서 양질의 증폭을 추구한다고 할 때 동사가 갖는 장점이 풍부하게 발휘될 수 있는 분야가 헤드폰 앰프다. 바로 그 장점을 여기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피셔 & 피셔의 SN370란 모델을 사용했다. 고강도의 독일산 슬레이트 인클로저를 자랑하는 스피커인데 울리기가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음질에서는 특필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소스기는 메리디언 500 CD 플레이어.
첫 곡으로 과감하게 정명훈 지휘, 말러의 교향곡 2번 1악장을 들었다. 이런 사이즈에서 언감생심이라 하겠지만, 의외로 재생되는 품새가 흥미진진하다. 바닥을 두드리는 저역과 휘몰아치는 음의 홍수까지는 아니지만,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다이내믹스와 해상도가 제대로 그려진다. 특히, 유려한 바이올린군의 재생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빠른 반응도 인상적이다. 이 정도면 하이엔드급 재생이라 해도 좋다.
이어서 게이코 리의 ‘Night & Day’. 참고로 계속 볼륨을 올리는 데도 전혀 음의 일그러짐이 없다. 다섯 시 방향에 놔도 적막강산이다. 신기한 일이다. 보컬의 경우, 약간 허스키하면서 노스탤직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베이스 라인이 또렷하고, 드러밍 또한 명료하다. 우아한 브라스 섹션의 움직임도 정겹다. 볼륨을 낮춰도 전체적인 구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Brothers in Arms’. 스케일이 크고, 악기 수도 비교적 많은데,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특히, 사색하듯 자유롭게 핑거링하는 일렉트릭 기타의 존재감이 빼어나다. 뒤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신디사이저는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 다소 텁텁한 노플러의 보컬에서 살짝 달콤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 감상에 몰두하게 된다. 이제 눈을 감고 차분히 음악에 빠지면 된다. 그러고 보니 양평의 그 카페는 문을 닫았다. 이제는 추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KR의 음과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곁에 MK3이 와 있다. 더 듬직한 사운드로. 

 

수입원 바쿤매니아

가격 328만원(기본 볼륨)   실효 출력 15W(8Ω)   입력 RCA×1, Satri-Link(BNC)×1
출력 헤드폰 출력×1   크기(WHD) 23.5×7.8×29.5cm    무게 2.9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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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6년 5월호 - 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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