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나의 존재를 연주하는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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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나의 존재를 연주하는 악기
  • 월간오디오
  • 승인 2009.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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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씨

"음악 없는 오디오는 공허하고, 오디오 없는 음악은 맹목이다. 음악 감상에 있어 음악과 오디오 모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필수 요건인 것. 내게 있어 음악은 생명이며, 오디오는 그 생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음악은 나의 존재 이유이며, 그 음악을 신명나게 연주해 주고 있는 나의 오디오는 고마운 친구이다. "

음악과 오디오, 오디오와 음악. 음악을 들을 것이냐 오디오를 들을 것이냐. 오디오 애호가라면 한 번쯤 마주치게 되거나 혹은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물음이 아닌가 한다. 둘의 상관관계는 참으로 묘하여 음악이 들리면 오디오가 들리지 않고, 오디오가 들리면 음악이 들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쉽게 생각을 해보면 오디오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오디오는 소리만 잘 내주면 더 이상의 의미가 희미한 전자제품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자는 오디오에 집착하지 말고 음악 감상에 집중하라고 충고를 하기도 한다. 억대의 오디오를 소유하고 있는 모씨 댁에 방문을 해보니 그 초라한 CD의 양이 놀랐다는 등의 냉소 섞인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오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하나하나 알아가다가 이런 생각에 맞닥뜨리게 되면 매우 혼란스럽다. 음악을 듣기 위해 마련한 오디오에 점점 종속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앰프나 CD 플레이어 간의 소리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만나게 되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오디오를 멈추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오디오라는 취미는 매력적이고 표현하기 힘든 끌림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오디오는 가전제품이 아니다. 단순히 소리를 재생해 주는 물건이 아닌 영혼의 울림을 표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인 것이다. 리스닝룸에서 벌어지는 오디오가 연주하는 공연에는 실연과는 또 다른 미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공연에서 오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청취자의 감성을 건드릴 줄 아는 오디오야말로 진정한 악기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오디오라고 할지라도 좋은 음악이 없다면 그야말로 나무통과 쇳덩어리에 불과한 물건이 될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오디오는 음악에 종속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훌륭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좋은 소리를 변별할 수 있는 청취자의 음악적 경험과 능력 또한 이 공연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다. 이는 소중한 능력인 만큼 일정 수준에 다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음악, 오디오, 청취자 이 세 가지 요소는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어느 하나가 빠지면 무너져 버리는 오디오를 즐기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갖추어진 장면은 세상의 어느 쾌락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황홀경을 느끼게 해주며 한 번 경험하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어느 한 요소가 크게 부족하다면 절정의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먼저 나의 음악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 음악은 생명과 같다. 평생을 같이하는 동반자 이상의,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 내가 의미 없어질 것 같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음악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간 동네 피아노학원이다. 한 달도 못 채우고 도망 다니던 기억이 난다. 답답하고 좁은 피아노학원보다 동네 아이들과 야구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여자아이들밖에 없어서 창피해서 못 다니겠다고 했다고 한다. 훗날 그때 패서라도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야 했다고 어머니께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들었던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이 생각난다. 음악이라는 것에 처음 눈을 뜨게 해준 멋진 곡. 최근에도 와 앨범을 가끔씩 꺼내 듣곤 하는데 세월을 느낄 수 없는 사운드에 감탄한다. 이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팝송과 가요를 매우 ‘심하게’ 섭렵했다. 당시 AFKN 라디오를 즐겨 들어서 매주 빌보드 40위까지의 곡 중 모르는 곡이 없을 정도였고, 올드 팝이든 신곡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들었다. 가요도 매우 좋아하여 가요 톱10 등 TV 프로그램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보았고, 심지어 라디오 공개방송을 방청하러 방송국에 가기도 했다. 당시 너무나 좋아했던, 이제는 고인이 된 장덕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도 하고 그랬다. 이문세 3집과 4집도 생각난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참 많이도 들었는데…. 그리고 부활, 시나위, 들국화, 조덕배, 어떤날, 시인과 촌장, 유재하 등의 음악으로 하루가 짧았던 시절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통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경에 충격적인 음반을 만나게 되었으니 비틀즈의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이다. ‘Hey Jude’, ‘Let It Be’ 등 아름다운 멜로디의 비틀즈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계시적인 음반이었다. 당시 소위 ‘빽판’으로 듣다가 이 음반만은 꼭 원반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명동에 있는 레코드점을 찾아 갔는데 눈 돌아가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비틀즈의 모든 정규 앨범이 예쁜 파란 박스에 담겨 있는 LP 전집을 보게 된 것이다. 어디서 돈이 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전집을 가지고 있고, 수년간 나의 보물 제1호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후 나의 음악적 레퍼토리가 좀 달라졌다. 약간은 ‘딥’해졌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황인용의 영 팝스보다는 전영혁의 25시를 즐겨 듣게 되었고, 급기야 록, 메탈 혹은 프로그레시브 록만을 찾아 듣게 되었다. 퀸, 핑크 플로이드, 건즈 & 로지즈,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도어즈, 주다스 프리스트, MSG, 디오, AC/DC, 게리 무어, 랜디 로즈, 잉베이 맘스틴, 메탈리카, 메가데스, 뉴 트롤즈, 오잔나 등의 밴드들이 생각난다. 이때 나의 어쿠스틱 기타가 일렉 기타로 교체되기도 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록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아 잠시 학교밴드에서 베이스를 잡기도 했지만 메탈리카 5집과 함께 메탈은 제 생명을 다했는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대신 서태지의 등장으로 한참을 듣지 않던 가요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록커가 있었으니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다. 하지만 그는 곧 떠났고 그 빈자리를 다시 채워준 밴드가 바로 라디오헤드이다. 어찌 보면 너바나와 라디오헤드는 나의 20대 초반과 젊음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군을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클래식과 재즈에 입문하였고, 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그래도 들어줄만 했지만, 재즈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제일 처음 구입한 재즈 음반이 빌 에반스의 . 반복해서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한 것이 멀미가 날 정도였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서 몇 가지 재즈 서적을 참고하여 좋다는 음반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존 콜트레인, 마일즈 데이비스, 소니 롤린스, 키스 자렛, 레스터 영, 빌리 홀리데이 등 음반은 쌓여 가는데 도통 재즈에 대한 느낌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5년이 지난 어느 날 나의 첫 재즈 음반인 를 듣는데 멀미나던 첫 트랙 ‘My Foolish Heart’의 피아노 선율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는 것이다. 피아노와 베이스의 대화가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재즈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빌 에반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더불어 이 시절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클래식도 듣기 시작했는데, 재즈만큼은 아니었지만 익숙해지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제일 처음에 구입한 음반은 지금 타이틀도 기억나지 않는 3장짜리 편집음반이었는데 참 적응이 쉽지 않았다. 왜 그렇게 잠이 오는지 억지로 참아가며 몇몇 음반과 같이 열심히 들었다. 역시 책을 참조해서 유명 음반을 하나하나 구입해 꾸준히 들었다. 그러다 카라얀의 라는 음반 중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에서 처음으로 큰 감흥을 느꼈다. 한 번 느낌이 오니 그 다음은 술술 진도가 나갔다. 브렌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굴드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뵘의 브람스 교향곡, 무터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하스킬과 그뤼미오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뒤 프레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로스트로포비치의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등 유명 작품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듯 감상하는 재미에 몇 년이 쉽게 지나갔다. 지금은 클래식 감상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즐겨 듣고 있다. 클래식에 본격 입문한 지 벌써 10년도 넘은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들어야 할 작품과 들어야 할 연주가 산처럼 많아 보이니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힐러리 한의 연주 스타일과 상쾌한 음색이 마음에 들어 모든 음반을 구입해 놓고 즐겁게 감상하고 있고, 또 새삼스럽게 정명훈이 지휘한 음반에서 열정과 힘이 느껴져 쇼스타코비치 4번,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등의 작품을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현재까지도 재즈, 클래식뿐만 아니라 가요, 팝, 일본음악, 록, 메탈 등도 즐겨 듣고 있고, 최근에는 국악과 제3세계 음악이 귀에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하나하나 사 모은 소스들이 LP 2000장, CD 5000장, 비디오 2000장, DVD 2000장, 게임 10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새로 이사를 한 후 많은 소스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와중에 월간 오디오에서 사진을 찍어서, 소장하고 있는 소스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다.

나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가끔 재즈와 클래식의 입문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음악이 어려워 귀에 잘 안 들어와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억지로 들으려 하지 말고 언젠가는 들릴 테니 시간에 맡기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클래식이나 특히 재즈는 아무래도 익숙한 대중음악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익숙하기를 손 놓고 기다리다가는 평생이 가도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모른다. 내 생각에는 힘들어도 교과서적인 소수의 음반을 억지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것. 그렇게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음악이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재즈와 클래식은 그만큼의 노고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오디오 경력은 음악만큼 길지는 않다. 물론 항상 어떤 형태로든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었겠지만 흔히 말하는 하이파이 혹은 하이엔드가 아니었고, 흔히 말하는 ‘바꿈질’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안되지 않나 싶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오디오에 대한 관심은 많이 있었지만, 본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쪽에 한 번 발을 들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빠져들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애써 참고 있었다. 어쨌든 필연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결국에는 발을 들이게 되었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 동안에 많은 오디오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경험한 많은 기기들을 모두 소개하고 소감을 밝히는 것은 짧은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대표적이고 인상에 남은 기기들 위주로 소개하겠다.
이전에도 몇몇 시스템을 운용하였으나 본격적인 입문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은 프로악 1SC와 어큐페이즈 인티앰프 E-408, 어큐페이즈 CD 플레이어 DP-65V이었다. 돌이켜 보면 프로악과 어큐페이즈의 음색 매칭은 매우 훌륭했다. 이 조합이 내주는 바이올린 소리는 이전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당시 바이올린 소나타,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행복하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보컬의 음색도 매우 곱고 질감이 풍부하여 음악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중고역의 예쁜 음색과 더불어 스피커의 사이즈를 잊게 하는 저역의 양은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 그 후 이때의 소리를 잊지 못해 나중에 1SC를 두 번이나 다시 들이게 되었고, 어큐페이즈 DP-78도 영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오디오 기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들어 보고 싶은 스피커를 하나둘 들이게 되니 결국 스피커가 프로악 1SC, ATC SCM12SL, 트라이앵글 셀리우스 202, 비엔나 어쿠스틱스 모차르트 총 4조를 운용하게 되었다. 이 4개의 스피커가 모두 개성이 강한 제품들이라 오디오적 재미가 굉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중에서 결국 살아남은 것은 ATC SCM12SL이었다. 당시 조합은 ATC SCM12SL, 어큐페이즈 E-408, 마란츠의 SACD 플레이어 SA-11S1이었다. 이때의 소리는 역시 재즈, 특히 색소폰 소리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악마의 눈동자’라고 불리던 시커멓고 끈적거리는 미드우퍼 유닛에서 나오는 무겁고 진한 중저역은 정말로 중독성 있는 멋진 소리였다. 의외인 것은 ATC SCM12SL이 헤비메탈과 힙합을 매우 맛깔나게 연주해 주었다는 점이다. 해머로 내리치는 듯한 둔탁한 드럼 음과 단단한 베이스 음, 그리고 어두운 중역의 보컬이 만드는 메탈리카는 정말 메탈리카적인 소리였던 것 같다. 당시 매칭에 어큐페이즈 E-408을 사용했는데 E-408이 힘이 약한 앰프는 아니지만 크렐같이 좀더 힘이 있는 앰프와의 조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후 ATC SCM12SL과 함께 틸 CS1.6을 들이게 되었는데 상당히 인상이 깊었다. 무엇보다 온 방안을 휘감는 듯한 시원한 음장감에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저역이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아 조기에 방출되기는 했지만 나중에 틸의 중·대형기를 꼭 들이리라 마음을 먹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후에 틸 CS2.4를 들이게 된다.
2006년 10월경으로 기억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스템을 새로 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모든 기기를 중고장터에 내놓았다. 기기들이 순조롭게 팔려 나갔고, 새벽 4시경에 습관적으로 장터를 검색하던 중 졸린 눈이 번쩍 떠지는 매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꿈에서나 그리던 ATC의 50리터짜리 패시브 스피커가 보인 것이다. 어떻게 타이밍이 그리도 절묘하게 맞을 수가 있는지 무척 놀랐다. 기기를 막 판매하여 통장에 잔고가 두둑한 상황에 ATC SCM50이 보란 듯이 올라오다니. 당시 나는 분당에 있었고, ATC SCM50이 있는 곳은 김해였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몇 시간 후 김해에서 ATC SCM50을 차에 싣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ATC SCM50과 인연을 맺은 후 오디오아날로그 인티앰프인 마에스트로와 마란츠 SA-11S1으로 꽤 오랜 시간 기기 교체 없이 음악만 열심히 들었다. ATC SCM50의 소리는 모니터적인 소리라고 정의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하는 지인에게서 스튜디오보다 더 모니터가 잘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ATC SCM12SL과 비교하면 저역의 스케일과 힘은 비교가 되지 않았고, 중역에서 훨씬 밀도감이 있어 전체적인 밸런스가 매우 뛰어났다. 재즈와 대중음악의 경우 대적할 만한 스피커가 몇이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단점을 잡아내기 힘들었고, 색소폰의 그 사실적인 음색과 보컬의 생동감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역시 앰프의 힘을 많이 요한다는 점과 저역이 생각만큼 많이 안 떨어진다는 점, 큰 볼륨에서 자기 실력이 비로소 발휘되는 점, 그리고 음색이 조금 어두운 편이라 화사한 음색에 어울리는 밝은 클래식 곡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 등이 있다.
그 후 진공관 인티앰프인 풍류와 신세시스 시무스, 인티앰프인 플리니우스 9100과 덴센 DM-10, 파워 앰프인 크렐 KSA-80B와 패스 알레프 0s, 프리앰프인 클라세 CP-60과 에이프릴 A1, 패스 알레프 P, BAT VK-3i, BAT VK-5i 등의 앰프들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다인오디오 오디언스 52, 다인오디오 1.3 MK2, 다인오디오 크래프트, 다인오디오 25주년, 패러다임 S2, 프로악 R2.5, 틸 CS2.4 등의 스피커가 들어왔다. 모두가 한 가닥씩 하는 인기 있는 제품들이라 각각의 성향을 듣고 느끼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공부가 되었고, 그에 따라 귀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받았다. 위의 기기들에 대한 자세한 소감은 지면의 한계로 아쉽지만 생략하도록 하겠다.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소위 3대 북셀프 스피커라고 불리는 다인오디오 25주년, B&W 시그너처 805, JM Lab 마이크로 유토피아, 이 세 가지 스피커를 한데 모아놓고 한동안 비교 시청을 해본 것이었다. 명불허전이었다. 각각의 스피커가 개성이 매우 뚜렷하여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귓속을 후벼 파는 듯한 엄청난 직진성을 가진 에소타 2 트위터의 고역과 북셀프 스피커의 위치를 망각하고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의 저역을 능가하는 저역 주파수대역과 양감을 자랑하는 다인오디오 25주년. 알싸하고 투명한 음색을 가졌지만 현의 질감도 놓치지 않고 충분한 저역의 재생 능력을 보여주며 편안하고 부담이 없어 장시간 음악 감상에도 귀를 피곤하게 하지 않았던 B&W 시그너처 805. 특출난 음장 형성 능력을 가지고 미끈하고 진한 밀도감 있는 중고역과 단단한 저역을 내주었던 마이크로 유토피아. 물론 각 스피커가 장점이 뚜렷한 만큼 각각 그만큼의 단점도 보여 주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훌륭한 스피커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었다. 나의 취향에는 마이크로 유토피아가 조금 더 좋게 들려서 결국 나머지 두 스피커는 방출이 되었지만 모두 매우 인상 깊은 스피커들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 쌓인 기기들을 정리하고 하나로 통일하자고 크게 마음을 다잡아 ATC SCM50 등의 기기들을 거의 모두 정리했다. 스피커를 결정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귀동냥을 다니며 다인오디오 C4, B&W 802D, 다인오디오 컨시퀀스 등 여러 스피커를 들어보았는데 모두 좋긴 하나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오는 놈이 없어 결국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소누스 파베르의 과르네리 오마주를 들이게 되었다. 이때는 앰프를 그리폰의 디아블로, CD 플레이어는 어큐페이즈의 DP-78로 조합을 했다. 소문대로 바이올린 소리는 당대 최고인 것 같았다. 의외인 것은 바이올린뿐만이 아니라 내 귀에는 기타 소리, 보컬 등도 소문과 다르게 매우 좋게 들려 상당히 올라운드적으로 느껴졌다. 스피커 용적의 한계로 저역의 양감이 부족하게 들리는 것이 단점이었는데 케이블 매칭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되었고, 후에 앰프를 진공관 인티앰프인 레벤 CS600으로 교체하니 질감이 더욱 살아나고 저역의 양감이 대폭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큐페이즈 DP-78과 과르네리 오마주의 음색 매칭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소리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큐페이즈 DP-78은 소리가 좀 가늘고 저역의 양감이 적은 성향이라 과르네리 오마주와 어큐페이즈 DP-78의 매칭은 베스트는 아닌 것 같다. 그 뒤로 평소에 그 소리가 무척 궁금했던 오디오 피직의 비르고 3을 거친 후 다시 한 번 중대형기의 영입을 시도하였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마침내 현재의 시스템을 조합하게 되었다.
먼저 스피커는 피크 컨설트의 2웨이 스피커인 인코그니토 X이다. 오랜 시간 원하는 스피커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내가 원하는 성향에 90% 이상 근접한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소스가 가지고 있는 저역의 끝단까지 내려가는 듯한 저역 주파수대역, 매우 깊고 넓은 저역의 스케일, 뒷벽을 간단히 뚫어 버리는 깊은 심도,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힘찬 파괴력, 2웨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중역의 두터움과 자연스러움, 적당히 귀를 자극할 줄 아는 고역의 직진성, 심장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현의 질감, 생생함과 까끌함을 모두 모아 주는 에너지감 넘치는 보컬, 마치 ATC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색소폰의 짙고 끈끈한 음색, 그리고 소리의 전반에 흐르는 열기와 따뜻한 온기, 이런 것들이 인코그니토 X가 보여주는, 현재의 조합이 보여주는 소리의 성향이다. 물론 스피커 혼자 이런 소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프리로 보내고 있는 듯한, 소리의 두터움과 진함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소스기기는 마크 레빈슨의 레퍼런스 CD 트랜스포트 No.31L과 레퍼런스 D/A 컨버터인 No.30L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소리에 온기감과 질감을 불어넣고 있는 프리앰프는 콘래드 존슨의 ACT2이다. 현재의 소리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특히 ACT2가 빠진 소리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마지막 화룡점정인 파워 앰프는 오디아 플라이트 100이다. 오디아가 들어오기 전에 사용하던 모 파워 앰프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전체적인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사용하고 있는 오디아 플라이트 100은 새로 출시된 신 버전인데 구 버전에 비해 내부 모듈이 대폭 업그레이드되어 소리의 변화폭이 생각보다 크다. 아쉽게도 그만큼의 가격이 인상이 되었다. 어쨌든 파워 앰프를 오디아 플라이트 100으로 교체한 후 전 대역 밸런스가 딱 잡히고 음색이 아름다워졌으며 약간 퍼지던 저역을 탱탱하게 잡아주었고 현의 질감이 대폭 증가하여 음악을 음악답게 연주해 주고 있다. 그리고 PS 오디오 파워 플랜트 프리미어와 네이처를 전원장치로 사용하고 있으며 멀티탭으로 주스바 2를 사용하고 있다. 오디오 랙은 쿼드라스파이어의 수노코 벤트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이다. 기기의 진동을 잡기 위해서 HRS 댐핑 플레이트를 3개 사용하고 있다.

누구의 말을 잠시 빌려서 표현하자면 음악 없는 오디오는 공허하고, 오디오 없는 음악은 맹목이다. 음악 감상에 있어 음악과 오디오 모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필수 요건인 것이다. 내게 있어 음악은 생명이며 오디오는 그 생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음악은 나의 존재 이유이며 그 음악을 신명나게 연주해 주고 있는 나의 오디오는 고마운 친구이다. 어느 순간 음악을 들어도 더 이상 10대나 20대 초반에 느꼈던 그 가슴 아린 감동이 느껴지지 않아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선잠이 든 채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학시절 즐겨 듣던 음악이 그 시절의 감정이 되살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린 경험도 있다. 오디오는 나에게 어린 시절 그 가슴 아린 감동을 되찾아 준 소중한 친구이다. 나의 친구가 지금 도어즈의 ‘When The Music's Over’를 연주하고 있다. 아마 그 다음 곡은 ‘The End’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사용하는 시스템

프론트 스피커 피크 컨설트 인코그니토 X   리어 스피커 쿼드 11L   센터 스피커 에벤 센터
프리앰프 콘래드 존슨 ACT2   파워 앰프 오디아 플라이트 100   AV 앰프 소니 DA7100ES
CD 트랜스포트 마크 레빈슨 No.31L   D/A 컨버터 마크 레빈슨 No.30L
SACD 플레이어 마란츠 SA-11S1   DVD 플레이어 소니 NS9100ES  
튜너 티볼리 오디오 플래티넘 모델 1   턴테이블 테크닉스 SL1210 MK2   카트리지 데논 DL-110
포노 EQ  클리어오디오 스마트포노   프로젝터 소니 VPL-AW15
인터커넥터 케이블 리버맨 바이칼(보치노 BAXLR, B2)
스피커 케이블 킴버 케이블 12TC(WBT 0681)   전원장치 PS 오디오 파워 플랜트 프리미어, EGA 네이처
액세서리 쿼드라스파이어 스노코 밴트 오디오 랙, HRS 댐핑 플레이트, 타옥 스파이크 슈즈, PS 오디오 주스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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