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AMP-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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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AMP-5521
  • 오승영
  • 승인 2014.11.01 00:00
  • 2014년 11월호 (508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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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이노베이션, SATRI

애국가의 음계를 낮춰서 부르자는 의견이 어딘가에서 불거져 나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던가…. 대략 70년 가까이 부르고 연주해온 국민의례 송가를 놓고 웬 자다 일어난 자의 중얼거림일까? 애국가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는 그룹은 주로 초중고 학생들인데, 후반부의 음이 너무 높아서 가뜩이나 바쁜(?) 학생들께서 부르기 어렵다는 게 공식입장인 듯하다. 누구의 얘기인지, 왜 아이들의 사소한 불편함을 놓고 세대를 거슬러 국가 차원의 개편이 요구되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애국가를 잘 부르는 정도의 기법을 가르치려는 진지함은 없는 것인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정작 초중고생들이야 말로 누가 시킬 것도 없이 가수 아이유의 3단 고음도 거침없이 질러대는 싱싱한 목청을 가지지 않았던가. 필자의 중학교 2학년 딸내미가 얼마 전부터 ‘오 솔레 미오’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웬일일까 싶었다. 음악 선생님이 가창 시험으로 이 곡을 지정했다는 설명에, 필자는 정말 훌륭한 음악 선생님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의 귀여운 여식은 ‘오 솔레 미오’를 마치 가수 마야처럼 샤우트 창법으로 질러댄다. 듣다 못한 필자는 파바로티의 레퍼런스 버전을 들려주고 따라해 보도록 했다. 물론 변화 같은 걸 기대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이 노래가 최소한 기교적으로는 어떻게 들려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해 보면, 높은 대역을 매끄럽게 소화하는 가수는 전 대역을 잘 컨트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고품질의 고음 처리는 우수한 창법에서 채취된 샘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매끄럽고 아름다워서 감성을 고양시키는 고음역의 처리는 인간이나 오디오나 상통하고 있는데, 이는 오디오가 인간의 발성법을 모사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근육이 잔뜩 긴장된 채로는 음이 원하는 만큼 높이 올라가지도 않을 뿐더러 고품질의 고역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창법에 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강하고 호쾌한 사운드의 이면에서 과잉 에너지는 종종 원 소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거칠게 하곤 한다. 그래서 성대에 힘을 주지 않는 발성 기법은 한 차원 높은 보컬을 구현하는 열쇠가 된다. 하이파이 앰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기한 내용을 대입시켜 보면 높은 전압을 걸어 출력 수치를 올리는 과정에서 잃게 되는 것이 많다. 소출력 진공관은 아름다운 음색으로 미묘한 표현에서 빛을 발하지만 스피커의 선택에서 제약을 받는다. 스위칭 전원과 증폭 방식이 날개를 달게 된 현 시점에 와서도 장르와 대역의 버라이어티와 미학적 표현을 동시에 구현하는 일은 하이파이 앰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게 앰프의 본질이라고 했을 때, 전압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솔리드 앰프에 가늘고 굵고, 길고 짧은 다양한 시그널에 반응해서 민첩하게 전류를 흘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바쿤(Bakoon)’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2000년 초반 무렵의 대한민국 오디오파일들, 특히 하이엔드 유저들을 객석에 앉혀놓고 데뷔 무대를 보여주어야 했던 바쿤의 과제는 하이파이 앰프로서의 독특한 디자인에 대한 설득력 등의, 사운드 이외의 사안부터였다. 석연치 않은 섀시 사이즈와 오렌지톤 플라스틱 노브, 낯선 캐논 잭 단자와 토글 스위치 등을 전면에 부각시킨 이질적인 차림새는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대한민국 오디오파일들에게 그리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제도권 하이엔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대구경 더블 우퍼를 뽑아낼 듯한 파워 핸들링 등의 흔한 연예인 기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바쿤의 디자인과 제품 콘셉트는 가전에서 확대되어 등급을 차별화시켜 나간 여타의 일본 하이엔드 브랜드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파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침 스위칭 전원을 무기로 한 다양한 앰프들까지 가세하면서 바쿤은 화제 속에 소개될 만한 토양을 갖추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오디오파일들은 SATRI라 불리는 신세경에 한 번쯤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부터 바쿤은 마치 심층수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하지만 서서히 커다란 흐름을 갖추어 오디오파일들 한복판에까지 진입하게 되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약 1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오디오 시장에서는 연예인들이 퇴조하고, 그 자리는 자연 다큐멘터리로 채워지는 현상이 확산되었다. SATRI는 재조명, 혹은 심화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바쿤과 SATRI는 마치 일심동체와 같은 개념으로 원리적으로 신비롭고 현상적으로 싱싱한 새로운 조류가 되어 있다.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게 앰프의 본질이라고 했을 때, 전압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솔리드 앰프에 가늘고 굵고, 길고 짧은 다양한 시그널에 반응해서 민첩하게 전류를 흘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잠시 앰프의 증폭 원리(솔리드스테이트의 경우)를 환기해보자. 소스로부터의 큐싸인(시그널)에 따라 트랜지스터의 베이스(p)에 전압이 걸리면 그 좌우에 있는 양극(n+n)의 전하가 한 방향으로 합쳐져서 확장된 컬렉터 전류가 흐르는 것이 일반적인 양극(바이폴라) 트랜지스터의 증폭 방식이다. 여기에 트랜지스터의 숫자를 더하고 바이어스 전압의 위치를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출력과 증폭 방식을 다양화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의 증폭이란 전압을 제어해서 전류를 흐르게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쿤의 방식은 전류를 직접 제어하는 데 그 핵심이 있고, 그 작용은 저항(임피던스)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바쿤 고유의 SATRI 회로의 입구와 출구는 임피던스 모듈이 되며, 이 두 임피던스 단의 사이에 흐르는 전류는 중간에 트랜지스터가 있다고 해서 전압을 걸어 전류량을 변동시키는 등의 자체 증폭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입구와 출구 임피던스의 조합에 따라서만 전류 부하가 변동하는 회로가 된다.
‘득도’, ‘깨달음’을 의미하는 일본어 ‘사토리’의 영어식 표현인 SATRI는 개발자인 아키라 나가이 사장의 연역식 추론에 따라 앰프 회로로 발전되었다. 국내에 소개되기보다 훨씬 이전인 1989년에 SATRI가 창안되었음을 감안하면, 그는 꽤나 혁신적인 앰프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 무렵은 스위칭 방식이 아직 하이파이 앰프에 시도되기 이전이었고, A클래스 증폭이 아직 정점을 향해 가던 시점이었다. 과연 오디오파일 수준의 이해를 놓고 보았을 때 SATRI는 무엇일까? 종종 전류 증폭 회로라고만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접근되어 얼핏 이해가 쉽지 않은 SATRI는 문과생인 필자로서도 고찰의 여지가 많은 개념이다. 좁은 의미의 SATRI는 IC 회로화된 집적 증폭 모듈이며, 넓게 보아서는 개발 이래 25년간의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확장된 고정밀 회로 설계 방식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약 5세대에 걸쳐 있는 IC 모듈은 최근 EX(Extra, 48개 트랜지스터) 버전에서 연장시킨 UL(Ultimate, 72개 트랜지스터) 버전으로까지 확장되어 증폭 품질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바쿤의 앰프들은 아날로그 회로에서의 저전압 신호를 DAC, 포노 앰프 등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확장되기 시작해서 파워 앰프와 인티앰프, 프리앰프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략 17종에 가까운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파워 앰프의 경우 고순도 선별 부품과 최단거리의 회로 단순화, 그리고 증폭비를 높게 잡지 않은 설계 방식은 THD는 낮추고 S/N비는 높이게 되어 굳이 NFB 보정 회로를 구성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계에 따른 바쿤 앰프가 갖는 차별화 영역을 꼽는다면 순도가 높은 자극 없는(Stressless)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제품의 시청기에 부연키로 한다.

AMP-5521은 바쿤의 최신작 파워 앰프이다. 내부 결선과 스피커 터미널을 변경하면 모노블록 버전인 모노 5521로 트랜스폼된다. 모노블록을 포함한 바쿤의 7개의 파워 앰프 라인업 중에서 정중앙에 위치하는, 실질적인 바쿤의 주력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사각형 패널의 비율은 날렵하지도 둔해보이지도 않고 앰프스러운 사이즈를 하고 있다. 출력석을 부착한 한쪽 측면 벽에만 히트싱크 어셈블리를 배치시킨 점을 제외하고는 일관된 바쿤의 패밀리 룩을 따르고 있다. 분체 도장한 섀시와 유광 처리한 전면 패널은 고강도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있다. 베이클라이트 재질의 노브는 본 제품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부분이다. 고유의 옐로우 톤을 띠는 본 재질은 휨 특성이 우수해서 플립형 핸드폰 케이스의 커버로 널리 사용되는 고분자 소재이다. 전면 패널은 중앙에 대형 게인 노브를 중심으로 좌우에 그보다 작은 노브를 배치한 좌우 대칭 구성이다. 중앙의 게인 조절 노브는 입력단의 유입 전류를 조절한다는 점이 프리앰프에서의 볼륨과 다른 부분인데, 기본 사양은 무단 연속 가변 저항 볼륨이 장착되며 필자는 23단 어테뉴에이팅이 되는 버전으로 시청을 진행했다.
이 게인 어테뉴에이터를 통해 사용자에 따라서는 소스기기를 직결할 수도 있는데, 프리앰프에 대한 사용자의 입장에 따라 당연히 물리적인 차이는 존재한다. 디지털 재생만을 위주로 한 순차적 시스템을 구성하고자 할 경우에는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좌측에 있는 노브는 입력 선택 실렉터이다. 3개의 언밸런스 입력과 2개의 전용 BNC 입력을 선택 가능한데, 고전적인 전압 신호를 전송하는 세 개의 언밸런스 입력은 ‘VOLTAGE’로, 전용 전류 전송은 ‘SATRI LINK’로 표시하고 있다. 오른쪽 노브는 파워 스위치이다.
내부 구조는 심플하다. 우측 뒷면에 배치한 R코어 트랜스를 통해 리니어 방식으로 전원을 공급하며, 전면 패널 쪽에 사이즈가 다른 두 개의 기판이 위치한다. 좌측에 있는 큰 사이즈의 메인보드에 SATRI 회로가, 좌측의 작은 보드에는 24개의 커패시터가 배치되어 있다. 바쿤 제품은 제휴사인 KKM(쿠마모토 마란츠)로부터 기판을 공급받아 제작하고 있는데, 소위 표면 실장 방식의 부품을 사용해서 제작된다. 그러니까 기판에 펀칭을 하지 않고 표면에 부착해서 제작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는데, 완전 수작업을 부분적으로 해결한 형태가 된다. 참고로 SATRI 회로는 완벽한 표면 실장 방식(SMT)으로 제작되어 있다. 전원 트랜스와 이 두 기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거의 하드와이어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전류 증폭단을 중심으로 구성된 심플한 회로 설계의 결과물이다. 본 제품의 볼륨은 무유도 권선 저항 어테뉴에이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참고로 바쿤 앰프에서의 볼륨은 전류 증폭의 끝단이 되는 출력 저항단에 해당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플래그십으로 칩 저항 포텐션메타가 있지만, 무유도 권선 저항 어테뉴에이터는 기존 타크만(Takman) 사의 탄소피막 저항 어테뉴에이터를 대체한, 양산을 전제로 한 하이엔드 앰프용으로 실질적인 최고급 사양이 된다.
AMP-5521에는 총 12개의 트랜지스터(바이폴라)가 사용되었으며, 출력석은 채널별로 두 개씩 전술한 대로 좌측 벽 히트싱크에 접합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한 본 제품의 출력은 35W. 시청을 해 보면 출력비도 일반적인 선형 증폭으로 느껴지지 않게 빠르게 확장되며, 출력으로 인해 볼륨이 많이 먹지도 않았다. 5521의 게인을 ‘9’에 맞추고 프리앰프의 볼륨을 올렸을 때 10시 방향이 되면 필자가 시청하는 최대 음량이 되었다. 시청은 9시 방향이 오히려 적당했다. 필자의 기준으로 이 음량은 일반적인 100-150W급 출력의 음량이 된다.
바쿤 앰프는 사운드적으로도 그렇지만, 비주얼 또한 전체 시스템으로 구성을 해서 배치했을 때 고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마치 컬러를 달리한 FM 어쿠스틱스라고나 할까? 단독으로 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제품의 사이즈나 콘셉트 등에 있어서 그런 독자적인 심플함이 느껴진다. 차분하고 주변의 빛과 미세한 움직임을 흡수할 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본 제품의 시청은 전자상가의 매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시청실의 구성도 수평으로 반듯하게 나와 있고, 중앙부가 비워져 있었으며 시청자와의 거리도 적당해서 당초의 우려와는 다르게 스테이징의 테스트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소의 특성상 완벽한 방음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청을 진행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다다익선, 조용할수록 좋겠지만, 운용의 묘는 늘 평론가의 몫이다. 시청은 PRE-7610 MK3, DAC-9730D, 프리-파워 및 DAC-프리 간 연결은 오가닉 레퍼런스에 BNC 변환잭을 사용했고, 스피커는 카스타 어쿠스틱스 모델 C를 통해 시청했다. 파워-스피커 간에도 오가닉 레퍼런스로 연결했다.
7511, 5511에 이어 세 번째로 작성하는 바쿤 앰프의 시청기이다. 그리고 이번이 가장 좋았다. 두 번의 리뷰는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몇몇의 경우처럼 바쿤 또한 필자의 기억 속에 선명한 브랜드 중의 하나이다. 특히 본 제품의 전신인 AMP-5511 MK2의 시청은 흥미로운 신구 모델 비교의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당연하게도 두 제품의 사운드는 동일한 콘셉트 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또 한 번 당연하게도 10년 후에 제작된 최신예기 AMP-5521의 사운드가 좀더 기민하고 드라이브에서 앞선다. 다만 5511의 위상 특성 또한 매우 뛰어났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포인트로 돋보였다. 사운드를 일괄하자면, 싱싱하고 자극이 없이 술술 풀려나가는 스타일이다. 전술했듯이 반응도 빠르고 위상이 흐트러질 만한 불안감을 주는 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서 스피커를 마치 동축형, 혹은 정전형과 같은 효과가 나게 한다. 하이엔드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제와 같은 자연스러움(Lifelike)’을 구현하고 있다. 15인치 우퍼를 말쑥하게 드라이브하면서 고역에서 자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가 이전 시청 시 바쿤에서 아쉬웠던 부분부터 역으로 시청을 진행했다. 다이내믹스는 처음 시청할 때는 뭔가 임팩트가 터지지 않고 고역에서 건조함이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케이블을 오가닉으로 변경하고 앰프 위에 액세서리들을 최소화하니 거의 다른 소리가 되어 있었다. 정감 있는 다이내믹스라고 할까? 적당한 만큼의 위력을 보이면서 시청자를 자극하지도 압도하지도 않는다.
이기 팝이 부르는 ‘In the Death Car’도입부의 베이스 비트는 15인치 우퍼를 멋지게 핸들링한다. 고운 손으로 밀고 당기며 멈추어 세우는 듯한 단정함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베이스이다. 종종 대출력 앰프에서 이 곡을 구동하면 호쾌하게 흔들어 놓고 완벽히 제동이 되지 않은 채 다음 비트와 뒤섞이는 미묘한 불쾌함이 느껴지곤 해서 제품 평가에 좋은 지표가 되는데, 더 육중한 베이스의 욕구가 있다면 모를까, 바쿤은 이 부분을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려준다.

좀더 빠른 비트로 가 본다. 폴 아웃 보이의 ‘Thnks Fr th Mmrs’에서의 드러밍은 예상대로 명쾌하고 정확한 템포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담백한 핸들링이지만 베이스 드럼에서 순간순간 육감적인 볼륨감이 느껴질 만큼 음영의 대비가 선명하다. 어둡지도 않지만 무작정 밝지도 않다. 보컬이 시작되면 베이스 드럼 앞으로 보컬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떠오른다. 이 부분까지 시청해보면 대역별 위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미소가 떠오른다.
스크로바체프스키와 미네소타 심포니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스케르초 도입부에서의 스타카토에서는 광채가 났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이 조합에서 그런 짧은 순간의 포착이 그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채도가 높지 않고 적당히 물을 섞은 수채화적인 음색이다. 강렬한 색채감을 무기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천연의 느낌으로 어필한다. 팀파니의 다이내믹스와 낮은 대역에서 타격의 순간이 선명한 조망 속에 들어온다. 스테이징 상의 위치는 낮지만 높은 곳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는 듯하다. 현악 합주가 고역으로 빠르게 상승해도 실제의 음색과 해상력을 차분히 유지하고 있다. 종종 실제의 연주에서 느끼는 대편성 현악 합주의 소리에 매우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바흐의 B단조 미사 6곡과 12곡은 이 두 곡을 시청한 최상의 품질 중의 하나이다. 앞서 몇 곡을 시청하면서 대략의 예상은 했지만, 바쿤식 천연의 다성 화음 합창은 가히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 이 미사곡 몇 곡만으로도 바쿤 앰프는 많은 사람의 귀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투명하고 입체적인 이 곡의 특징을 잘 끄집어서 늘어놓는다. 구체적이고 온화하며 아름답다. 종종 필자가 유럽의 앰프에서는 고역의 매끄러움을, 진공관 앰프에서는 낮은 대역의 기민한 움직임을 아쉽게 생각해왔었는데, 현재의 조합에서는 두 가지 아쉬움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6곡 ‘Laudamus te’와 같은 슬로우 템포에서의 동작과 어쿠스틱은 완벽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현악기의 단선율 보잉의 움직임 묘사가 정교하고 활의 속도가 언제 느려지는지, 각도가 바뀌는지, 근거리에서 보는 듯 디테일하다. 12곡 ‘Cum Sanctu Spiritu’의 푸가가 시작되면 순간 비갠 후의 먼지가 가라앉는 듯 머리가 맑아지는 프레젠테이션에 잠시 숨을 멈추게 된다. 무음 시의 정적을 순간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내는 공간의 대비 표현이 아주 좋았다. 깊이감과 오목하게 떠오르는 무대의 입체감 등에서 최고점 수준이다. 약음에서의 미묘한 뉘앙스 변화가 선명하게 감지되어 뛰어난 생동감을 준다. 보컬의 레이어링도 홀로그래픽 이미지가 잘 떠오르며 음량과 에너지의 그라데이션 묘사가 선명하게 잘 떠오른다. 이 곡을 시청하는 내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곳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레핀과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크로이처 3악장은 특히 피아노의 퍼포먼스가 빛을 발한다. 특유의 강한 훅이 단계를 보여주며 짧은 순간 내리치고는 올라온다. 음영이 짙게 구분되는 피아노이다. 레핀의 섬세한 연주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름답다. 텐션의 변화가 분명하고 피아노와 잘 융화되며 시원스러운 조망을 잘 선사한다. 간혹 거칠게 들릴 때가 있는 높은 고역에서의 울림이 바쿤에서는 시종 매끄럽다. 빈 공간의 정적과 차분함도 나무랄 데가 없이 잘 그려진다.

시청을 마친 후 필자는 바쿤이 ‘노래를 잘하는 앰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애써 있지도 않은 음을 장식해서 만들지도 않고 동작을 크게 하지도 않으면서 존재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이상과 같은 혁신적인 미증유의 회로의 장점을 잘 살려서 운용하려면 사용자의 제품에 대한 이해 또한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품의 특성으로 판단해 볼 때, 낮은 입력 임피던스와 높은 출력 임피던스가 의미하는 것으로서 소스로부터 유입되는 저노이즈 고순도 시그널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출력 임피던스가 낮은 기기를 입구에 유입시켜야 한다는 점 또한 바쿤 앰프를 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환경에 따라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이러한 성향을 감안하기에 따라서 바쿤에게서 다양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최초 시청 시에는 B단조 미사 12곡 등의 연타 부분에서 팀파니가 깔끔하게 안 떨어질 때가 있었는데, 케이블과 액세서리의 교체 후 말끔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케이블링과 주변 액세서리의 선별에서도 가이드라인을 잘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텐션을 걸지 않은 채, 입모양을 크게 하지도 않은 채 높은 C까지 가볍게 미끄러져 올라가는 가수들이 있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그런 경우를 명창이라 하고 칭송하며 즐겨 듣고 아껴 듣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시청을 마친 후 필자는 바쿤이 ‘노래를 잘하는 앰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애써 있지도 않은 음을 장식해서 만들지도 않고 동작을 크게 하지도 않으면서 존재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굳이 크리틱한 기준을 들이대고 보아도 사운드적으로 뭔가 결정적인 흠을 잡아내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조금 격상시켜 주길 바랄 뿐이었는데, 이미 그것조차 필자의 눈에 익숙해져 버렸다. 장르에 대한 편차도 대부분 극복되어 있다. 왜곡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좀더 강렬하고 대비가 분명한 사운드가 필요하다면 바쿤보다 좋은 앰프들은 많다. 하지만, 옆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 숲 속의 새 소리, 먼 뱃고동 소리 등을 천연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면 바쿤을 대신할 앰프들은 지금으로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바쿤의 과제가 있다면 얼마나 다양한 스피커들과의 확장성을 보여줄 것이냐에 있어 보인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대구경 우퍼나 정전형과 같은 저 임피던스 스피커들에게도 전류 증폭 방식은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반대로 고 임피던스의 북셀프 스피커들과의 조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술했지만, 요컨대 바쿤 고유의 소리를 얼마나 이끌어내느냐는 사용자의 몫이다. 그걸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바쿤의 앰프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입원 바쿤매니아
가격 583만원(스테레오), 1,166만원(모노)  실효 출력 35W(8Ω, 스테레오), 97W(8Ω, 모노) 
입력 RCA×3, SATRI-LINK×2 

508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14년 11월호 -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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