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y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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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ycanyon
  • 신우진
  • 승인 2012.01.01 00:00
  • 2012년 1월호 (474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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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스터링으로 전설이 된 신중현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지다
 
한 십년 전에 주변의 지인들이 아날로그를 접을 때 뻔질나게 LP판들을 실어 나른 적이 있다. 언젠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아파트 수위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저 옆 동에 할아버지 한 분이 예전 레코드를 많이 내다 버렸다고 가보라 했다.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대충 일제 말기부터 50년대 말까지 모았던 컬렉션인 듯했다. 이 양반 종이는 종이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분리수거하는 통에 한참을 쓰레기통 앞에 쪼그리고 않아 껍데기와 '레코오~드판'을 짝 맞춤하고 있었다. 몇 장의 SP와 수십 장의 10인치 판을 주워 들고 아주 뿌듯하게 집에 왔다. 남 보기 참 처량한 모습이었겠지만, 우리 잡지 독자들은 아마 내 기분이 어떠했을지 알았을 것이다. 아직도 지인들이 오면 그 판을 꺼내 들고 쓰레기 앞에서 판을 골라내던 무용담을 늘어놓고 한 장씩 들어 본다.






 애당초 그 시절 우리나라 음반이란 게 당연히 협대역의 저음질이지만 많이 듣지는 않은 듯 제법 상태는 좋았다. 하이엔드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지만 마치 그 시절에 내가 살았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런 미묘한 매력이 소리에서 배어나온다. 신중현의 세 장의 CD는 그런 비슷한 감상을 내게 전해 준다. 어린 시절, 지금 내 배만큼이나 뽈록하던 흑백 TV에서 특이한 소리를 내는 전자기타를 맨 신중현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인'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수위에 오르면서 내가 그 노래 꽤나 좋아했는데, 순간 금지곡이 되고 대마초 파동이 나오고, 주변 어른들은 듣기 싫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더니 역시 대마초 피고 부른 거였어 라는 촌평을 했다. 이제 내가 촌스러운 표지, 하이엔드 유저의 니즈에는 턱 없이 부족한 음질을 가진 세 장의 앨범에 촌평을 할 입장이 되었다.가장 오래된 '히키신 키타-멜로듸'는 당시로는 경음악, 미군부대용 음악, 하지만 지금 들어 보면 재즈와 트위스트가 섞여 있는 매력적인 앨범이다. 그리고 신중현의 기타 실력이 얼마나 빼어났는지 알게 된다. 단순한 동요와 스탠더드한 멜로디에서 뽑아내는 감각은 웨스 몽고메리의 음반을 듣는 듯하다. 단지 세련되었는가, 투박한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펜더 사로부터 세계에서 6번째, 아시아 최초로 기타를 헌정 받은 신중현의 실력이 그냥 당시 국내에서만 통하는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음반은 보여 준다.'신중현과 애드훠(Add4)'는 가장 황금기의 녹음으로, 지금도 많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비속의 여인', 우리에게 커피 한 잔으로 유명한 '내속을 태우는구려' 등 주옥같은 곡이 들어 있다. 당시의 꼬맹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만들어 준다. LP에서 음원을 따 온 듯한 몇 곡은 2초에 한 번 노이즈가 끼기도 하지만 이 또한 싫지가 않았다. 해금 조치 후 재기를 노리고 결성한 '신중현과 세 나그네' 앨범은 냉정하게 말해 실패한 음반이었다. 음질은 당연 셋 중 가장 빼어나지만 이전의 그 맛이 조금은 덜해진 느낌이다. 깔끔한 사운드로 신중현을 듣고 싶어 하는 마니아용이라 하겠다.더 많은 음반이 리마스터링 되지 않음이 아쉽게 만들지만, 어찌 되었건 모두 LP로는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컬렉션 음반이다. 그리고 대부분 LP들이 이만큼의 음질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 포니캐년의 정성스런 리마스터링으로 태어난 음반, 자칫 너무 건조해 버리거나, 반대로 너무 조악할 수 있는 복각 작업을 적당한 접점에서 만들어 내 마치 황학동 뒷골목 음반 가게 선반에서 뜯지도 않은 신중현 음반(지금 그럴 확률은 0%지만)을 찾아 들은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덕에 이렇게 듣기 힘든 명연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 몰랐건만 지금은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더 잘 다가오게 되는 것은 음질 탓도 있지만 나도 이제 조금 철이 든 이유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형 기획사 걸 그룹의 후크송에 길들여진, 아마 신중현을 접했던 내 나이 즈음의 우리 애들이 요새 몇 일째 신중현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수백 년이 지나도 바흐를 듣듯, 수십 년이 지난다고 신중현의 매력이 어디 가겠는가. _글 신우진 

히키신 <키타-멜로듸>신중현(기타)Spring Variety(반주)SJHMVD JHSG3001연주 ★★★★★   녹음 ★★★★ 

The Add4 <비속의 여인>신중현(리드기타, 코러스)서정길(리듬기타, 리드싱어)한영현(베이스)권순권(드럼)SJHMVD JHSGS002연주 ★★★★★  녹음 ★★★★ 

<세 나그네>신중현(기타, 보컬)이남이(베이스)문영배, 서일구(드럼)SJHMVD JHSGS008연주 ★★★★  녹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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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2년 1월호 -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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