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와 같이 하는 게임은 참 즐겁다. 허름한 PC방에서 시청각실에 있을 법한 조잡한 헤드셋을 쓰면서 FPS 게임에 청춘을 보냈는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훨씬 더 좋은 사양의 헤드셋으로 여전히 누군가와 샷빨을 이야기하며, 여전히 FPS 게임 홍수 속에서 인생의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물론 누군가와의 대화가 꼭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발자국 위치, 총기 소리, 오브젝트 소리, 팀원들과의 즉각적인 소통 등 이런 즉각적인 캐치력이 스노우볼을 굴려 게임 승률 및 킬·데스에 엄청난 영향력으로 돌아온다. 요즘 소위 말하는 장비빨이 팀 게임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필수가 되어버린 시점인데, 그만큼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그리고 헤드셋까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 흔한 홍보성 문구만은 아니다. 더구나 이쪽 시장은 점점 더 고급화되어 본격 스펙 전쟁으로, 현실 세계의 더 치열한 경쟁전을 치르고 있다. 덴마크의 유명 제조사, 스틸시리즈(SteelSeries) 역시 일찍이 마우스패드, 키보드, 마우스, 이어폰, 게이밍 헤드셋 등으로 고 퀄러티의 제품들을 늘 최고의 타이밍에 선보여 왔는데, 아크티스 노바(Arctis Nova) 시리즈로 대표되는 고성능 게이밍 헤드셋에 대한 반응이 그야말로 뜨겁다. 특히 이번에 이들 아크틱스 노바 시리즈의 최종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본격 플래그십 사양으로, 더 완벽한 ‘For Glory’를 위한 제품을 내놓았다. 바로 아크티스 노바 엘리트(Arctis Nova Elite) 헤드셋을 소개한다.

사실 이전 아크티스 노바 프로 유·무선 헤드셋을 선보이면서, 본격 고급 스펙의 경쟁력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아크티스 노바 엘리트는 거기에 좀더 발전시켜서 플래그십 등급을 과감히 내놓은 모습이다. 가장 핵심 포인트는 아크티스 노바 프로 유선 버전에서만 지원하던 24비트/96kHz를 이제 무선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 세계 최초의 Hi-Res 무선 인증 24비트/96kHz 게이밍 헤드셋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내기도 했다. 거기에 맞춰 유닛 드라이버도 카본 파이버로 업그레이드되었는데, 하이파이 쪽 유닛 소재로 등급 자체를 높여 이제 음악적인 퀄러티도 훨씬 높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카본 소재 자체가 일단 가벼우면서도 강도도 높아 음질적으로 훨씬 더 좋은 스펙을 구현해 내는데, 실제 들어보니 음악 감상용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게이밍 헤드셋을 오디오 잡지에 소개하게 된 연유도 이렇게 음질적인 체급 자체가 높아졌기 때문. 플랫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깔끔하고 해상력 높은 사운드가 인상적인데, 오디오파일들에게도 먹힐 그 사운드를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아크티스 노바 프로로부터 이어져온 깔끔한 고급미가 잘 부각되는데, 역시 게이밍 헤드셋하면 연상되는 빛으로 혼란스러운 화려함보다는 이런 심플함이 훨씬 더 와 닿는다. 실제 덴마크 유명 디자이너인 제이콥 바그너 씨의 손길이 닿은 제품인데, 모던함 속에서도 하나하나의 유니크한 포인트들이 제품 자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전체적으로 아크티스 노바 프로 쪽 제품과 디자인적인 결은 비슷한 느낌이지만, 세세한 변경 포인트들도 제법 보이는 모습.

색상은 세이지 골드와 블랙을 내놓고 있는데, 이번 세이지 골드의 색상 배치가 좀더 눈에 들어오긴 한다. 특히 골드 포인트를 정말 잘 소화해내고 있는데, 마이크, 로고, 볼륨, 그리고 와이어리스 게임 허브의 컨트롤 노브 쪽 골드가 진짜 찰떡이다. 블랙 쪽은 전체적인 커버가 무광으로 변화했고, 로고 쪽을 크롬으로 마감한 모습. 깔끔함을 좋아한다면 여기도 나쁘지 않다. 하우징의 볼륨단도 훨씬 고급스럽게 변화했는데, 돌리는 느낌 자체가 확실히 하이파이 쪽 프리앰프의 어테뉴에이터를 조작하는 그 느낌이다. 서스펜션 밴드 안쪽 복잡한 패턴 자체가 사라진 모습이고, 하우징과 연결되는 요크 부분도 유광 및 골드 마감으로 변화한 모습.

와이어리스 게임 허브는 컨트롤 휠 쪽 마감만 달라진 것 같지만, 후면을 돌려보면 차이점이 확실히 보인다. USB C 포트가 2개에서 3개로 늘어난 모습인데, USB 3 포트에는 엑스박스를 연결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이전에는 X 버전으로 엑스박스 전용 제품을 따로 선보였는데, 이제 모두 통합되어 PC,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닌텐도 스위치(TV 모드), 모바일, MAC 등을 함께 호환하는 사양이다. 특히 동시에 모든 소리가 함께 전해지는 것이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은데, 굳이 각각의 소스를 전환할 필요 없이 한 번에 모든 정보를 받을 수 것이 꽤 편리하다. 가령 PC에서 디스코드 대화하면서, 콘솔 게임은 게임대로 즐기고, 또 스마트폰으로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도 모든 소리가 한 번에 전달된다. 이제 소스 전환이나 헤드셋을 굳이 벗어야 할 상황 자체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제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PC 프로그램이나 모바일 앱을 깔아야 하지만, 와이어리스 게임 허브만으로도 꽤 직관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특히 선명한 OLED 가시성으로, 한눈에 정보가 눈에 들어오는데, 볼륨 정보, 좌·우 레벨 미터, 연결 환경 등을 좀더 쉽게 체크할 수 있다. 현재의 샘플링 레이트 수치가 커다랗게 보이는데, 윈도우 환경에서 24비트/96kHz 소리 설정만 맞춰 놓으면, 최대 스펙이 액정에 기분 좋게 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채팅 볼륨도 여기서 조절할 수 있고, USB 입력, 오디오 옵션 및 이퀄라이저, 와이어리스, 라인 아웃, 시스템 세팅 등을 휠·버튼으로 깔끔하게 세팅할 수 있다.

여기서 전용 앱이나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면 더 세밀한 세팅을 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게 이 스틸시리즈를 구매하게 하는 나름 핵심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10밴드 이퀄라이저를 제공하는데 내 마음대로도 찍을 수도 있지만, 역시 각 게임에 최적화된 커브를 지원하여 누구나 손쉽게 딸깍 한 번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자주 즐기는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2, 배틀필드부터 200가지 이상의 최적화된 게임 커브들이 준비되어 있는 모습. 내 마음대로 몇 번 찍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조사에서 최고의 인력으로 분석해서 내놓은 정밀 커브가 훨씬 더 임팩트와 실용성이 있다. 주위의 발소리부터 총 소리 위치까지 정확하게 캐치되는 그 포인트가 진짜 최적화되어 찍혀 있는 느낌. 실제 킬·데스 수치도 EQ 적용 후 훨씬 더 향상된 결과물이 나온다. 게임별로 사운드 커브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진짜 진심으로 분석·접근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방향성과 공간감에 대한 세밀한 변주를 더 주고 싶다면, 스페이셜 오디오를 활성화하고 조정하면 된다.

숨겨져 있는 마이크를 쭉 끄집어내어 대화 테스트도 진행해 보았는데, 일단 대번에 같이 게임하는 지인으로부터 ‘마이크가 바뀌었나?’ 소리부터 나온다. 대충 웅얼거려도 훨씬 선명하고 또렷하게 목소리가 전달되며,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키보드 소리나 선풍기 소리 등도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 AI 기반 노이즈 캔슬링 및 ANC 4-마이크 하이브리드 시스템 적용으로 훨씬 더 파워업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주변 소음들을 방어하는 능력이 자극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수행되는 것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트랜스페어런시라는 주변 음 허용 모드도 지원하여, 주변 소리를 꼭 들어야 하는 환경도 만들어 놓을 수 있다.

듀얼 배터리 모드도 멋진 아이디어다. 배터리 2개로 하나는 구동, 하나는 충전 시스템을 꾸릴 수 있다. 이제는 배터리 교체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느낌인데, 탄창 교체하듯이 물리적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꽤 색다른 경험이다. 센스 있게 배터리는 하우징 커버 속에 숨겨 놓았는데, 자석식으로 탈착이 간편하다. 다만 스틸시리즈 제품을 처음 접한다면 커버와 디자인적 일체감이 워낙 좋아서, 매뉴얼을 안 본다면 퍼즐 풀듯이 USB 충전 포트와 배터리를 더듬거리며 찾아야 할 수도 있다. USB C 포트로 충전할 수도 있지만, 역시 와이어리스 게임 허브 측면에 배터리를 꽂아 충전하는 것이 메인이다. 덕분에 하나는 구동, 하나는 충전, 무한 파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구동 시간은 대략 60시간으로 굉장히 여유롭고, 고속 충전 15분으로 대략 4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실제 아크티스 노바 엘리트로 PC 및 콘솔로 여러 FPS 게임들을 즐겨 봤는데, 확실히 승률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간 모습이다. 일단 적 위치가 정확히 캐치되는 그 공간감 자체가 너무나 훌륭한데, 긴가민가한 저 멀리의 발소리마저도 선명하게 전달될 정도로 만족스러운 소리가 전해진다. 아마 이전이라면 저 멀리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숨어 있는 적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그것도 모르고 그 위치로 마음 놓고 걸어가다가 죽었을 것인 분명하다. FPS에서 소리 정보는 탄약이자 생명줄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특히 위·아래의 공간감도 굉장히 정확한데, 이 소리가 레퍼런스라고 정확히 기억해야 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정보량이 한타 승부에 확신을 불어넣는다.

사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바로 음악 재생. 기본 세팅 자체가 굉장히 플랫 사운드가 기본이 되는데, 하이파이 쪽에서는 오히려 이 플랫함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정말 과장 없는 정확함과 디테일이 끝내주게 펼쳐지는데, 거기에 강력한 공간감까지 얹어지니 진짜 놀라운 결과물이 완성된다. 여기서 좀더 음악적 재미를 추구하고 싶다면, EQ로 V자 커브를 찍으면 되는데, 제공되는 SMILEY라는 커브가 딱 정당한 수치로 다이내믹과 고역 탄성을 높여준다. 단연히 게이밍 헤드셋으로 저음만 어느 정도 타격감 있고, 고역 쪽이나 음의 밸런스는 아예 포기하는 그런 소리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정말 깔끔하고 정확한 저음에, 풍부한 중음의 디테일을 갖추고 있고, 또 고음의 깨끗한 매력은 계속해서 잔상이 남을 정도다. 특히 카본 소재 적용으로 스피드감마저 출중한데, 몰아치는 그 악기들의 폭풍 속에서도 결코 밸런스가 깨지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보면 스틸시리즈 역시 덴마크 태생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덴마크 오디오 브랜드들을 가장 선호하긴 하는데, 그 덴마크의 하이파이 쪽 사운드 퀄러티가 묘하게 연상되는 느낌이다. 과장됨이 없고, 중·고음에 매력적인 음색을 보유하고 있으며, 저음의 밸런스가 굉장히 좋은, 그 하이파이 쪽 느낌이 여기에도 분명 있다. 그동안 함께 누리기 아쉬웠던 게임과 음악, 모두를 레퍼런스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스틸시리즈 최고의 역작이다. 이 좋은 소리를 게임하는 사람들만 누릴 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