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EQA-5640M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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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EQA-5640MK4
  • 코난
  • 승인 2023.03.10 21:31
  • 2023년 03월호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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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대한 진심, 바쿤과 통하다

음악이 권태로울 때

국내·외 IT, 테크 관련 기사와 뉴스를 읽어 보는 일이 습관이 된 요즘 놀라울 정도의 기술 발전을 체감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의 나래를 펴던 것들이 어느새 현실로 눈앞에 나타나 있다. 신기술의 발전은 마치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것처럼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렸을 적 오디오와 음악을 좋아하면서 디자인해 본 경험이 있는데, 그 당시 내가 렌더링해 제출했던 과제가 지금은 현실이 되어 있다. 불과 반세기도 되기 전에 과학 기술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음악 재생 분야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너무나 평범한 단어가 되었지만, 이런 음악 재생 방식이 보편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린이나 메리디안이 NAS에 음원을 저장해 재생하는 기기를 내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음악을 어떻게 컴퓨터 따위로 재생하냐고 비웃기도 했다. 현실은 네트워크 스트리밍이 CD를 집어삼켜 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 상황을 말하자면 정말이지 편리해서 미칠 지경이다. PCM 포맷은 물론 DSD까지도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재생 가능하며, 이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발전해 굳이 음원을 PC나 NAS에 저장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기술 발전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시시포스의 돌을 굴려 올리는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듯 음악 재생에 드는 수고를 최소화했다. 손가락만 터치하면 음악이 흐르며 음반을 CD 플레이어나 턴테이블에 얹거나 빼거나 하는 노동을 종료시켰다.

하지만 왜 아직도 LP를 듣는 걸까? 나의 경우는 돌을 굴려 올리지 않는 상태에 대한 권태를 해결할 도리가 없어서다. 또한 오히려 그 불편한 노동이 음악을 더 값지게 만들기도 한다. 뭔가 노력한 대가로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더 많은 집중과 함께 일말의 보람은 선사한다. 음질이 좋고 나쁨을 떠나 음악 재생 과정에 내가 더 관여하는 폭을 넓힘으로써 얻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카트리지를 다시 세팅하고 포노 앰프 세팅을 바꾸어 보며 케이블을 이리저리 옮겨 보기도 한다. 음악이 권태로운 때…. 아날로그에 관심을 가져 보라.

포노 앰프, 그리고 바쿤

그렇다면 턴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카트리지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LP를 듣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는 다름 아닌 포노 앰프다. 앰프가 받아서 증폭해 주어야 하는 신호가 CD 플레이어나 D/A 컨버터에 비해 매우 미약한 카트리지의 경우 포노 앰프에서 일단 증폭해 준 이후 프리앰프나 인티앰프로 넘겨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애초에 LP 소릿골에 기록된 신호는 LP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저역은 작게 고역은 크게 기록해 놓았고, 이를 포노 앰프에서 반대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고역을 롤-오프, 저역을 턴오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RIAA(미국 음반 산업 협회)에서 규격화해 표준으로 정한 것이 RIAA 커브다.

1954년 RIAA가 이런 표준을 정한 이유는 왜일까? 여러 음반사에서 각기 다른 PEC(Pre-Emphasis Curve)를 기준으로 LP를 커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포노 앰프에서는 이런 다양한 음반사들의 제각기 다른 커팅 커브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1954년 이전의 모노 시절 음반을 듣는 사람들이 적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모노 시절 음반에 대한 수요는 현재도 상당히 많다. 특히 클래시컬 녹음에 대해 재평가 받고 있는 데카 등을 위시로, 과거 홀대 받다가 현대에 와서 재발굴되는 모노 LP들을 제대로 재생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있어 왔다.

이런 연유로 과거에 프리앰프에서도 데카, 컬럼비아, RCA 등 대표적인 메이저 음반사들의 커브에 대응했던 그 기능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FM 어쿠스틱스 같은 하이엔드 포노 앰프에서나 가능했던 멀티 커브 대응 기능들이 이제는 중·저가 제품에서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그중 바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쿤은 꽤 오래 전부터 이런 다양한 커브에 대응하는 포노 앰프를 제작해 오면서 가뭄에 단비처럼 모노 시절 LP를 사랑하는 음악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EQA-5640MK4 포노 앰프

이번에도 바쿤은 멀티 커브에 대응하는 포노 앰프를 다시 내놓았다. 모델명은 EQA-5640MK4. 이미 바쿤의 포노 앰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EQA-5640MK3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전작에 멀티 커브 대응 기능을 추가해 만든 것인 바로 이번 MK4 포노 앰프다. 그리고 지원 커브의 경우 NAB, 컬럼비아, 데카 FFRR, AES, RCA 등이다. 만일 레코드 숍이나 디스콕스, 이베이 등에서 1954년 이전의 모노 LP를 구입했다면 반드시 이 커브를 기억하고, 바쿤 포노 앰프의 커브를 조정해서 들어 보라.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로 RIAA 표준 커브 발표 후에도 이것이 전 세계 음반에 제대로 적용되기까진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54년 이전뿐 아니라 그 이후 음반도 커브 조정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양한 멀티 커브 지원만이 EQA-5640MK4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이 포노 앰프의 주된 특징은 다름 아닌 RIAA 커브 기준 MM과 MC 카트리지의 정확한 증폭에 있다. 여기서 또 다시 사트리 회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바쿤 프로덕츠에 의하면 기존보다 더욱 진화시킨 사트리 회로를 구현해 S/N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켰고 왜곡도 더욱 낮추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부분은 내부 회로에서 기판 설계로 드러난다. 사트리 회로뿐만 아니라 내부의 전원부 및 신호 증폭부를 완전히 별개의 PCB 기판에 설계해 놓은 모습, 트랜스포머도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정류단 규모도 더 키운 것으로 확인된다. 당연히 회로 간 간섭 현상이 줄었을 것이 당연하며 S/N비 상승은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편의성 측면에서도 바쿤은 으뜸이다. 일단 MM 카트리지 및 MC 카트리지에 대해 별도의 토글스위치를 전면에 설치해 간단히 선택할 수 있다. 몇 dB 증폭이니 복잡한 기술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구분 지어 세팅 가능하다. 하지만 좀더 다양한 카트리지에 대응하기 위해 게인 조정 기능을 별도의 노브에 부여했다. 게인은 총 여섯 가지. 시계 방향으로 Low 2, Low 1, Mid 2, Mid 1, High 2, High 1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당연히 Low 2가 가장 낮은 증폭률을 보이며 시계 방향으로 돌릴수록 더 높은 증폭률을 보인다.

고요하고 정갈한 아날로그의 세계

테스트는 메인 시스템을 사용해 총 세 개 카트리지를 매칭해 보면서 두루 사용해서 테스트했다. 턴테이블은 트랜스로터 ZET-3 MKⅡ로 두 개의 톤암에 각각 다이나벡터 DV-20X2 H, 골드링 1042 카트리지를 세팅해 놓은 상태다. 한편 레가 RP10에는 레가 Apheta 2 저출력 MC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 앰프는 MSB Analog DAC와 코드 SPM1400E를 사용했고, 스피커는 락포트 Atria를 주로 사용했다.

일단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에 설치해 놓은 두 번째 톤암의 골드링 1042 카트리지를 LP 위에 올려 보았다. 게인은 Mid 2가 적당했다. 최초 청음부터 바쿤 고유의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거짓말처럼 고요하고 정갈한 소리로, 보컬의 중역대 핵이 분명하고 깨끗하다. 야신타의 ‘Here's to Life’를 들어 보면 확실히 기존에 들었던 바쿤 포노 앰프보다 더 깨끗해졌다. 어찌 보면 따뜻한 온도감이나 자기 색상은 고조파 왜곡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쿤 포노 앰프에서는 청감상 깨끗하면서도 고유의 음색적 매력이 살아 꿈틀거린다. 양립하기 힘든 요건들이 하나의 통일된 코히어런스로 융합된, 흔치 않은 소리다.

다이나벡터 DV-20X2 H는 고출력 MC 카트리지임에도 MC 선택 후 High 2까지 올려야 게인이 확보되었다. 이전보다 깨끗해진 배경은 곧 청감상 S/N비의 상승을 이끌었다. 아마도 전원부 보강 및 분리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을 모노 버전으로 들어 보면, 1957년 녹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악기들이 선명한 사운드 특색을 보여 준다. 특히 복잡한 배음 구조를 갖는 관악 세션에서 에지가 분명하면서도 거칠게 뻗지 않고 담백하면서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를 표현할 언어를 찾기 힘들었는데, 최근 읽은 글 중 ‘녹진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번엔 턴테이블을 레가 RP10으로 옮겨 레가 Apheta 2 MC 카트리지로 재생해 보았다. 레가 저출력 MC 카트리지에 맞게 바쿤 포노 앰프의 토글을 MC로 조정하고 게인을 조정해 보았다. 게인은 가장 큰 High 2로 세팅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는 영롱하면서도 따스한 온도감이 귀에 걸린다. 한없이 초고역까지 뻗는 고역은 아니고, 대신 온건하고 말랑말랑한 촉감이 돋보이는, 질감 좋은 중·고역을 뿌린다. 나의 시스템에서는 게인이 좀더 높았으면 좋겠지만 방에서 들을 경우 충분할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군더더기 없이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무게 중심은 약간 높은 편이며 저역 쪽은 크지 않고 아담한 스타일이다. 대신 중역 표현에 있어 밀도가 높고 진한 뉘앙스를 풍겨 어떤 음악을 들어도 공허한 느낌 없이 다부진 사운드 표현이 가능하다. 해상도는 무척 뛰어나다. 예를 들어 닐스 로프그렌의 ‘Keith Don't Go’ 같은 음악을 재생해 보면 어느 순간 디지털 음원을 재생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선명하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준다.

총평

DAC-9740에 이어 바쿤 프로덕츠의 리뷰를 이어 나가면서 한동안 바쿤 사운드에 빠져들었다. 가끔은 너무 과몰입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원래 내가 듣던 시스템으로 회귀했다. 그제서야 제삼자로서 보다 객관적인 기기 평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쿤 제품을 시스템에 넣으면 그 때부터 다시 그 고유의 사운드 결에 빠져들어 음악을 멈추기 힘들었다. 이는 포노 앰프에서도 동일했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간감과 녹음 공간의 앰비언스를 바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나의 리스닝 룸에 펼쳐 놓았다. 그 솜씨가 가히 일품인데, 이 때문에 바쿤은 묘한 중독성을 획득하게 된다.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 재생이 권태로운가? 그렇다면 LP로 들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LP만의 독보적인 사운드가 부족한가? 바쿤 EQA-5640MK4를 들어 보라. 모노 시절부터 스테레오 시절까지 음악에 대한 당신의 권태가 사라질 것이다. 바쿤은 아날로그에 진심인 브랜드니까.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내리는 일이 시시포스처럼 돌을 굴리고 올리는 일과 달리 중독의 재미, 노동의 재미를 새삼 일깨울지도 모른다.


가격 396만원   
아날로그 입력 RCA(MM/MC)×1   
아날로그 출력 Voltage×1, Satri-Link×1
크기(WHD) 23.6×7×29.3cm 

608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23년 03월호 -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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