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얹고 CDP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F. M. 토로바의 경쾌한 기타 선율이 고막을 두드린다. 동시에 20세기 스페인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든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멜로디 진행이지만, 힘 있고 밝은 선율이 눈과 머리를 맑게 한다. 우리에게 ‘아랑훼즈 협주곡’으로 너무나도 친숙한 J. 로드리고의 ‘Invocacion y Danza(기원과 춤)’는 스페인의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를 기리는 곡으로, 8분이 훌쩍 넘어가는 연주 시간 외에 내용적으로도 매우 규모가 큰 곡이다. 마누엘 데 파야의 음악으로부터 일부 선율을 차용하는 등 그에 대한 오마주를 드러낸 곡으로, 허원경 기타리스트 특유의 기교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J. C. 마틴의 ‘Suite’는 허원경 기타리스트의 아버지이자 역시 뛰어난 기타리스트인 허병훈에게 헌정된 곡이다. 특히 2악장 ‘Tiempo Saltando’의 요동치는 리듬과 3악장 ‘Andante’의 목가적인 선율이 좋았다. I. 알베니스의 ‘아스투리아스’와 ‘세비야’는 원래는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곡이지만, 기타를 위한 편곡 버전이 이 앨범의 제목인 <스페인의 인상>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듯하다. 허원경 기타리스트는 이번 음반에서 단호하지만 우아하고 화려하며 기타가 품고 있는 다양한 색채감을 정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황금빛 들판과 잘 어울리는 멋진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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