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수놓은 화창한 늦은 가을 어느 날, 용산 전자랜드의 대표 오디오 숍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조은전자가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래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마트폰의 지도를 켜고 사평대로 26길 58이라고 주소를 입력하고 길을 찾고 있는데, 거리를 걷는 도중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이대로 그냥 걸어갈 수는 없겠다 싶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재즈 한 곡을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찾고 있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고 지도가 알려 주는데, 눈앞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1층에 베이커리 카페만 눈에 보여서 이곳이 맞는지 한참 서성이고 있었는데, 조은전자라고 써 있는 간판도 보이질 않아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 보니 세상에 이런 오디오 숍도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높은 층고의 멋진 공간에 수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기기가 제각기 멋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국내 최대 규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조은전자에 도착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김연진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물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직접 지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상가에서 영업해 오다가 코비드 사태를 계기로 독자적인 시청실을 갖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략 4년 전쯤에 건물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건물을 짓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웃음). 두 번이나 설계해야 했는데, 처음 설계는 제 생각과 맞지 않아 포기했고, 이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건축가가 다행히 제가 평소 생각했던 심플하면서 확실한 디자인적인 포인트를 갖춰야 한다는 콘셉트에 부합했습니다. 앞으로 더 보강할 부분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디자인 포인트는 전면에 설치된 유리 벽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덕분에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실제로 지은 건물도 보고, 자재도 일일이 점검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유리 벽돌과 덴마크제 롱브릭을 선택해서 공사에 들어갔으며, 전면뿐 아니라 입구 천장에 총 13톤의 유리 벽돌을 설치했습니다. 설치 시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갖다붙여야 했고, 서로 연결을 시키기 위해 튼튼한 와이어도 동원했습니다. 덕분에 공사 기간이 2년 반이나 걸렸죠.

층고가 무척 높습니다. 이 건물은 어떤 구조로 만들어졌나요.
총 6층이지만, 모두 복층 구조인 만큼 크게는 3개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B1, B2를 조은전자에서 사용하고 있고, 각 층에 전시장과 시청실이 각각 한 개씩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중 지하 2층에 있는 메인 전시장이 36평이고, 메인 시청실이 20평 규모입니다. 한편 지하 1층에는 오디오와 음악 애호가 분들이 음악 듣는 실제 공간과 유사한 7평짜리 청음실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건물 안에 최고의 공간을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최상의 시청 공간에 전 세계 오디오 제품 중에 최고만 모아 최고의 소리를 원하는 분들이 저희 숍에 오면 언제나 최상의 만족을 느낄 수 있게 준비하겠다는 뜻입니다.

조은전자의 오늘이 있기까지 끊임없는 노력의 역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조은전자의 역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벌써 40년이 지났군요(웃음). 1984년 4월 30일 세운상가 나동에 있는 공간을 임대해서 같은 해 8월 1일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S전자에 근무하다가 선배 따라 세운상가에 놀러간 게 화근이었습니다. 정말 별천지를 만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 오디오 숍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하다가 내 가게를 만들자 라는 결심에 조은전자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JBL L100이면 완전 고가 제품이었고요, L112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여기에 마란츠 2275가 제일 매칭이 좋았고, 2265, 2230, 2285 등도 평가가 높았습니다. 사실 이런 제품 한 두 개만 숍에 전시해도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5~6년 후에 세운상가 가동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야구로 치면 가동이 1군, 나동이 2군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게 규모도 보다 커지고, 취급하는 물건의 급수도 올라갔습니다. 특히 B&W, 매킨토시, 크렐, 마크 레빈슨 등을 취급하면서 정말 많은 고객들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였던 90년대라 정말 바빴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퇴근할 때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20분 단위로 쪼개서 손님과 상담했죠. 가게 열기 전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를 마셨는데, 하루 23잔을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커피집에서 제 것은 일부러 묽게 타 오고는 했죠. 그래도 집에 가면 바로 곯아떨어졌습니다(웃음). 2012년에 용산 전자랜드로 옮겼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조은전자는 큰 도약을 합니다. 이제는 하이엔드 중심으로 숍으로 거듭난 것이죠. 그 즈음 FM 어쿠스틱스의 제품들을 전시한 공간에서 조인음악회를 연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클래식 전문가가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음악 감상회를 진행하면서, 점차 조은전자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죠. 그때부터 뮌헨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지역의 해외 오디오 쇼에 방문하면서 신제품도 보고, 어떤 매칭을 했는지, 시청회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참 많이 배웠습니다. 또 직접 메이커를 방문해서 공장도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도 나중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오디오 숍을 차리기 전부터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하셨나요?
원래부터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했습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는데, 고교 3학년 무렵 큰형과 함께 직접 오디오를 제작했습니다. 진공관 앰프, 라디오, 턴테이블 등을 하나의 장에 넣는 콘솔 전축 스타일이었고, 직접 도면을 설계해서 목공소에 맡겼습니다. 이후 완성된 전축을 들어 보니 완전 딴 세상이었습니다. 점차 깊이 몰두하게 되어 나중에 직접 5극관을 사용한 진공관 앰프도 만들어 봤습니다. 당시 동성로에 있는 오디오 숍에서 각종 전자 제품과 부품을 판매했습니다. 여기를 드나들면서 점차 오디오에 눈을 떠갔죠. 그 당시 JBL에서 나온 L100이란 스피커가 있었는데, 무려 일백만원이 넘었습니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죠.

조은전자라고 하면 손님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싶었답니다(웃음). 저의 경영 전략이라면 고객 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기기 교체 시에 고객 분들의 손실을 줄이려는 것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기기를 판매하거나 인수할 때에 내·외부 점검과 작동 실험을 철저히 시행해 상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 것도 고객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고객 분들이 알게 되었고, 그와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번 거래를 트면 오랫동안 관계를 쌓도록 노력했습니다. 그게 벌써 40년 이상 지속된 것이죠. 저는 숍과 고객의 관계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숍과 고객 분 모두 성장하는 관계인 것이죠. 세월이 흐르면서 고객 분들이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오디오에 대한 지식이 느는 것과 비례해서 숍 역시 제품의 퀄러티나 내용이 올라가야 맞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조은전자를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인가요?
한 달에 최소 1번, 아니 그 이상 다양한 시청회와 음악 감상회를 열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분들을 다양하게 모실 생각입니다. 또 수입사와 소통을 강화해서 이들 업체에서 행사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대여해 줄 예정입니다. 앞으로 조은전자는 수입 업체나 동종 업계가 모두 윈윈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며, 고객 분들과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카페나 SNS 활동을 적극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실력은 있으나 무대가 주어지지 않는 연주자들도 챙기고 싶습니다. 덕분에 우리 고객 분들과 지역 주민 분들이 실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요. 일종의 문화 공간으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영업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