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Audio Lab i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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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Audio Lab i5
  • 코난
  • 승인 2021.05.10 17:02
  • 2021년 05월호 (586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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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몬의 최고 솜씨가 발휘된 음악의 화원

지나치게 화려한 것보다는 오히려 작고 소박한 것이 실제 삶 속에선 더 오래 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좀 찍는다면 누구나 하나 즈음 가지고 있던 무겁고 커다란 DSLR도 좋지만, 평소엔 라이카나 혹은 작은 파나소닉 카메라를 더 선호했으며 더 친근하게 손가락 사이를 오갔다. 때론 한껏 광을 낸 구두를 신지만 이내 집으로 오면 케이블 하나 값에도 못 미치는 1년 된 운동화가 그리도 편하고 정이 간다. 그저 보기 좋게 화려한 화원도 좋지만 진심으로 정 붙이고, 일구고 싶은 소박한 꽃밭이 좋다.

가장 화려한 오디오의 꽃, 하이엔드 오디오는 평소에도 지긋지긋하게 많이 듣곤 하지만 일구고 싶은 꽃밭 같은 오디오가 하나 손안에 들어왔다. 사이몬 오디오 랩(Simon Audio Lab)에서 만든 i5라는 조그만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 앰프의 소리는 맛깔났다. 엄청난 덩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DAC나 네트워크 플레이어 같은 부가 기능도 없다. 하긴 요즘 넘치는 것이 네트워크 플레이어인데, 굳이 안 넣어도 그만이다.

사이몬이 누구인가? 에이프릴 뮤직이라는 국내 굴지의 하이파이 오디오를 이끌었던 수장이다. 전 세계에서 에이프릴 뮤직이 이룬 성과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젠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사이몬 오디오 랩이라는 이름으로 만드는 앰프는 그전과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소리를 내주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등 디지털이 대세인 지금도 아날로그 회로 설계와 튜닝에 있어선 사이몬을 따라갈 사람을 찾기 힘들다.

i5는 그러한 사이몬의 수십 년간의 구력이 집약된 제품이다.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채널당 딱 두 개씩만 사용해 8Ω 기준 채널당 45W를 내는 인티앰프. 다들 대출력을 추구하지만 사실 가정에서 45W면 충분하다. 싱글 엔디드, 푸시풀 설계로서 AB클래스 증폭을 택해 오래 틀어놔도 열도 별로 없고, 전기세 걱정도 필요 없다. 하지만 크기에서 예상할 수 있는 무게보다 더 무거운데, 내부를 보니 꽤 큼직한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내장하고 있다.

프리앰프 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오직 음질을 위한 설계다. 순수 아날로그 어테뉴에이터를 사용하고 있으며 제공되는 리모컨으로 볼륨 조정이 가능한 정도다. 특히 음색 부분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프리앰프 부문을 A클래스로 설계한 모습이다. 다양한 기능과 디지털 입력 등 부가적인 옵션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는 요즘 메인스트림 앰프 설계를 지양하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오직 순수한 아날로그 설계를 바탕으로 오롯이 맑고 순수한 음질만 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내 방의 문지방을 수많은 앰프가 스쳐 지나갔지만 i5는 그 어떤 앰프보다도 영롱하고 또한 살가운 소리를 내준다. 예를 들어 켈리 스위트의 ‘Nella Fantasia’의 피아노는 아침 이슬처럼 맑고 순수하다. 밝고 산뜻하지만 너무 심하게 밝아 탈색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고역까지 비브라토가 치고 올라갔다가 어느새 편안하게 이완되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리사 바티아쉬빌리와 엘렌 그리모가 함께 연주한 ‘거울 속의 거울’은 한겨울 모습을 감추었던 생명들이 봄의 기운을 받아 움트는 듯 피아노 건반 위에 오롯이 선명한 바이올린이 피어난다. 사방은 조용히 가쁜 숨을 잠시 멈추고 정적이 흐르며 음악은 작은 볼륨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일렁인다.

소니 롤린스의 활기 넘치는 ‘I'm An Old Cowhand’가 노곤했던 오후를 깨운다. 싱글 엔디드, 푸시풀의 적당한 온기와 꽉 찬 밀도감에 더해 더블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과 타이밍 속에서 질서 있게 요동친다. AB클래스 45W라는 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쥐어짜서 힘겹게 리듬을 구사하는 또래의 작은 앰프들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악기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하다.

제법 커다란 음장을 그려내면서 고도의 다이내믹스를 구사해야하는 바흐의 ‘Cum Sancto Spiritu’에서 i5는 깊고 넓은 음장을 아무렇지 않게 구현해낸다. 성부의 분포가 눈에 그려질 듯하며 악기들의 트랜스페어런시는 최고조로 올라간다. 아주 낮은 음압의 고약한 하이엔드 스피커가 아니라면 이 앰프 하나만으로도 평생 즐겨도 좋을 듯하다.

이런 마법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걸까? 내장된 버슨 클래식 앰프일 수도 있고 회로의 우수성일 수도 있다. 필자의 생각엔 오랜 시간 고도로 체득한 인간 사이몬의 설계와 튜닝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 덕분이다. 크기만으로 소박한 꽃밭으로 정도로 생각했다면 당신을 틀렸다. i5가 그려내는 음악은 작지만 화려한 화원이다.


가격 220만원  
실효 출력 45W(8Ω), AB클래스  
아날로그 입력 RCA×2, XLR×1  
프리 아웃 지원  
주파수 응답 20Hz-25kHz  
크기(WHD) 23×7.5×33cm  
무게 6.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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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21년 05월호 - 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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