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nic HPA-5000X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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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nic HPA-5000XL
  • 김유겸
  • 승인 2016.08.01 00:00
  • 2016년 8월호 (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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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공관으로 만들어내는 사실적인 아름다움



인간의 불행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한발 나아갔음에도 자꾸만 조금만 더를 외치게 되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생각인 듯하다. 오디오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새로운 기기를 들인 뒤 얼마간은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던 소리가 며칠만 지나면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들리기 시작한다. 마침 이때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소리를 청음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는 잠 못 이루는 밤의 연속일 것이다.
지난달에 이어 또 한 번 올닉의 헤드폰 앰프를 들어보게 되었다. 지난 번 다루었던 HPA-3000GT의 상급기라 할 수 있는 HPA-5000XL이 그 주인공이다. 평소에 사용 중인 HPA-3000GT도 이미 필자에겐 차고 넘치는 소리를 들려주는 훌륭한 기기였다. 적어도 HPA-5000XL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HPA-5000XL이 들려주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소리의 자연스러움은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즐기던 필자의 오디오 라이프에 가차 없이 돌을 던져 버렸다.

어떠한 불순물도 용납하지 않는 순수함
HPA-5000XL은 순전히 헤드폰만을 위해 만들어진 앰프이다. HPA-3000GT에는 지원했던 프리앰프로의 기능조차 들어 있지 않다. 약 10kg의 무게에 가로 23cm, 세로 38cm의 거대한 덩치가 단지 헤드폰 하나만을 위해 오롯이 기능하니 헤드폰이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최근 들어 헤드 파이 분야에서도 풀밸런스 방식의 연결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DAC부터 헤드폰까지 밸런스 단자를 지원하는 추세인데, 이에 맞추어 올닉 역시 지난 HPA-3000GT부터 밸런스 입·출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5000XL이라는 제품명에도 ‘eXceLlence’와 함께 XLR 밸런스 입·출력을 지원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밸런스와 언밸런스 입력 사이의 전환은 두 단자 사이에 있는 버튼으로 이루어지며 헤드폰 출력 단자는 전면의 볼륨 노브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각각 6.5mm 언밸런스 출력과 4핀 XLR 밸런스 출력 단자를 하나씩 배치했다. HPA-3000GT의 경우 헤드폰의 임피던스에 따라 저 임피던스용 출력 단자와 고 임피던스용 출력 단자를 구분해둔 데 반해 HPA-5000XL은 임피던스의 구분이 없는데, 이는 OTL/OCL이라는 HPA-5000XL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OTL은 ‘Output Transformer-Less’, OCL은 ‘Output Capacitor-Less’의 약자이다. 진공관의 경우 트랜지스터에 비해 내부 임피던스가 높기 때문에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닉의 HPA-5000XL은 출력 트랜스를 없애고 리시버와 바로 직결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올닉의 모든 제품들의 콘셉트는 소리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다. 음질적으로 유리한 볼륨 어테뉴에이터를 사용할 때에도 기성 제품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접점부를 하나로 줄여 자체적으로 제작한 어테뉴에이터만을 고집하는 부분 등에서 이미 올닉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콘셉트에 더 가깝게 다가간 방식이 바로 OTL/OCL 방식이라 할 것이다.
출력 트랜스가 소리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진공관을 통해 신호가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출력 트랜스를 거치면 순수한 진공관의 소리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 점이 거슬렸는지 HPA-5000XL은 출력 트랜스를 생략했다. 뿐만 아니라 커패시터까지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기존에도 OTL 방식의 진공관 앰프는 종종 만들어졌으나 OCL 방식까지 적용된 앰프는 올닉의 제품이 유일할 듯하다. 다이렉트 커플링 방식은 자칫 앰프에 연결된 리시버까지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술력 없이는 OCL 방식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올닉의 기술력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커패시터 없이도 DC Offset의 유입의 위험성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낸 결과 OTL/OCL 앰프가 탄생할 수 있었다.
OTL/OCL 방식은 전작인 HPA-5000부터 적용된 방식이지만 5000XL은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전작의 경우 OTL 방식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임피던스의 헤드폰들과 매칭시킬 수 없었다. 고 임피던스 헤드폰을 연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30~50Ω 사이의 헤드폰과의 연결에서 최적의 소리를 내도록 제작되었다. 만약 고 임피던스 헤드폰과 주로 연결할 목적이라면 기기를 제작하는 시점부터 해당 임피던스에 맞게 제조해야만 하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HPA-5000XL은 이를 보완하여 OTL 방식임에도 저 임피던스부터 고 임피던스까지 어떠한 헤드폰과 연결해도 본연의 성능을 내어 주도록 제작되어 헤드폰과의 매칭 문제를 해결했다.
기기를 바라보면 가장 먼저 둥글게 배치된 올닉의 폴리카보네이트 침니 속에 들어 있는 8발의 진공관이 눈에 들어온다. 올닉의 모든 제품은 진동에 취약한 진공관을 위해 두 가지 조치를 취해 놓았는데, 하나는 진공관을 감싸고 있는 침니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형 고무 재질의 튜브 댐퍼(Tube Damper) 소켓이다. 올닉 고유의 기술인 튜브 댐퍼로 인해 기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동이 진공관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고, 침니를 통해 외부의 소리에 의한 진동을 다시 한 번 방지하여 진공관을 진동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킨다. 진공관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한 안전사고 예방은 덤이다.



사용된 진공관은 종류에 따라 앞에서부터 초단관과 드라이브관 각각 2발, 그리고 출력관 4발로 구분된다. 초단관으로는 6AN8을 사용했다. 6AN8은 내부에 3극관과 5극관이 들어 있는 복합관으로 대부분의 진공관이 산업용으로 개발된 것임에 반해 애초에 오디오용을 목적으로 생산된 몇 안 되는 진공관들 중 하나이다. 두 개의 관 중 5극관은 5000XL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OTL/OCL 방식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정전류 기능을 통해 일정한 전류를 흐르게 함과 동시에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뒤에는 드라이브관인 E180CC가 자리 잡고 있다. 드라이브관은 초단관에서 증폭된 소리를 한 번 더 증폭시켜서 출력관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맡는다. 초단관과 드라이브관의 조합에 따라 기기의 음색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기의 개발 단계부터 두 진공관의 선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지금의 조합이 탄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출력 트랜스가 없는 기기를 제작하기 위해 최대한 저항이 낮은 진공관을 출력관으로 선택해야 한다. 5000XL의 출력관으로 사용된 7233은 헤드폰 앰프에 들어갈 만한 것들 중에서 내부 저항이 가장 낮은 진공관에 속하는 것이다.
진공관들 가운데에는 두 개의 밸런스 미터기가 기기의 상태를 표시해준다. OTL/OCL의 특성상 DC Offset이 발생하면 안전장치 없이 앰프에 연결된 리시버에 그대로 유입되어 자칫 리시버가 망가질 위험이 있다. 밸런스 미터기는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시켜준다. 정상적인 경우 미터기의 눈금은 항상 가운데를 가리키지만 이상이 생길 경우에는 좌측 혹은 우측으로 치우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바로 기기를 점검해야 한다. 만약 앰프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연결된 리시버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미 조치를 취해 두었다고 하니 혹시라도 값비싼 리시버가 고장날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가감 없는 사실적인 재현 능력
일반적으로 트랜지스터 앰프는 높은 해상력과 깨끗한 음을 표현하지만 다소 차가운 성향을 가지고, 이와 반대로 진공관 앰프는 자연스럽고 온기가 있는 음을 표현하는 대신 속도감이 떨어지고 배경이 깔끔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더 이상 트랜지스터와 진공관 사이의 경계를 지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다. 원음보다 차갑게 들려주는 것도 왜곡이고, 원음보다 따뜻하게 들려주는 것 역시 왜곡이다. 잘 만들어진 앰프라면 그것이 트랜지스터이든 진공관이든 상관없이 본연의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기기의 청음에 사용된 환경은 다음과 같다. 음원의 재생은 맥북 프로의 오디르바나 2를 사용했고, DAC은 코드의 2Qute를 HPA-5000XL과 RCA 케이블을 이용해 연결했다. 리시버는 젠하이저 HD800S이다.
HPA-5000XL은 올닉의 모든 기기들이 그렇듯 원음을 왜곡시킬 수 있는 불필요한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시킨 기기이다. 이로 인해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소리에는 어떠한 것도 과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의도적으로 무대의 공간을 넓히려 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넓은 공간에서 녹음된 것은 넓게,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녹음된 것은 좁게 표현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재즈 레코딩 음반 녹음이 잘 된 것으로 손에 꼽히는 ‘Jazz at The Pawnshop’을 들어 보자. 애초에 녹음 환경이 스웨덴의 한 작은 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무대 역시 좁을 수밖에 없다. 대신 사운드 엔지니어인 게르트 팜크랜츠(Gert Palmcrantz)는 각각의 악기 바로 앞에 마이크를 배치시킨 것에 더하여 관객 쪽을 향해서도 마이크를 배치했는데, 그 덕에 악기 연주의 세밀함과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명반이 탄생하게 되었다. HPA-5000XL은 그 현장감을 그대로 재현시켜 준다. 머릿속에 피아노와 드럼, 색소폰, 베이스가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서 서로 합을 맞추는 모습과 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들까지 그대로 그릴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재즈 음원을 하나 더 들었다. 매년 7월이 되면 생각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2집 ‘Back to Black’이다. 올해 7월 23일은 벌써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사망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 탓도 있지만 그동안에도 이따금씩 에이미의 음원을 들어서인지 아직도 살아서 새로운 앨범을 발매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록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에이미가 남긴 두 장의 앨범은 오래도록 세상에 남을 명반이라 할 것이다. ‘Back to Black’의 녹음 상태는 그리 깔끔한 편이 아니다. 고해상도 음원이 들려주는 높은 해상력이나 음의 섬세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기준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히려 거친 녹음 상태와 에이미의 보컬의 만남으로 인해 에이미의 감성이 온전하게 전달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기 역시도 음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 HPA-5000XL은 에이미의 끈적한 보컬과 묘한 울림이 있는 녹음 환경을 오롯이 청취자에게 들려준다. 마치 오래된 로하스 계열의 스피커를 통해 LP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재즈라는 장르가 진공관에겐 홈그라운드와 같다고 여겨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감상 환경은 너무 편파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새로운 음악을 재생해 보았다.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리는 여성 그룹, 씨스타의 신보 ‘몰아애’이다. 진공관 앰프와 걸그룹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다. HPA-3000GT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진공관 앰프의 반응 속도가 무디다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진공관 앰프도 충분히 빠르고 맺고 끊음이 정확하다. 2번 트랙인 ‘끈’은 비트감이 상당히 강조된 곡으로 곡 전체에 걸쳐 퉁퉁 쳐주는 비트의 리듬 표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곡 자체가 밋밋하게 들릴 텐데, HPA-5000XL은 단단한 비트의 표현으로 곡의 경쾌한 리듬을 제대로 살려 주었다. 곡 중간 부분의 EDM식 믹싱 표현까지 완벽하니 이 정도면 아이돌 음악에도 적합한 진공관 앰프라고 인정해도 좋다.



지난 2016년 6월호에 소개되었던 Allnic HPA-3000GT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선물
귀는 참 간사하다. HPA-3000GT를 들을 때에도 정말 자연스러운 소리 표현이라고 감탄했는데 HPA-5000XL을 들으니 3000GT보다 수준 높은 자연스러움에 또 다시 매료되어 버렸다. 진공관이 들려주는 배음과 잔향감이 한층 돋보이고, 음 하나하나의 선명함은 곡 전체를 더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이는 두 기기를 나란히 놓고 비청했을 때 느껴지는 결과이지 결코 3000GT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HPA-5000XL은 오로지 음질 하나에만 온 신경을 쏟는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어울리는 기기이다. 음질에 방해가 되는 아주 작은 요소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욕심쟁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5000 시리즈는 원래 상업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올닉의 박강수 대표 본인이 즐기기 위해 개발한 기기였던 것이 들어본 지인들의 요청에 의해 상품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꾸준히 진공관 제품이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과거 진공관의 인기에 비하면 이제는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HPA-5000XL은 점차 잊혀 가는 진공관만의 우수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기기이며 아직 진공관 앰프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헤드 파이 분야에서 끝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HPA-5000XL을 꼭 한 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가격 총판 문의    사용 진공관 6AN8×2, E180CC×2, 7233×4   헤드폰 출력 6.5mm RCA×1, 4 pin XLR×1   아날로그 입력 RCA×1, XLR×1   주파수 응답 20Hz-20kHz(±0.3dB)   전압 게인 +28dB   THD 0.03% 이하    S/N비 -68dB   크기(WHD) 23×16.5×38cm    무게 9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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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6년 8월호 - 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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