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제작사 올닉(Allnic)은 헤드폰 앰프에도 진심이다. 얼마 전 OTL/OCL 방식의 헤드폰 앰프 HPA-10000을 내놓은데 이어, 이번에는 전통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 방식의 HPA-300B를 선보였다. 모델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직열 3극관의 대명사 300B를 출력단에 싱글로 투입했다. 4개 헤드폰 출력뿐만 아니라 스피커 출력도 된다.

외관부터 본다. 일단 섀시 사이즈가 풀사이즈 인티앰프급이다. 가로폭이 43cm, 높이가 24cm, 안길이가 42cm이며 무게는 23.6kg이 나간다. 전면 중앙에 올닉이 자랑하는 61단 정임피던스 어테뉴에이터, 양쪽에 출력관 바이어스 상태를 알 수 있는 레벨 미터, 그 사이에 파워 버튼과 입력 선택 노브 및 입력 상태를 표시하는 LED, 4개의 헤드폰 잭(6.3mm 2개, 4핀 XLR 2개)이 있다.

상판은 앞 열에 초단 및 드라이브단 역할을 하는 복합관 6DR7, 가운데 열에 출력관 300B가 각각 채널별로 1개씩 자리잡고 있다. 300B 옆은 정류관 5U4GB, 6DR7 옆에 1개씩 마련된 작은 트랜스는 초크 트랜스. 뒷 열은 가운데에 전원 트랜스, 양옆에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가 버티고 있다. 후면은 입력 단자가 채널별로 RCA 3조, XLR 2조, 스피커 출력용 바나나 단자가 채널별로 1조 마련됐다.

HPA-300B는 기본적으로 300B를 클래스A 증폭, 싱글 구동해 최대 출력 8W를 내는 헤드폰 앰프로 10-600Ω 헤드폰을 최대 4개까지 동시에 드라이빙할 수 있다. 전압 게인은 28dB, 최대 입력 전압은 3V, THD는 0.1% 미만, S/N비는 -90dB를 보인다. 참고로 출력관에 3극관 6C19P를 채널당 4개씩 투입한 HPA-10000 OTL/OCL은 출력 10W를 낸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복합관 6DR7인데, ‘복합관’이라는 말 그대로 하나의 진공관 안에 특성이 다른 2개의 3극관이 들어가 있다. 전압 증폭률이 68로 아주 높은 3극관이 이 헤드폰 앰프의 전압 게인 대부분을 확보하고, 플레이트 손실이 7W로 높은 다른 3극관이 뒤에 오는 출력관 300B를 강력하게 드라이빙한다. 6DR7이 예전 올닉 HPA-3000 MT 헤드폰 앰프에서 출력관으로도 사용된 이유다.

진공관의 마이크로포닉 노이즈를 없애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눈에 띈다. 이는 올닉 박강수 대표와 전화 통화 중 알게 됐는데, 젤 타입 댐퍼를 초단관인 6DR7뿐만 아니라 출력관인 300B 소켓에도 마련한 것이다. HPA-300B가 귀에 밀착해 듣는 헤드폰을 위한 것인 만큼 출력관의 미세한 진동 잡음 노이즈도 철저히 막겠다는 설명이다. 300B에 평소 올닉 앰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흰색 가드가 끼워져 있는 것도 ‘액체 고무’에 떠 있는 300B가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HPA-300B는 또한 출력관을 싱글 구동하는 데도 10kHz 방형파를 출력한다. 그만큼 고역에서도 트랜지언트 왜곡이 없다는 뜻이자 자연음에 최대한 가까운 소리를 들려준다는 뜻이다. 61단 정임피던스 어테뉴에이터는 음량이 크든 작든, 소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든 올닉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다. 이 밖에 전압 변동률이 작은 전원 트랜스와 초투자율이 좋은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는 오늘의 올닉 진공관 앰프를 있게 한 주인공들이다.

필자의 시청실에서 진행한 HPA-300B 시청에는 솜 sMS-200 울트라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코드 M-Scaler, 마이텍 맨해튼 Ⅱ DAC, 그리고 ZMF 오터 클래식 헤드폰을 동원했다. 참고로 오터 클래식 헤드폰은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채택한 개방형 헤드폰으로, 임피던스는 300Ω을 보인다. 음원은 룬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첫 곡으로 다이애나 크롤의 ‘No Moon At All’을 들어보면 무대 앞이 투명하고 피아노의 고음이 맑은 점이 도드라진다. 그러면서도 음이 견고하고 저역의 에너지감이 넘쳐나는데, 이는 지난달에 리뷰했던 HPA-10000 OTL/OCL보다 낫다. HPA-10000은 대신 음이 아주 깨끗하고 술술 나온다. 보컬의 잔향음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들리고 무대가 적막한 것은 고 임피던스 헤드폰이 누리는 특권이자, 초단관과 출력관에 베풀어진 특단의 노이즈 관리 덕분이다.

위켄드의 ‘Blinding Lights’는 킥 드럼과 보컬이 헤드폰 진동판이 아니라 필자의 정수리 한 가운데에서 나타나 연주하고 노래한다. 대단한 스테레오 이미지다. 무엇보다 악기들 하나하나를 낱낱이 분해해서 들려주는 모습이 대단하다. 필자가 몇년 째 쓰고 있는 오디지의 평판 헤드폰 LCD-2 클래식으로 바꿔 들어보면 저음이 엄습해오는 분위기라든가, 더 탁 트인 무대감이 남다르다. 다시 오터 클래식으로 바꾸면 이 곡 특유의 다이내믹스가 더 살아난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2악장을 들어보면, 음의 입자가 곱고 파이프 오르간의 질감이 소름 돋을 만큼 생생하다. 우르릉 거리는 파이프 오르간이 마치 떼로 몰려온 거대한 야수들 같다. 오케스트라 현악과 목관의 섬세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연주도 압권. 어느 경우에나 음이 혼탁해지거나 지저분해지지 않는 점이 HPA-300B의 특징이다. 막판 총주 파트에서는 풀 파워의 기세 좋은 음들이 큰 파도처럼 몰려왔다.

콜레기움 보칼레의 ‘Cum Sancto Spiritu’는 남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만끽했다. 이 곡은 ZMF 헤드폰과 오디지 헤드폰을 6.3mm 잭에 꽂아 놓고 번갈아 가며 들었는데, 헤드폰별로 확실히 다른 음과 무대를 선사했다. ZMF 헤드폰은 음의 윤곽선이 진하고 에너지가 빔처럼 직진해왔고, 오디지는 음은 약간 얇지만 헤드폰을 안 쓴 듯한 무대의 개방감이 돋보였다. 두 경우 모두 진동판의 존재감이 1도 없는데, 이는 그만큼 HPA-300B가 두 헤드폰을 확실하게 드라이빙한다는 증거다.
또 한 번 300B 진공관의 매력에 빠진 시청이었다. 300B를 싱글로 헤드폰 앰프에 쓰면 이렇게나 견고하고 야무지며 힘찬 음이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 옛날 웨스턴 일렉트릭이 지금의 헤드파이 세상을 위해 미리 300B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헤드파이 애호가들의 시청을 권해드린다.

사용 진공관 300B×2, 6DR7(13DR7)×2, 5U4GB×1
실효 출력 8W
헤드폰 출력 4-Pin XLR×2, 6.3mm×2
아날로그 입력 RCA×3, XLR×2
주파수 응답 20Hz-20kHz(±0.5dB)
전압 게인 +28dB
출력 임피던스 10-600Ω
최대 입력 전압 3V
S/N비 -90dB
THD 0.1% 이하
크기(WHD) 43×24×4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