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nic H-10000 OTL/O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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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nic H-10000 OTL/OCL
  • 김편
  • 승인 2023.12.07 18:24
  • 2023년 12월호 (617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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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앰프에도 발롱도르가 있다면 이들에게 한표!

대한민국 제작사 올닉(Allnic)에서 OTL/OCL 설계의 새 플래그십 포노 앰프 H-10000이 나왔다. OTL/OCL(Output Transformer-Less/Output Capacitor-Less)은 말 그대로 진공관 앰프 출력단의 커플링 트랜스포머와 신호 경로상의 커패시터를 생략, 왜곡과 착색,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설계. OTL/OCL이 증폭률이 프리앰프보다 훨씬 높은 포노 앰프에 투입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필자의 시청실에 도착한 H-10000 OTL/OCL은 전원부를 분리시킨 당당한 2섀시 구성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면을 보면 가운데 위쪽에 입력 선택 노브가 있고, 아래쪽에 LCR 멀티커브 EQ 노브가 채널당 2개씩(턴오버, 롤오프) 있다. 양옆에는 증폭 과정에서 DC가 끼어드는지 여부를 모니터할 수 있는 밸런스 미터가 총 4개 달렸다. 후면을 보면 왼쪽에 MM/MC RCA 입력 단자 각 2조, 오른쪽에 XLR과 RCA 출력 단자가 각각 1조씩 마련됐다.

본체 증폭부는 진공관 대잔치. 좌우측에 8개씩, 총 16개의 진공관이 폴리카보네이트 침니 안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좌우측 진공관 배열이 다르다. 이는 이 포노 앰프가 40-72dB라는 높은 게인을 확보하기 위해 2단 증폭을 하고, 이를 U자형으로 배치했기 때문. 즉, 좌우 채널 입력 신호가 각각 복합관 ECF802, 쌍3극관 E180CC, 3극관 7233 2개를 거쳐 1단 증폭이 되고, 포노 커브 보정을 거친 후 다시 ECF802, E180CC, 7233 2개를 거쳐 2단 증폭이 된 후 출력되는 것이다.

OTL/OCL이 되면서 올닉의 자랑이었던 퍼멀로이 코어 출력 트랜스는 사라졌다. 대신 채널당 2개의 출력관 7233이 양전원과 음전원 모두를 사용하는 싱글엔디드 푸시풀(SEPP) 회로를 구성, DC가 스피커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출력관으로 7233을 선택한 것은 내부 저항이 230Ω으로 무척 낮아 채색이나 왜곡 없이 뒤에 오는 프리앰프나 인티앰프를 강력히 드라이빙할 수 있기 때문. 프리앰프 L-10000 OTL/OCL에서도 출력관으로 내부 저항이 700Ω으로 낮은 3극관 300B를 채널당 2개씩 쓴 이유다.

내장 MC 승압 트랜스의 코일이 은선인 점도 눈길을 끈다. 올닉의 포노 앰프나 승압 트랜스가 유명했던 것은 트랜스 코어로 초 투자율이 좋은 퍼멀로이를 썼기 때문인데, 여기에 전도율이 구리보다 높은 은을 코일로 씀으로써 성능을 더욱 향상시킨 것이다. 승압 트랜스는 에너지 변환 및 전달 과정에서 코일 저항과 코어 포화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는 점이 문제인데, 은선 코일을 쓰면 코일 저항을 최대한 낮출 수 있게 된다. 기존 플래그십이었던 H-7000V ST 역시 은선 코일 승압 트랜스를 쓴다.

H-10000은 또한 이 승압 트랜스의 증폭률과 입력 임피던스를 4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상판 뒤쪽에 채널당 1개씩 마련된 승압 트랜스를 보면 22dB(×13), 26dB(×20), 28dB(×26), 32dB(×40), 이렇게 4가지 증폭률과 권선비가 적혀 있다. H-10000의 MM 게인이 40dB, MC 게인이 62dB, 66dB, 68dB, 72dB인 배경이다. 이렇게 권선비가 정해지면 MC 입력 임피던스는 ‘MM 입력 임피던스 / 권선비 제곱’ 공식에 의해 자동으로 정해진다. MM 입력 임피던스가 47㏀인 경우, 22dB는 278Ω, 26dB는 117Ω, 28dB는 69Ω, 32dB는 29Ω이다.

H-10000의 화룡점정은 표준 RIAA 커브뿐만 아니라 데카, 콜롬비아 등 다른 포노 커브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전면 패널에 채널당 2개씩 마련된 ‘LCR 멀티커브 EQ 유닛’을 통해서다. 예를 들어 RIAA 커브는 이퀄라이징 단계에서 6dB 부스트시키는 저역 턴오버 주파수를 500Hz, 10kHz 고역 재생 시 감쇄량을 -13.7dB로 선택하면 된다. H-10000은 이 표준값 말고도 턴오버 주파수는 250Hz, 400Hz, 500Hz, 700Hz, 고역 감쇄량은 -5dB, -11dB, -13.7dB, -16dB 중에서 고를 수 있다.

H-10000 시청에는 필자가 몇년째 쓰고 있는 쿠즈마의 스타비 S 턴테이블과 4포인트 9 톤암, 올닉 로즈 MC 카트리지(내부 임피던스 9Ω)를 동원했다. 프리앰프는 패스 XP-12, 파워 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AW150R, 스피커는 B&W 801 D4. 승압 트랜스 증폭률은 26dB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되면 카트리지가 바라본 부하 임피던스는 117Ω이 된다.

첫 인상은 음이 견고하고 형태가 분명하다는 것. 음의 촉감이 예전 포노 앰프들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개운해진 점도 눈에 띈다. 스톡피쉬 레코드의 <Vinyl Collection> 앨범 중 사라 K의 ‘Stars’를 들어보면 이 곡에 이렇게나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온갖 악기들이 저마다 음들을 토해낸다. 사라 K의 목소리는 이날따라 발음이 분명한데, 특히 그 어떤 스트레스나 롤오프 없이 위로 쭉쭉 뻗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성진의 <The Handel Project> 앨범 중 헨델 모음곡 2번에서는 숨넘어갈 정도로 조용한 무대에 홀로 등장한 피아노의 또렷한 이미지와 왼손과 오른손 건반음의 명확한 대비가 도드라진다. 음이 또렷하고 깨끗하며 분명하다는 것이 필자가 현재 쓰고 있는 올닉 H-5500은 물론 리뷰 내내 감탄했던 H-7000V ST와 가장 다른 점이다. OTL/OCL 설계와 적재적소에 배치된 진공관, 은선 승압 트랜스, LCR EQ 회로, 분리된 전원부 등이 원팀을 이룬 결과다.

폴 챔버스 쿼텟의 <Bass On Top> 앨범 중 ‘Yesterdays’는 그야말로 폐부를 찌른 낮고 육중한 베이스의 저음에 거의 환장할 뻔한 곡. LP로 전해지는 무보정 저음의 에너지와 호소력이 대단하다. H-10000 시청 전에도 여러 차례 들은 곡인데, 이 정도로 야무지고 입체적인 사운드를 들려준 적은 없었다. 베이스뿐만 아니라 케니 버렐의 기타, 아트 테일러의 드럼, 행크 존스의 피아노도 모두 신났다.

이 밖에 하우저와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백조의 호수에서는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듯한 첼로와 풀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감동, 키스 자렛의 보르도 콘서트에서는 은근 겨울에 어울리는 고졸한 서정을 만끽했다. H-10000이 선사한 이 월등한 사운드 퍼포먼스는 앞으로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만약 포노 앰프 분야에도 발롱도르가 있다면, 그 강력한 수상 후보는 H-10000 OTL/OCL이다. 


사용 진공관 7233×8, ECF802×4, E180CC×4 
듀얼 모노 LCR 타입 멀티 커브 EQ 모듈 탑재
아날로그 입력 RCA×4 
아날로그 출력 RCA×1, XLR×1 
주파수 응답 20Hz-20kHz(±0dB)
전압 게인 +40dB(MM, 1kHz), +72dB(MC, 1kHz) 
입력 임피던스 200Ω(MC), 47㏀(MM) 
S/N비 -80dB
THD 0.1% 이하 
출력 임피던스 50Ω 
크기(WHD) 43×20×38cm, 43×13×33cm 
무게 12.6kg, 16kg(전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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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23년 12월호 - 6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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