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son Benesch A.C.T. 3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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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son Benesch A.C.T. 3Zero
  • 김남
  • 승인 2023.10.12 11:31
  • 2023년 10월호 (615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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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에서부터 기술력까지 어디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스피커

영국의 윌슨 베네시에서 또 하나의 명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매우 고가 제품이다. 그냥 거두절미하고 명기라는 호칭을 붙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카본 파이버 톤암과 턴테이블로 시작된 윌슨 베네시에서 1994년에 A.C.T. One(이하 ACT 1)이라는 스피커 제품이 등장한 이래 후속작이 나올 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보통 스피커 한 기종이 호평을 받으면 이것저것 보급기도 뒤섞어 판매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정석인데, 이 제작사는 카본 파이버라는 특수 재질을 사용하면서 소리의 수준을 점점 올려 고가 제품만으로 라인업을 구성해 웬만한 사람은 건드릴 수 없는 굉장히 하이엔드에 비중이 높은 제작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작사의 제품 역시 한 번 들이면 좀체 내놓는 사람이 없어서 중고 찾기도 힘들다.

탤런트이며 만능 연예인으로 일세를 풍미하다가 지금은 고인이 된 ‘트위스트 김’이라는 분이 있다. 그분과 친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JBL의 한 기종을 쓰고 있었지만 약점이 많다면서 교체할 만한 스피커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영업 사원이라도 된 듯 ACT 1을 천거했다. 나는 이 제작사의 첫 제품 ACT 1이 출시된 무렵부터 잡지에 오디오 리뷰를 시작했는데, 그즈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그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성질 급한 분답게 그날로 들여놨다는 연락이 왔다. 턴테이블도 그 제작사의 카본 제품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그 후 집에 놀러와 내 오디오의 소리를 재음미해 보더니 ‘그전에는 꽤 좋게 들렸는데 이제 들으니 형편없네’ 라고 기분 나쁜 소감을 털어놨다. 자기 것에 비해 밀도, 해상도가 결핍되었고, 크기만 했지 저역은 무르고, 윤기가 부족하다는 등 오만 정 떨어지는 소리 나열, 그러면서 당장 바꾸라기에 그만 떠들고 가라고 쏘아붙였다. 누가 바꾸고 싶지 않았겠는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있으랴. 당대 일류 연예인은 그 뒤로도 그 스피커 얘기를 빼놓지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사용하리라 다짐해 마지않았다. 하루는 ‘선배, 나이 차이가 있으니 산술적으로 선배가 먼저 죽을 터이고, 그러면 그때 그 스피커 나에게 주고 가소’ 했더니 스피커는 물론 소장 앨범도 모두 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인생은 기이하다. 60이 넘어서도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했던 이 강건한 스포츠맨은 어느 호텔 계단에서 넘어져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뇌진탕으로 타계하고 말았다. 시절이 지났어도 가끔씩 꿈에 나타나 하하하 웃곤 한다.

이 제작사 제품은 화려하다. 10개의 드라이버를 배치한 거액의 플래그십 대형기도 있고, 소형기지만 마치 유럽의 고성(古城) 같은 디스커버리 제품도 있다. 그리고 한결같이 화강암 덩어리처럼 무겁다. 반면 시청기 A.C.T. 3Zero는 얼른 보면 평범해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데, 소리를 울려 보면 단 한순간에 몸을 움찔하게 만든다. 동일한 앰프를 사용했는데도 삽시간에 향기와 열기 가득 찬 훈풍이 확 몰려오기 때문이다. 해외 리뷰를 보니 삼가 경의를 표한다는 표현도 있다.

이 스피커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진화된 제품으로, 물리적 비율은 유지되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개선점의 으뜸은 인클로저로, 복합 모노코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는 것. 자동차의 차체에 대한 소개로 자주 만나게 되는 모노코크라는 단어는 골조와 외피를 완전히 일체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 이 스피커의 인클로저가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체 복합 재료라는 새로운 재료로 개발되어 이전 인클로저보다 더 나은 감쇄, 더욱 정숙한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그리고 스텔스 톱이라는 기하학적 형태의 카본 파이버 상판도 주목할 만한데, 이는 평평한 표면의 수를 줄여 정재파를 감소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후면의 덕트도 적층형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해 특별하게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포트에서 밀려 나가는 공기의 속도를 늦춰 에너지를 줄여 벽 근처에 배치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인클로저 마감도 무늬목에서부터 다양한 컬러의 페인트 마감, 카본 마감 등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고, 당연히 가격 차이가 있다.

업그레이드된 드라이버 기술도 괄목할 만하다. 먼저 미드레인지와 우퍼의 더스트 캡과 트위터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독특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플래그십인 에미넌스에 투입된 것과 동일하게 피보나치 요소를 적용한 것으로, 카본 파이버와 나일론 합성물을 사용해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주파수 응답의 정확성과 왜곡 감소, 평탄한 주파수 응답과 초광대역 분산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진동판도 실크-탄소 섬유 복합 돔, 아이소택틱 폴리프로필렌 콘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미드레인지가 크로스오버 없이 앰프에 직접 연결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역시 플래그십의 설계와 동일한데, 종래 스피커가 드라이버 모두 크로스오버를 통해 소리를 울리는 것과 달리 시청기는 미드레인지가 앰프와 직접 연결, 크로스오버 설계가 단순화되어 가장 짧고 순수한 신호 경로를 생성한다. 아마 이 기술력이 시청기의 가장 큰 사운드 특성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ACT 스피커 시리즈 중 최초로 아이소배릭 드라이브 시스템을 장착했는데, CNC로 정밀 가공한 세 부분으로 구성된 묵직한 금속 하단부에 수납되어 있으며, 공개된 사진에서 그 실체를 볼 수 있다.

시청기의 사운드 스테이지는 장대하고 생생하다. 마치 유럽 왕궁의 화려한 대리석 홀에 와 있는 느낌. 이런 느낌은 근래 들어 본 고가 제품과도 좀 다르다.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한 훈풍이 얼굴에 부딪혀 진기한 감촉을 준다. 경외감, 확실히 그렇다. 청취 소감을 단순히 요약하자면 정밀, 육중, 미려, 활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가격 4,610만원   
구성 2.5웨이   
사용유닛 우퍼 17cm 윌슨 베네시 택틱 3.0, 미드레인지 17cm 윌슨 베네시 택틱 3.0, 트위터 2.5cm 윌슨 베네시 피보나치 하이브리드 실크-카본, 아이소배릭 드라이브 시스템(2) 17cm 윌슨 베네시 택틱
재생주파수대역 34Hz-30kHz   
출력음압레벨 89dB/2.83V/m   
임피던스 6Ω   
크기(WHD) 19.4×113.2×37.6cm   
무게 4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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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23년 10월호 - 6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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