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아는 조용필이 하얀 연미복을 입고 뽀샤시하게 필터를 입힌 사진의 <조용필 1집>이 아니다. 이 앨범에 대해 본인조차 부끄럽고, 내 진짜 음악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 조용필의 숨겨진 흑역사인 ‘여학생을 위한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1집’을 굳이 LP로 만들어 냈다. 조용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다. 제목부터 선곡까지 당시 유행하는 서정적인 포크 송에 끼워 넣으려고 한 듯하다. 조악한 녹음과 촌스럽기 그지없는 전자 오르간이 음악의 감상을 방해하지만 이 음반을 무시하기 힘들고, 또 이렇게 다시 흑역사를 꺼내 놓게 되는 이유는 이 음반에 조용필의 최고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곡의 원형이 통기타 연주에 실려 들어 있다. 말하자면 명작의 초고인 셈이다. 이 같은 사료적인 가치만으로도 이 음반의 소장 가치를 높이지만, 긍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열악한 환경에서 이를 뚫고 튀어나오는 가왕 조용필의 역량을 들어 볼 수도 있는 묘미도 있다. 좀처럼 부르지 않는 당시 유행하던 번안곡이나 지금은 전혀 부르지 않는 장르를 노래하는 조용필을 들어 보는 것도, 가수 본인에게는 탐탁지 않겠지만, 나름 재미가 있다. 또한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가왕의 망가진 모습을 보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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