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nie Rossi L2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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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nie Rossi L2i-SE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20.12.09 17:26
  • 2020년 12월호 (581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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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직열 3극관의 눈부신 매력

우리가 흔히 3극관 앰프라고 할 때 쓰이는 진공관은 직열 3극관이다. DHT라고 한다. 필라멘트를 직접 달궈서 전자를 탈출시키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방열 3극관 계열이 존재한다. 이것은 히터에 의해 달궈진 캐소드로부터 전자가 방출되는 방식이다. 300B, 2A3 등은 전자에, 12AU7, 12AT7, 6SN7 등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가 주로 출력관에 쓰이면, 후자는 주로 초단관에 쓰인다.

비니 로시(Vinnie Rossi)라는 생소한 브랜드의 인티앰프인 L2i-SE는 참 묘한 제품이다. 실제로 SE 버전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SE는 직열 3극관으로 전압 증폭단을 구성한 반면, 그렇지 않은 것은 방열 3극관을 동원한다. 우리에겐 후자가 낯익다.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SE 버전에는 300B가 장착되어 있다. 출력관이 아니다. 출력단에는 MOSFET를 사용해서 출력을 높인 반면, 흔히 초단이라 부르는 전압 증폭단에는 300B가 투입된 것이다. 문제는 이 녀석이 소릿결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300B의 투명함과 음색을 유지하면서 탄탄한 구동력을 아울러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300B의 신화를 동경하는 분들 대부분이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10W의 부족한 출력이 큰 원인일 것이다. 이 부분이 해소된다면, 다시 한번 300B에 도전해볼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2A3, PX4 등도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일단 구입해서 쓰다가 이렇게 관을 바꿔서 사용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본 기는 인티앰프치고는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잘 알려진 브랜드도 아니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니고(무게는 꽤 나간다), 출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8Ω에 100W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두 개의 300B가 슬쩍 어깨를 드러낸 상단의 디자인부터 전체적인 만듦새가 일절 흐트러짐이 없고, 내부를 보면 완전한 듀얼 모노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정말 속이 꽉 찬 제품인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음질.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정말 중독성이 있다. 인티앰프를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어도 될까 싶을 정도다. 출력단을 구성하면서 3극관의 장점을 정확하게 반영한 탓이리라. 사실 주택 환경이 협소하고, 이것저것 손대는 게 귀찮아진 요즘, 심플하게 인티앰프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비단 필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분리형에 필적하는 인티앰프가 드문 만큼, 본 기는 그런 면에서 꽤나 장점이 많은 것이다.

본 기의 사용성도 꽤나 매력적이다. 옵션으로 포노단과 DAC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포노단은 1개의 MM과 2개의 MC를 꼽을 수 있다. 어지간한 카트리지는 모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고, RIAA 커브에도 정확하게 대응한다. 한편 DAC단은 정평 있는 일본의 AKM AK4497EQ 칩을 채널당 한 개씩 장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PCM은 32비트/768kHz, DSD는 512까지 커버하고 있다.

비니 로시는 당연히 동사를 주재하는 분이다. 모든 제품을 직접 설계하는데, 이전에는 레드 와인 오디오를 운영하다가 회사명을 자기 이름으로 바꿨다. 원래 전기공학 엔지니어 출신으로, 처음에는 방열 3극관을 사용한 프리앰프라든가, 클래스AB 방식으로 MOSFET를 쓴 파워 앰프 등을 만들다가 어느 순간 직열 3극관의 매력에 빠져들어 신제품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그 결실이 바로 본 기인 것이다. ‘DHT의 성배를 들고 말았다’라고 밝히는 대목에서, 300B의 장점이 극대화된 본 기의 탄생은 이미 예견된 것이리라.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오디오 솔루션의 피가로 M, 소스 쪽에는 토탈 DAC의 d1-six·d1-digital reclocker를 세트를 각각 동원했다.

첫 트랙은 에스더 유가 연주하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와우!’, 가벼운 탄성이 나온다. 내가 아는 300B의 음색을 정말로 아름답게 구현하고 있다. 처음 300B의 음을 듣고 받았던 충격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다. 이 큰 스피커의 전 대역이 균등하게 재생되고, 빠른 반응을 낼 뿐 아니라, 고품위한 음색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특히, 바이올린의 청아하면서 요염한 느낌은 정말 감칠맛이 난다.

이어서 게리 카가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 1악장. 원래 첼로로 연주하는 곡을 더블 베이스로 바꿨다.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한 음이 난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다. 곡이 가진 우수와 슬픔이 적절히 반영되면서 투명함이 빛난다. 들으면 들을수록 제작자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본적으로 음악을 아는 분이란 인상이다.

마지막으로 그랜트 그린의 ‘No. 1 Green Street’. 블루 노트 전성기의 녹음. 왼쪽에 기타, 오른쪽에 드럼, 가운데에 베이스라는 편성. 단출하지만 결코 허하지 않다. 기타 줄을 튕기는 피크의 움직임이 명료하게 다가오고, 심벌즈 레가토의 신명 난 느낌도 잘 살아 있다. 연주자의 숨결이나 존재감이 잘 드러나고, 빠른 스피드도 인상적이다. 블루 노트가 정말로 새롭게 태어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절로 발장단을 낼 수밖에.


가격 2,800만원(DAC, 포노 옵션 별도)  
사용 진공관 EH300B×2  
실효 출력 100W(8Ω), 170W(4Ω)  
디지털 입력(옵션) Optical×1, Coaxial×1, USB B×1  
아날로그 입력 RCA×2, XLR×1  
아날로그 출력 RCA×1, XLR×1  
주파수 응답 0.5Hz-150kHz(±1dB)  
출력 임피던스 0.1Ω  
입력 임피던스 10㏀  
크기(WHD) 43.8×22.6×36.8cm  
무게 2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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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20년 12월호 -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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