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CAP-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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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CAP-1004
  • 곽영호
  • 승인 2020.07.09 13:37
  • 2020년 07월호 (576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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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커브, 아날로그 음악의 신세계로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의 상상(Imagicus) 능력은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지만 이 과정에는 기술(Technic)이 필수적이다. 기술의 수준은 도구의 사용을 통해 볼 수 있기에 도구의 인간(Homo Faber)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리 정밀한 석기라고 해도 청동기를 능가하기 힘들고, 철기를 사용하던 종족들은 고대 문명의 패권을 잡지 않았던가? 아날로그로 음악을 즐기기 위한 프레스티지 레벨의 도구라면 단연코 포노 커브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RIAA 포노로는 한 가지 사운드만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레코드를 듣기 위해 턴테이블에 포노가 내장된 앰프를 연결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외장형의 포노 스테이지를 사용하게 되면 조금 더 높은 단계로 진화된 오디오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기존의 단순한 RIAA 커브 외에 RIAA, NAB, COLUMBIA, FFRR, AES, RCA와 같은 포노 커브를 적용하여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음악의 신세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2016년 발간된 ‘레코드의 비밀’의 독자들에 따르면 모노는 물론 스테레오 시대의 레코드에 여러 가지 포노 커브를 적용하여 음악 감상의 즐거움이 크게 증진되었다고 한다. ‘멀티 포노 커브 이퀄라이징’이라는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새로운 사운드를 듣고 나면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초판 집필 당시 필자의 생각과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당시에 발매된 기기들의 설명을 참고 레이블별 사운드 특성으로 분류하였으나 이제는 새로운 포노 스테이지의 도움을 받아 스튜디오에 따른 사운드 특성을 정리하여 안내할 수 있게 되었다. 위 책의 개정판을 준비하는 청음 작업에서 수준 높은 아날로그 도구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활약한 바쿤 프로덕츠의 CAP-1004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이하 1004로 칭함).

바리톤 루지에로 라이몬디(Ruggero Raimondi)의 노래로 토스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칸초네가 수록된 레코드(Erato) 한 장을 소개한다. 1984년 6월 이탈리아 북부의 빌라 콘타리니에서 클라우디오 시모네가 이끄는 이 솔리스티 베네티와의 녹음이다. 고음질 명반으로 알려진 시모네의 로시니 현악 소나타도 여기에서 레코딩되었다.

RIAA 커브만 지원하는 일반 포노 스테이지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공명과 벨벳처럼 달콤한 바리톤의 보컬을 제대로 맛보기 힘들어 이 음반의 진가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1004로 커브를 조정하여 들을 때 비로소 확인하게 되는 음악적 쾌감은 거의 충격에 가깝다. 무심코 지나치며 듣던 만돌린과 오르간의 파트조차도 제가끔 아름다운 공명으로 울려내기에 나도 몰래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커브 조정 전후를 비교해보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RIAA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사운드였다면 커브 적용 후에는 이탈리아 정통 바리톤의 다채로운 표현과 이 솔리스티 베네티의 아주 작은 피아니시모에서부터 폭풍처럼 몰아치는 울부짖음까지 다채롭게 변화하는 현의 아름다움을 듣게 된다. 이런 마법 같은 사운드를 발견하려면 1004의 실렉터를 AES 커브로 맞추면 된다. 정말 아주 간단한 조작으로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프랑스의 에라토는 레코드 생산을 폴리그램, 텔덱 등에 위탁했는데, 이 디스크는 유서 깊은 파테 마르코니에서 커팅과 프레스 과정을 거친 덕분에 우아하고 격조 있는 사운드가 담겨 있다.

안너 빌스마(Anner Bylsma)가 등장하는 필립스의 레코드 <Liszt, Late Chamber Music> 앨범을 들어보자. 빌스마 이름을 보고 혹하는 마음에 구입했다가 제대로 된 첼로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곧바로 실망하게 되는 이 음반의 포노 커브는 FFRR이다. 표준 RIAA 모드에서는 거칠고 생경한 고음의 흐느끼는 소리로 ‘리스트가 현대음악을 작곡했나?’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이 음반의 사운드를 1004가 아니면 어떤 기기가 찾아줄 수 있을까? 레코드 본연의 감동적인 음악과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면 제대로 된 사운드 이퀄라이징이 되도록 커브를 맞추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글스(Eagles)의 ‘Desperado’를 듣고 싶다면 멀티 커브 스위치를 NAB로 선택하면 된다. 포노 커브가 제대로 적용되면 오디오의 배경이 정숙해져서 폭넓은 다이내믹이 표출되고, 스테이지는 확장되며, 사운드의 순수함은 더욱 강조된다. 따라서 연주의 디테일들이 살아나고 라이브한 사운드가 청취 룸을 가득 채운다. 이런 마법(?)에 가까이 가기 위해 애호가들이 얼마나 많은 오디오 업그레이드와 튜닝을 해왔는지 모른다. 아날로그 레코드에 이런 마법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도구인 1004는 RIAA, NAB, COLUMBIA, FFRR, AES, RCA로 별도로 구성된 디스크리트 포노 회로 6개를 장착하고 있다. 각기 다른 포노 회로를 사용하는 특성상 곧바로 스위치를 전환하는 대신 뮤트 스위치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이 과정만 잘 지키면 스피커가 사라지고 기타와 보컬, 드럼과 베이스가 자리를 잡은 끝내주는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노라 존스(Norah Jones)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지만 보컬을 받쳐주는 세션들의 장인 정신까지 제대로 들어본 애호가들이 얼마나 될까? 뉴욕 소서러 사운드에서 녹음된 이 메가 히트 앨범의 ‘Don't Know Why’를 듣기 전에 AES 커브로 세팅하면 제시 해리스(Jesse Harris)의 멜로우 사운드 기타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진정한 명품 사운드는 이런 것이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아무리 값비싼 오디오를 들인다고 해도 해결되기 힘든 것, 그건 사실 제대로 된 도구로 소스의 본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1004 덕분에 이글스 앨범 끝의 한 곡만 듣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 A면 첫 곡부터 앨범 전체를 신나게 즐기며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이렇게 커브를 맞추고 음악을 들으면 아무리 볼륨을 크게 올려도 스피커의 재생음이 일그러지지 않는다는 거다.

이큐커브스 닷컴의 운영자도 포노 커브 매칭으로 인한 효과를 써놓았는데 읽을수록 큰 공감이 오는 것들이어서 일부를 소개한다. ‘사운드가 확연하게 변화하는데 마치 마스터를 입수하여 듣는 것처럼 음질의 수준이 올라간다.’ 이 변화는 초점이 미세하게 맞지 않은 출력물과 정교하게 맞아떨어진 출력물의 차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이렇게 세밀한 부분까지 사운드의 포커스가 맞게 되면 청감 공간 내의 음장이 스피커의 앞뒤와 좌우로 확장되며 평소에 듣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선명한 음악 정보들로 채워지니 악기와 보컬의 배음도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런 사운드는 리스닝룸 어디에서 들어도 편안함을 주며 심지어 옆방에서 들어도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04 멀티 커브 포노 EQ는 이런 방식으로 애호가들로 하여금 본래의 연주와 음반에 실린 음원에 한걸음 다가가게 한다. 결국 오디오 장비보다 음반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필자도 1004를 들여놓고부터 오디오 매칭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니 장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보유하던 오디오의 만족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인 포노 기기들이 가지는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째는 노이즈 레벨이다. 1004는 제조사가 공개한 스펙을 보면 S/N 비율 -134dB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수준 높은 음악 감상을 하려면 충분한 S/N비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스펙상의 수치보다 현저하게 높은 잡음 레벨을 가진 기기들이 대부분이다. 인위적으로 일정 레벨의 사운드를 삭제하는 꼼수로 뻥튀기된 S/N값으로 유혹하는 기기들도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사운드를 비교해보면 1004의 다이내믹 레인지가 풍부하게 표현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포노 커브의 정밀도다. 커브의 오차 범위가 꽤 큰 데도 음색이 좋다며 애호가를 유혹하는 진공관, 빈티지, 자작 계열의 기기들의 유혹은 또 다른 매력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운드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의 명기라고 불리는 앰프들의 포노 모듈에는 은색, 금색 띠를 두른 오차 5-10%의 탄소 저항들이 사용된다. 하지만 그건 그 시대 부품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일 뿐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최고라고 하긴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일일이 전문가의 손을 거쳐 캘리브레이션을 해야 한다는 건 1분 1초가 아까운 현대인들이 범접하기 쉽지 않다. 마이학이니 클랑이니 하는 전설적 이름 앞에 좌절한 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RIAA 회로 하나만 있는 검증된 포노 스테이지의 가격도 상당한데 1004에는 각각의 커브마다 별도 포노 회로가 있다는 건 상당히 놀랍다. 1% 오차의 고정밀 표면 실장형 금속 피막 저항이 적용되어 작은 공간에 6개의 디스크리트 회로를 높은 정밀도로 실현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승압이다. 취향에 맞는 MC 카트리지를 사용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스텝 업 디바이스들과의 매칭을 찾아내는 시행착오가 필요해서 아날로그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1004는 그냥 MC를 직결하고 패널 전면의 스위치를 MC로 바꾸기만 하면 끝이다. 임피던스 매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구세대의 오디오의 패러다임이며 SATRI 방식에서는 그냥 연결만 하면 된다. 카트리지의 출력에 따라서 게인 레벨을 4단계로 조정할 수 있어 간편하다.

게리 카(Gary Karr)가 연주하는 더블 베이스 음반은 누구나 한 장쯤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러 종류의 소스 CD, HDCD, SACD, 에소테릭, 슈퍼 아날로그 LP 등을 제각각 구입해서 들어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커브 조정이야말로 논쟁을 종식시키는 게임 체인저이다. 1004라는 도구로 커브 스위치를 RCA로 맞추게 되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말이다. 더블 베이스의 보잉에서 순도 높은 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저음역에서는 진동의 변화가 조금만 발생해도 음정의 이탈감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인데, 포노 커브를 RCA로 설정하고 듣는 명인 게리 카의 더블 베이스의 사운드는 흔들림 없는 일관된 에너지로 충만해진다. 거장의 레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사운드를 듣는 순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오디오적 쾌감이라고 부르는 사운드의 본질은 알고 보면 그 소스의 순수함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세상에 나쁜 음반은 없다. 음반의 커브 보정을 하지 않고 들으니 근본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장비들을 이것저것 바꾸며 방황하게 된다. 아무리 아날로그 장비가 좋아도 RIAA 커브 하나로는 수많은 음반의 사운드를 최상의 방법으로 재생할 수 없다. 아무리 오디오 튜닝을 해도 특정 성향의 소스 외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불만족스럽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기기와 특별히 비교하지 않더라도 바쿤 프로덕츠 CAP-1004 멀티 포노 스테이지가 만들어내는 사운드 변화의 체감은 기기 가격의 열배는 충분히 된다는 것이 이 기기를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인상이며 두 달 동안 꾸준히 사용하면서 레코드 사운드 원고를 집필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확실해졌다.

전원은 DC 5V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중간한 리니어 전원을 사용하는 것보다 애플의 스마트폰 충전기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와 주었다. 개발자인 나가이 아키라 씨의 연구실에서도 같은 전원부 사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이 글을 통해 포노의 커브 조정을 처음 접하셨다면 6월말에 발매되는 필자의 개정판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가격 185만원
아날로그 입력 RCA×1
아날로그 출력 RCA×1
최대 출력 8V(왜율 1%)
주파수 특성 20Hz-50kHz
EQ 커브 RIAA, NAB, COLUMBIA, FFRR, AES, RCA
4단 게인 0dB(72dB)/-10dB(66dB)/-20dB(59dB)/-30dB(51dB)
왜율 0.06%(1kHz, 출력 4V)
S/N비 -134dB(Gain 0dB)
EQ 오차 ±0.3dB
전원 DC 5V/250mA
크기(WHD) 13×4.5×18cm
무게 540g

576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20년 07월호 -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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