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회심의 스피커 신기종이다. 국내 오디오 엔지니어로 천재라고 평가받고 있는 싸이몬오디오랩의 이광일 사장과 프랑스 오라이(Aurai) 오디오의 협력으로 등장한 시스템인데, 생김새부터 감탄이 나온다. 단순해 보이지만 인클로저 뒷면을 완전 오픈한 일종의 오픈 배플형 스타일인데, 1980년 이전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 스타일의 소리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넓은 판때기 하나에 유닛 하나를 덩그렇게 심어 놓은 오픈 배플 방식은 사운드의 리얼함, 개방감, 자연스러움으로 듣는 사람을 매료시켰지만 거치 공간이 아파트라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시스템이라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유려한 방식을 미니멀하게 재생하게 한 것이 시청기이며 인클로저의 안 길이가 웬만한 대형기보다도 길고(55cm) 뒷면이 아예 없기 때문에 뒷벽에 바싹 붙여도 상관이 없다.

프랑스의 언더그라운드 스피커 제작사 오라이 오디오는 올해 70세인 노장 알란 프라탈리라는 분이 주재하는 곳인데, 그는 비 영업적인 분으로 소문이 나 있다. 돈을 벌려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만드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만들지도 않고 대량 제작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 괴짜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언더그라운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싸이몬오디오랩을 주재하고 있는 이광일 대표와 그가 친구처럼 지낸 지가 수십 년이다.

이광일 사장을 천재라고 서술한 것은 내 평가가 아니다. 이 분은 30여 년 전 에이프릴 뮤직을 창립, 한국의 인티앰프가 일본 시장을 석권하게 한 장본인인데, 그런 쾌거는 한국 오디오 역사상 그 한 사람뿐이다. 그때 일본의 저명한 오디오 평론가 한 분이 대담에서 세계의 오디오 엔지니어가 많지만 이렇게 모든 부품에 대해 해박한 분은 처음이다 라고 감탄했는데, 만약 이 제품을 마크 레빈슨이 만들었다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곁들였다. 그 분은 그 후로도 한국의 천재라고 두고두고 거론한다는 후일담을 전해 들었다.

그런 이광일 사장이 오랜 친구 알란 프라탈리에게 제안, 오랜 토론과 협의 끝에 만들어 낸 것이 본 시청기 Z84. 프랑스가 만든 한국의 첫 특주 스피커가 될 것이다. 첫 아이디어부터 완성까지 거의 10여 년이 걸린 이 스피커는 얼른 보면 풀레인지 제품 같다. 우퍼가 페이퍼 콘이긴 하지만 감도가 95dB이나 된다. 이 정도라면 300B 싱글로 울려도 충분하고 어떤 앰프로도 울리기 쉬운 것이다.

페이퍼 콘을 쓰지 않고 별의별 무거운 재질을 사용한 유닛은 울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대용량의 파워 앰프를 써야 하고, 그래야 되는 줄 알게 되어 버린 오디오계의 헛바퀴가 사실 페이퍼 콘 앞에서는 허무하다. 사실 스피커 재질은 어떤 고상한 신 물질일지라도 페이퍼를 능가할 수 없다는 그런 소리를 한 전문가에게 들은 적도 있다. 어떤 고가의 반도체라 할지라도 진공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

이 우퍼의 장점은 수치로 설명할 수가 없다. 제작자 장본인이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 강조하고 있는 것은 콘과 에지에 특수한 코팅을 해 놓았다는 것이며 그래서 수명도 장구하다는 것. 보통 페이퍼 콘, 에지는 대략 10여 년이 수명이다. 공연 업소에서 쓰는 스피커는 하루만에도 나가 버려 지금은 단품으로 팔기도 한다. 상관없는 것 아니냐 하지만 소리는 우퍼의 전후 진동에서 나오는 것인데 아무래도 찜찜하다. 그런데 본 시청기는 특수 제작이 되어 보통 50년은 보장이 된다 한다. 50년을 지켜볼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트위터는 인클로저 위로 올라가 있고 전면은 혼 타입으로 가공했다. 네트워크 역시 협업자 두 분이 오랜 연구 끝에 완성시켰고 Rike 콘덴서, Jantzen 왁스-코일 같은 특수한 부품을 사용했다. 그 이상의 각종의 무슨 수치 같은 설명은 생략한다. 오랜만에 소리와 만듦새만으로 시청기를 쓰고 있다.

매칭한 것은 역시 싸이몬오디오랩에서 만든 소형의 i5 인티앰프와 S-DAC 기종이다. i5는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를 투입, 순수 아날로그 설계로 클래스AB 45W 출력을 내는데, 다른 분의 시청기를 읽으니 영롱하고 산뜻한 소리를 내준다고 한다. 이 매칭으로 듣는 소리 참 충격적인 대목이 많다. 보컬을 확대해서 들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고 매끄러운 소리란 없다. 전력을 다해 부르는 보컬일수록 밑바닥에는 침 넘어가는 소리, 거친 호흡과 끓는 배음이 고여 있기 마련. 대부분의 스피커는 그 부분을 적당히 포장해서 넘겨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스피커는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현악기 연주자는 들어 보더니 실연 아닌가 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음장감, 입체감, 해상도, 리얼함, 모든 면에서 다소 얼빠진 느낌을 받는다. 기이한 청감이기도 하다. 스탠드도 기발하기 짝이 없다. 너무도 수월하게 모든 음을 제대로 뽑아내 주는 마법 같은 스피커를 신년 벽두에 들어 보게 되어 행운이다!

가격 1,450만원(목재 스탠드 포함)
마감 오크, 로즈우드, 에보니
사용유닛 우퍼 22.8cm 페이퍼 콘(Alain Pratali), 트위터 2.5cm 혼(Alain Pratali)
재생주파수대역 60Hz-20kHz
크로스오버 주파수 3kHz
출력음압레벨 95dB/W/m
임피던스 6Ω
권장앰프출력 10-150W
스피커 터미널 WBT
크기(WHD) 31×41×55cm, 60cm(H, 스탠드)
무게 21kg, 16kg(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