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닉 오디오(Allnic Audio)의 ASRA RHPA-7500은 헤드폰 앰프가 오랫동안 전제로 삼아 온 ‘소출력·근거리 재생’이라는 개념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제품이다. 헤드폰 앰프는 작아야 하고, 출력은 필요 이상일 이유가 없으며, 스피커 앰프와는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는 통념은 이 모델 앞에서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잃는다. 전면의 대형 미터와 절제된 패널 구성만 보더라도 RHPA-7500은 단순한 헤드파이 기기가 아니라 구동을 중심에 둔 앰프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RHPA-7500의 설계 철학은 출력 구조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펜토드 모드에서 채널당 20W, 트라이오드 모드에서 10W라는 수치는 헤드폰 앰프 영역에서는 이례적이며, 저효율 플래너 마그네틱 및 리본 타입 헤드폰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선택이다. 3극과 5극 동작을 음악 취향에 따라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앰프를 하나의 완성된 재생 도구로 만든다. 펜토드 모드에서는 에너지와 스케일이, 트라이오드 모드에서는 밀도와 순도가 강조되며, 장르와 녹음 성향에 따라 성격을 분명히 달리한다.

이러한 출력 구조의 중심에는 올닉이 채택한 고순도 니켈 기반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포머가 있다. 퍼멀로이 특유의 높은 투자율과 우수한 미세 신호 응답 특성은 일반적인 출력 트랜스포머에서 나타나기 쉬운 색채를 최소화하고, OTL에 가까운 개방감과 순도를 지향한다. 그 결과 RHPA-7500은 트랜스포머 방식임에도 반응이 빠르고, 저레벨 정보의 손실이 적으며, 진공관 앰프 특유의 질감과 투명도를 동시에 확보한다.

관 구성은 초단에 ECF80, 드라이브단에 12AU7(또는 6211 호환), 출력단에 7558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드라이브단에는 고전적인 리크-멀라드(Leak-Mullard) 계열 위상 반전 방식을 기반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개선한 올닉만의 독자적 드라이브 회로가 적용되어 출력관을 보다 안정적이고 선형적으로 구동한다. 7558 출력관은 6BQ5 계열과 유사하지만, 오디오 용도에서 출력 안정성과 다이내믹 확보에 유리한 성향을 지니며, 이는 RHPA-7500의 여유 있는 제어력으로 이어진다.

출력 임피던스는 10Ω부터 300Ω까지를 커버해 다양한 헤드폰을 폭넓게 수용하는데, 헤드폰 고유의 음색과 밸런스를 해치지 않겠다는 부하 친화적 설계 역시 올닉다운 접근이다. 출력 구성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RAAL 리본 헤드폰 전용 출력 단자다. 리본 헤드폰은 구조적으로 전용 임피던스 매칭 트랜스포머가 필수적인 부하이지만, 올닉은 니켈·퍼멀로이 트랜스 설계에 특화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RAAL 리본 전용 퍼멀로이 출력 트랜스포머를 별도로 설계·내장했다. 이를 통해 외장 인터페이스 없이도 리본 유닛을 앰프 내부에서 직접적이고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으며, 리본 헤드폰을 예외적인 부하가 아닌 앰프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상적인 구동 대상으로 전제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에 1/4인치 언밸런스드 단자와 4핀 XLR 밸런스드 단자가 더해지며, 스피커 바인딩 포스트를 통해 소형 고효율 스피커를 직접 구동할 수 있어 인티앰프에 준하는 활용도 역시 제공한다.

볼륨은 올닉이 전체 생산 중 약 10-20%만을 엄선해 셀렉션한 Bourns 포텐셔미터를 사용해 우수한 조작감과 높은 신뢰성, 장기적인 안정성 면에서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볼륨단에는 옵션으로 41단 정임피던스(Constant Impedance) 어테뉴에이터가 제공되며, 어느 음량에서도 음의 밀도와 채널 밸런스를 보다 엄격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마니아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된다.

이 앰프는 인티앰프로서의 완성도 역시 매우 높다. 스피커 출력 단자를 갖추고 있어 양질의 스피커를 연결하면 자연스럽게 인티앰프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 인티앰프로 사용했을 때의 음질과 구동력은 동급의 전용 인티앰프를 충분히 능가하는 수준으로, 헤드폰 앰프를 기반으로 한 설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설득력 있는 결과를 들려준다.

청음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1959) 중 모달 재즈 특유의 공간감과 밸런스를 확인하기에 적합한 ‘So What’을 기준으로 진행했다. 트라이오드 모드에서는 베이스의 어택이 과장되지 않고 음의 윤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무대의 깊이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특히 콘트라베이스의 피치 변화가 흐릿해지지 않고 또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펜토드 모드로 전환하면 관악기의 에너지와 리듬감이 한층 살아나며, 드럼 브러시의 미세한 터치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모드 모두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소리가 앞으로 튀어나오기보다는 무대 안에서 질서 있게 배치된다는 것이다.

보컬 재생에서는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에 수록된 ‘Don't Know Why’를 시청했다. 보컬을 과도하게 확대하거나 불필요한 따뜻함을 덧입히지 않고, 호흡의 시작과 끝, 입술이 열리는 순간의 미세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볼륨을 낮춘 상태에서도 음의 밀도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점은 출력 여유와 회로 안정성이 만들어 내는 결과다.

ASRA RHPA-7500은 헤드폰 앰프의 출력을 단순히 키운 제품이 아니다. 이 앰프는 헤드폰 재생을 스피커 시스템과 동일한 논리로 다루겠다는 올닉의 설계 철학을 담고 있다. 다양한 구동 방식과 재생 환경을 하나의 앰프로 아우르고 있는, RHPA-7500은 헤드폰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재생 그 자체를 위한 앰프다.

실효 출력 20W(펜토드), 10W(트라이오드)
사용 진공관 ECF80, 12AU7(6211), 7558
트랜스포머 고순도 니켈 기반 퍼멀로이-코어 출력 트랜스포머
헤드폰 출력 지원(6.3mm/4pin XLR)
RAAL 리본 지원
크기(WHD) 44.5×14×35.5cm
무게 12k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