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가을, 우연히 바쿤 프로덕츠(Bakoon Products)의 시청실에 놀러 갔다가 흥미로운 제품을 발견했다. 정사각형의 박스 자체가 기존의 바쿤 제품에 비해서는 크다고 볼 수 있는 사이즈인데, 출력 또한 높았다. 무려 70W나 되었다. 이런 스펙을 넘는 제품들이 흔하지만, 바쿤에서 70W라고 하면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수입상 측에서는 이 제품을 ‘인생 역전의 앰프’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바쿤이 창업한 지 33년에 이르고, 한국에 소개된 지는 23년이며, 바쿤매니아가 전적으로 핸들링한지 13년에 이른다. 그 사이 숱한 어려움과 난관을 맞이했지만, 차근차근 전진에 전진을 이룩한 끝에 이번에 AMP-5522에 다다른 것이다.

음은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력한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일본어로 히비키는 한자로 쓰면 향(響)이다. 울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음향이라고 할 때, 바로 이 향을 쓰며, 한편으로 명성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산토리의 걸작 위스키 히비키 역시 같은 한자를 쓴다. 산토리 특유의 풍부한 향이 담긴 달콤함을 좋아하는 터라, 제품 오른편 상단에 박힌 향이라는 로고 자체가 일단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5522는 기존의 바쿤 제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바쿤의 라인업에는 소출력 앰프 못지않게 대출력 제품들도 있었지만, 그간 주로 소출력 중심으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다 점차 애호가들의 층이 두터워지고, 하이엔드 유저들의 관심도 끌면서, 점차 대출력 제품들도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본 기가 런칭된 것은 여러모로 시의적절하다. 개인적으로 바쿤과 윌슨 오디오는 조합이 좋다고 보는데, 실제로 최근에 나온 The WATT/Puppy와 기막힌 매칭을 보여줬다. 국내에 윌슨 오디오 팬들이 많은 만큼, 이번 기회에 본 기에 관심을 가져 봐도 좋을 듯싶다.

여기서 일단 히비키가 무슨 뜻이냐.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실은 사트리(SATRI) 회로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최신의 증폭단 기술이라 보면 된다. 기존에는 사트리 증폭단이 쓰였지만, 여기에 쓰이는 버퍼 회로를 제거하면서 더 심플하고, 하이 스피드를 추구한 내용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히비키 회로는 벌써 2세대에 이르며, 무려 4년의 개발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 와중에 여러 작은 모델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되었는데, 이 회로의 개발 과정에서 나온 제품들이라 보면 된다. 드디어 본 기에 와서야 찬란하게 히비키 기술이 만개한 것이다. 참고로 히비키 회로에 투입되는 IC는 채널당 1개씩 사용된다고 한다.

또 HBFBC라는 버퍼 회로가 있는데, 입력단에 투입되고 있다. 커다란 기판을 작은 칩 안에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채널당 2개씩 사용되고 있다. ‘HyBrid FET input Buffer Circuit’의 약자다. 전원부는 전통적인 리니어 방식이 아닌 SMPS를 사용해서 눈길을 끈다. 리니어 방식에는 전원 트랜스가 필수로 따라붙는 바, 여기서 발열이나 노이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SMPS는 그런 단점이 없는 데다가, 새로 설계된 모듈을 넣어서 음질 면에서도 뛰어난 결과물을 얻고 있다.

본 기는 2015년에 나온 AMP-5521의 후속기다. 이 제품이 8Ω에 35W의 출력을 갖춘 터라, 하이엔드 제품으로 개발된 5522는 최소한 50W는 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최신 기술을 듬뿍 넣은 결과, 무려 70W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이번 시청에서는 윌슨 오디오의 알렉시아 Ⅴ를 걸었는데, 큰 공간을 낭랑하게 울리는 대목에서 과연 단단히 칼을 갈고 나왔구나 싶었다. 참고로 소스기는 dCS의 엘가 플러스와 베르디 등을 활용해서 CD와 SACD를 골고루 들었다.

첫 트랙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일단 넓은 스테이지에 다양한 악기들이 촘촘히 엮여 있다. 그 앞에 화려하게 프레이징하는 피아노가 보인다. 젊은 시절에 한껏 미모를 뽐냈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는 연주가 여축없이 드러나고 있다. 저역의 반응이 빠르면서 펀치력이 좋고, 적절한 온기를 머금은 음색은 마치 아날로그를 듣는 듯 자연스럽다.

이어서 야마모토 츠요시가 연주한 ‘Misty’. 피아노 트리오의 편성으로, 내공이 풍부한 야마모토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으며, 출중한 리듬감을 자랑한다. 더블 베이스의 라인이 분명하게 보이고, 심벌즈의 터치가 우아하게 펼쳐진다. 피아노는 화려한 듯하지만, 음 하나하나에 혼이 담겨 있다. 아티스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릭 클랩튼의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최근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와 평생을 함께 한 노장들과 여유 만만한 세션을 펼치고 있다. 마치 빈티지 와인처럼 농익은 음이 나온다. 특히 아직도 힘이 넘치는 보컬에 명징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정말 힘들이지 않고 스피커를 구동해서 최상의 결과물을 얻고 있다. 무위자연의 경지라고나 할까? 바쿤의 매직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가격 940만원
최대 출력 70W(8Ω, 10% 왜곡), 58W(무 왜곡)
아날로그 입력 XLR×1, RCA×1, SATRI-LINK×1
주파수 특성 20Hz(0-0.14dB)-100kHz(0dB)
입력 환산 노이즈 -105dB
왜율 0.054%(RCA, 1W), 0.18%(RCA, 10W)
댐핑 팩터 16(50W), 13.3(10W), 12.2(1W), 13.42(1mW)
게인 15(23.5dB)
입력 임피던스 10㏀(XLR), 100㏀(RCA), 25Ω(BNC)
게인 컨트롤 10비트 릴레이에 의한 디지털 컨트롤
원격 제어 적외선 리모컨(애플 리모컨 사용)
크기(WHD) 44×17×36cm
무게 11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