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의 엡손 EH-QL3000B 프로젝터에 대한 소개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청에 대해 다루겠다. 시청은 여의도에 위치한 HMG오디오비주얼의 메인 시청실에서 이루어졌다. 사용된 스크린은 1.85:1 기준으로 180인치 크기의 스크린이 사용되었고, 투사 거리는 약 7m 거리에서 표준 렌즈 옵션을 사용해 투사했다. 시청에 사용된 기기는 엔비디아 쉴드 TV와 오포의 UDP-203이 사용되었으며, Kodi와 넷플릭스, 그리고 4K 디스크 타이틀로 감상을 진행했다.
엡손 EH-QL3000B 프로젝터를 감상한 느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홈 프로젝터로는 고광량 모델에 속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이미지 품질을 지닌 제품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기존 세대의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압도적인 제품으로 탈바꿈된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색의 밸런스가 대단히 좋아서 복잡한 계조 표현 상황에서 정확한 색 표현으로 색 틀어짐 없는 안정적인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풍부한 광량과 절묘한 밸런스의 색 표현은 화사하고 예쁜 색감의 영상으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가진 제품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하급기로 존재하는 EH-QB1000도 충분히 우수했지만, 초대형 사이즈의 스크린에서는 본 기만큼의 성능을 기대하면 안 된다. EH-QB1000 대비 초대형 스크린에서도 밝기 향상에 따른 영상 펀치력이 상당하고, 패널 판형이 커져 개구율이 좋아지고 마이크로 렌즈 구조를 통해 밝기가 향상된 것에 대한 장점이 유감없이 영상에 드러나 보였다. 상당히 거대한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블랙 표현과 강렬한 대비는 때로는 필름라이크한 맛도 나고, 투과형 LCD 제품에서의 유례없는 영상 품질을 느낄 수 있었다.
해상력도 지금껏 경험했던 엡손 제품 대비 최상위의 해상력을 보여 주었고, 판형의 증가와 광학계의 물량 투입을 통해 절대적인 해상력이 상당히 올라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향에 따라 약간의 선명도(샤프니스) 수치 조절을 세팅하는 것도 감상하는 영상에 따라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설정하면 링잉과 같은 부작용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암부 표현의 경우에도 기본 설정 상태에서도 준수했지만, 스크린 크기에 따라 조금 더 적절히 조정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SF 인증을 받은 제품이므로 마음먹고 제대로 세팅을 할 경우에는 상당한 영상 품질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기를 감상할 때 드는 생각은 마치 풀프레임 DSLR 카메라를 경험하다가 핫셀블라드와 같은 중형 디지털 백을 경험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칭찬 일색으로 제품을 묘사했는데, 굳이 단점을 꼽아보자면 저더링 특성을 꼽을 수 있겠다.
본 기는 픽셀 시프트 방식의 제품이기 때문에 저더링 특성은 중간 정도로 억제되어 있어 보였고, 수평 패닝 상태에서 가끔 저더링이 나타나 도드라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수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지 여부는 개인차가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본 기는 최정상급 품질에 근접한 영상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엡손 제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례 없는 영상 품질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암막 상태에서는 150인치에서 최대 200인치까지, 조명을 조금 켠 상태에서는 130인치 정도부터 그 이상의 사이즈에서 적당한 펀치력과 블랙 성능이 구현되어 이상적인 성능을 누릴 수 있어 보였다.
이 정도로 종합 감상평을 마치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어떤 타이틀을 감상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감상했던 타이틀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엡손 EH-QL3000B 프로젝터의 영상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타이틀로는 <탑건: 매버릭 - 4K Disc, HDR10>을 감상해 보았다. 매버릭은 HDR 작업을 위해 1000니트로 마스터링을 했지만, HDR 메타 중에서 MaxFALL(Maximum Frame-Average Light Level) 값을 살펴보면 상당히 높은 값(496cd)의 메타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값은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의 가장 밝은 부분인 MaxCLL(Maximum Content Light Level)에 필적하는 값으로, 전반적인 영화의 밝기가 매우 밝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광량이 부족한 프로젝터로 HDR 영상을 감상하게 되는 경우 과도한 톤 매핑이 일어날 수 있고, 광량이 받쳐 주지 못해서 영상이 탁하고 어둡게 표현될 수 있는 HDR 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타이틀이다. 즉, 어두운 장면에서는 광량이 부족한지 모르고 감상하게 되지만, 영화가 밝은 장면이 많은 경우에는 광량이 부족해서 표현 못하는 장면이 감상하는 내내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본 기에서 감상했던 매버릭의 영상은 충분한 광량 표현으로, 난이도가 높은 HDR 표현에서도 이 정도 쯤은 본 기에는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듯 매우 펀치력 있고 매력적인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화려하고 강렬한 원색의 발색도 잘 표현해 주었으며, 영상의 대비와 질감 표현, 계조 표현 능력에서 대단히 우수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HMG 메인 시청실의 스크린 사이즈는 대단히 큰 편인데, 180인치의 거대한 스크린에서 펀치력 있는 영상 표현을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여건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H-QL3000B가 보여준 영상의 임팩트는 상당했으며, 6000lm의 충분한 광량으로 심지어 불을 켜고 보아도 모자란 느낌이 없었다. 또한 LCD 판형이 커짐으로 인해서 LCD에서는 유례없는 블랙 표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반사형이 아닌 투사형 LCD는 블랙 표현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선입견을 깰 수 있는 블랙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광학 해상력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성조기의 주름의 표현이나 피부의 디테일 표현에서 Real 4K 못지않은 정보량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타이틀로 <핵소 고지 - 4K Disc, HDR10>를 감상해 보았다. 외부 태양빛이 창가를 통해 들어와서 밝기 차가 많이 나는 실내 장면을 살펴보면, 밝은 부분의 정보를 잘 표현해 주면서 중간과 암부 계조를 잘 표현해 주려는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반사형 LCoS 방식의 디스플레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피크 표현력과 개선된 암부 표현력이 인상적이었으며, 자연스러운 계조 표현력은 영상의 전반적인 기본기가 상당히 좋은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감상했던 실내 식사 장면이나 외부의 훈련 장면, 성경책의 글씨 표현 등에서는 우수한 광학 특성과 해상력 특성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정적인 장면에서는 정상급의 해상력을 경험할 수 있어서 4K Shift 기술이 상당히 무르익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플랫폼을 바꾸어 OTT 스트리밍 소스로 변경하여 넷플릭스로 <브리저튼 - Netflix, HDR10>을 감상해 본다. 브리저튼은 1800년대 영국 귀족의 의상과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장면이 많고 구경할 만한 요소가 많은 영상이 나오는 타이틀로, 몇 가지 장면을 감상해 보았다. 가장 먼저 야외에서 광각 카메라로 담은 저택의 모습에서는 중심부를 비롯한 주변부의 디테일 묘사가 상당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인물의 피부 톤이 상당히 다채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흰색 소재의 직물이나 옷 표면에 번쩍이게 수놓은 무늬의 색과 질감 표현이 대단히 우수했으며, 색의 밸런스가 절묘하게 잘 튜닝되어 도드라지는 색 없이 기본기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밝기 차가 도드라지는 상황에서의 계조 표현력도 상당히 우수하게 느껴졌다. 굳이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영상 그림만 보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조금 진득하고 과장된 콘트라스트를 보여 주는 타이틀 <나쁜 녀석들 - Netflix, HDR10>을 감상해 보도록 한다. 광학적인 우수성과 4K 해상력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었던 콘텐츠로, 영화 초반 상점에서의 장면을 살펴보면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가림막 표면의 질감마저 남김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득한 색감과 대비가 상당히 우수하게 잘 표현되고 있었으며, 투과형 LCD 프로젝터에서도 충분히 필름라이크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영상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채로운 색의 표현이나 색의 밸런스는 시종일관 우수하게 묘사되고 있었으며, 강렬한 콘트라스트와 진한 블랙을 느낄 수 있는 영상으로 매력적인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마치며, 본 기의 압도적인 성능으로 필자는 상당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본 기의 경쟁 상대를 어떤 제품으로 생각해야 할까? 적절한 모델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초대형 스크린을 타기팅한 렌즈 교환식 고광량 프로젝터에는 소니 VPL-GTZ380이 있는데, 이 모델과 비교하기엔 가격차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에 필적하는 광량과 성능을 보여 주기 때문에, 가성비를 따지자면 두 모델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JVC 모델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데, JVC 모델들은 본 기 만큼의 고광량을 달성한 모델이 없다. 150인치 이상의 초대형 화면에서 충분한 광량으로 인한 영상의 펀치력을 기대해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가는 길이 다른 제품으로 여겨지고, 본 기와의 비교 대상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본 제품은 150인치 이상의 초대형 스크린을 사용하시는 분들에게는 대체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매력을 지닌 제품으로 여겨진다. 본 기의 상당한 광량 특성 덕분에 이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스크린을 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프로젝터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켜고 TV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국내의 협소한 프로젝터 시장에서, 게다가 이렇게 초대형 스크린에 적합한 제품이 시장에 흔치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본 기가 정식 발매되었다는 점이 상당히 반갑다. 더불어서 공격적인 가격 책정을 통해 접근성을 높인 엡손 코리아의 과감한 결단력에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 부디 많은 분들이 시연회 등을 통해 본 기의 우수한 영상 특성에 감탄하시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불을 켜 놓은 상태로 프로젝터를 감상할 때에도 펀치력 있는 휘도를 자랑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런 가격에 이런 영상 품질을 손쉽게 누릴 수 있지 않나 싶다.
프로젝터 시장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지만, 아직 프로젝터의 시대는 건재함을 본 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본 기 때문에라도, 적어도 호락호락하게 프로젝터 시장이 무너질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버릭에 나온 대사처럼 적어도 오늘날은 아닐 것이다. 향후 몇 년 간 본 기의 가격 대비 영상 품질은 필자의 잣대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적극 시청을 권하며, 강력히 추천한다는 말을 전하며 리뷰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