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시대의 최전성기 때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사진으로만 보아온 역사를 직접 듣는다는 것은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 사운드가 예전의 추억 정도인 오래 되고 굼뜬 사운드가 아닌, 요즘 음원들도 멋지게 구현해내는 지금 시점의 현대적인 혼 사운드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창립자의 마지막 프로젝트, 스토리부터가 낭만 있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역사를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좀더 한참 멀리서 음미하기도 한다. 들을수록 대단하다. 엄청난 체급에서 터져 나오는 혼 사운드의 진수, 지금껏 들었던 혼 스피커의 기준을 다시 써야할 듯하다. 특유의 직진성 좋은 화려한 맛과 무대를 넓게 그려내는 음의 자연스러움은 실제 무대의 감동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음이 노래하고 춤춘다. 거대한 소용돌이로 몰아치는 그 음의 파도들을 어찌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 내 눈에 클립쉬(Klipsch)의 거대 걸작, 주빌리(Jubilee)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클립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신 트렌드에 맞는 하이파이/AV 스피커들은 물론, 젊은 층에게 각광 받는 이어폰 및 액티브 스피커, 그리고 사운드바까지 비중 있게 소개하며 주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클립쉬를 있게 한 근본이라면, 역시 혼 스피커. 클립쉬는 앞서 이야기한 최신 트렌드에만 주목하지 않고, 헤리티지라는 이름으로 고전 명기들을 진득하게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명기들, 클립쉬혼, 라 스칼라, 포르테, 콘월, 헤레시 등을 지금도 이 헤레티지 라인업으로 만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고전 그대로의 리바이벌은 아니다. 현대에 맞게 스펙과 디자인 등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 것인데, 모델명 뒤에는 버전에 따라 새로운 넘버링이 추가되기도 한다. 주빌리 역시 75주년 기념 모델을 한정판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1946년의 출발이니, 정말 오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오디오 브랜드의 위용을 보여준다.

주빌리는 창업자 폴 W. 클립쉬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유명하며, 긴 여정으로 엔지니어 로이 델가도와 협업하여 최종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역시 클립쉬혼보다 더 뛰어난 제품으로 기획되었고, 2웨이 혼 스피커가 탄생하게된 것인데, 지금의 주빌리는 2022년 버전으로 소개되고 있다.

디자인은 누가 보아도 압도적. 180cm에 달하는 거대 스피커는 혼 스피커의 새로운 왕좌임을 알려준다. 실제 보면 더 거대하고 압도적이다. 상단은 대형 혼이 유려한 우드 베니어 속에 담겨 있는데, 5인치 대형 보이스 코일이 적용된 K-693 7인치 티타늄 다이어프램이 채택된 모습이다. 하단은 12인치 사이즈의 듀얼 K-283이 채용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클립쉬가 자랑하는 인클로저의 복잡한 미로 패턴이 적용되어 있다. 이른바 ‘Horn-Loaded Vented System’의 원류를 즐길 수 있는 부분. 저음의 효율은 물론이고, 다이내믹과 깨끗함까지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며, 왜곡을 최소화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를 통한 주파수 응답은 18Hz-20kHz, 가장 이상적인 스펙을 이 대형기에서 맛볼 수 있다.

주빌리에는 스피커 외에도 프리앰프 같은 시스템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바로 액티브 크로스오버로 구동되는 구조인데, 아마 혼 스피커에서 문제 시 되는 위상과 타임 딜레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택한 듯하다. 정말 정교하게 제작된 DSP로 이제 가장 정확한 혼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강점이다. 물론 파워 앰프가 최소 2대는 필요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어가긴 하는데, 감도가 높다하더라도 애초에 대형기로서 구동에 대한 투자는 당연히 더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시청은 클립쉬 헤리티지 시리즈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용산 전자랜드 2층 헤리움에서 진행했다. 매킨토시 C49 프리앰프와 MC312 파워 앰프 2대를 동원하여, 주빌리 액티브 크로스오버에 연결 후 들어봤다. 일단 첫 음이 터져 나오자마자,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한 대형 사운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좌·우 펼쳐짐과 거대한 양감이 시청실을 가득 채우는데, 역시 음악적인 쾌감은 클립쉬가 잘 만들어낸다. 이 정도 대형 혼이면 자극적이고 고역 쪽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움의 미덕을 정말 잘 보여준다. 혼의 장점을 잘 드러내면서도, 절제 선은 잘 지키고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볼륨을 올리거나 내려도 밸런스가 깨지지 않으며, 임팩트가 필요한 부분은 또 멋지게 살려내는 부분이 특색 있다. 재즈 선율을 들어보면, 단연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그 깊숙한 울림의 표현력, 아스라이 사라지는 잔향, 깨끗하게 질려주는 고역 등 장점만 수 페이지는 써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출중하다. 피아노 선율도 굉장히 명료하게 표현해 내주며, 악기 고유의 울림이나 질감도 해상력 있게 전달해주는 모습이 이채롭다. 보컬의 표현력도 좋은데, 산뜻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의 아름다움은 클립쉬 사운드의 원형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강한 소리로만 무지막지하게 밀어주는 혼 스피커와는 전혀 다른 성향이며,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기본으로 하는 저역, 중역, 고역의 밸런스를 모범생처럼 잘 맞추는 스타일이다. 마지막으로 대편성을 들어본다. 공연장 한복판에서 열연하는 지휘자의 모습으로 연주자들을 하나하나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대형 무대가 눈앞에 그려진다. 폴 W. 클립쉬가 마지막까지 그리고 싶었던 그 세계를 여러분도 함께 볼 수 있길 바란다.


가격 6,400만원
사용유닛 우퍼(2) K-283 30.4cm, 트위터 K-693 티타늄 컴프레션 드라이버 17.7cm
재생주파수대역 18Hz-20kHz(+1.75dB, -3dB)
크로스오버 주파수 340Hz
출력음압레벨 107dB(LF), 110dB(HF)
임피던스 8Ω(LF), 16Ω(HF)
파워핸들링 300W(LF), 100W(HF)
액티브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지원
크기(WHD) 127×175.2×76.2cm
무게 149kg(LF), 35.3kg(H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