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원 케이블을 프리앰프에 연결하고 48시간 통전해 놨다. 새삼 전원 케이블들을 살펴보니 파워텍의 케이블이 대부분이다. 언제 이렇게 됐나 놀랄 정도. 헤아려 보니 30여 년 전부터 파워텍 제품을 써 왔다. 아마 지난 1980-90년대 근처에서 오디오에 눈을 뜬 분들이라면 대부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동사의 차폐 트랜스, AVR 등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 시절 필수 상비품이었다. 그걸 들여 놓으면서 당연히 같은 제작사의 파워 케이블도 구입했다. 그 당시만 해도 거의 철물점표 전원 케이블을 써 왔던 사용자들은 파워텍에서 만든 그 주먹 만한 듬직한 단자와 뱀처럼 굵은 케이블에 안심했다. 성능의 향상보다도 우선 그 만듦새의 안정성에 신뢰가 들었기 때문이다.

파워텍은 전원 기기 분야에서는 가히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제작사이다. 해외 제품도 거의 없었던 시절부터 그렇게 전원 장치와 파워 케이블에 역점을 쏟았다. 만드는 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제품은 혼자서 수작업 형태로 만든다. 그럼에도 파워텍 제품의 성가는 괄목할 만하다. 세계 오디오 쇼에도 더러 가 봤지만 우리 것보다 값은 엄청 비싸도 더 나은 제품은 없더라는 자평, 제삼자의 평판도 들었다. 디자인이 떨어지는 열악한 국내 현실 속에서도 전문 산업 디자이너에게 의뢰, 매끈하고 미려한 뛰어난 외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

파워 케이블은 사실 오디오 케이블 중에서도 관심도가 가장 떨어지는 분야이다. 좀 막연하지만 인터커넥트 케이블, 스피커 케이블에 그토록 열광하면서도 전원 케이블에는 대부분 관심이 별로다. 나 역시 그냥 무심코 사용하기만 할 뿐 소리에 큰 기여를 한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근래 해외의 고가 제품들을 리뷰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당연할 것이다.

시청 제품 디아블로 2는 겉모양새도 좀 다르다. 케이블의 양쪽 연결부에 카본이 투입되어 있는 것이다. 파워텍에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다양한 이름으로 제품이 나왔지만 카본을 본격 투입한 첫 제품이다. 카본을 사용한 케이블은 보기 힘들다. 수입되는 일반 케이블에서도 상당한 고가 제품에서 더러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디아블로 2의 내부 재질은 5N 은도금 OFC이며 차폐 피복도 여러 겹인데 완벽한 차폐를 위해 인렛 쪽에 특수 고주파 필터를 투입했다. 만듦새나 재질이 일급인데도 가격은 원만하다. 국내 제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가격일 것이다. 플러그 역시 금도금 방식이다. 그리고 케이블 구조는 웨이버사 시스템즈와 협업을 통해 최고의 구조를 실현했다고 한다.

소리를 울려 보니 프리앰프에만 연결을 했는데도 단박 전체적인 음색과 음감이 모두 변한다. 당황을 느낄 정도. 가장 큰 변화는 놀랄 정도의 해상력이다. 보컬이든 현 독주든 미세하게 솜털처럼 따라 다니던 거친 음이 사라지며 매끈하고 맑아진다. 패티김의 발성을 오랜만에 리얼하게 듣는 느낌.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은 그야말로 절정. 해상력이 좋다는 것은 발성의 명확성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현 독주곡의 깊이감이 달라지며 입체감과 분위기의 정숙성도 달라진다. 맑고 단단한 음감이 쾌감을 주는데 그러면서도 매끈하다. 그런 해상도 때문에 소프라노의 일부 곡에서는 압축미의 증가로 다소 긴장감이 높아져 불편해지기도 하는데, 키리 테 카나와의 곡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조수미나 마리아 칼라스,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동안 무심히 들었던 키리 테 카나와의 음성이 얼마나 유리알처럼 청량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겠다. 고·저역대의 희미한 사라짐도 좀더 명확해지는데, 전원 케이블 한 개만으로도 이런 소리 변화, 실로 놀랍다. 경이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