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앰프를 듣게 되어 기쁘다. 마치 예식장에서 흰 장갑을 끼고 있는 신랑·신부와도 같은 우아한 모습인데, 근자에 이런 화이트 컬러의 오디오 기기를 연속으로 만난다. 모두 아름다웠다. 전면에서는 출력관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는데, 이 제품은 진공관 앰프이고, 전면 패널 후면에 5극관인 EL34를 채널당 1개씩 사용한 싱글 앰프이며, A급 출력이다. 출력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아마 10W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제품은 메이드 인 세르비아이다. 세르비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신생국으로, 면적은 남한보다 작고, 인구는 700만 정도다. 동유럽의 강소국이고, 축구가 세다. 이곳에서 사사 코키치라는 트랜스계의 장인이 오래 전부터 최고의 트랜스포머를 만들어 왔다. 오스트리아의 진공관 앰프 제작사 WLM 어쿠스틱스의 트랜스도 그 양반이 만들어 보낸 것이다. 오랫동안 줄기차게 트랜스를 만들어 세계 여러 곳에 보내다가 유럽에 진공관 붐이 일기 시작하자 주변의 권고를 받아 들여 드디어 앰프에 손을 댔는데, 나오자마자 수차례 오디오 쇼에서 상을 받았다. 진공관 앰프에서 트랜스포머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증명해 낸 것이다.
5년 전 쯤에 이 회사의 300B로 만든 익스페리언스 2라는 제품의 소리를 들어 봤다. 300B 답지 않게 청량하고 강렬해 몹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300B로 이런 소리도 낼 수 있다는 하나의 데몬스트레이션 같았다. 국내에는 잠깐 얼굴을 보이다가 말았지만, 그 앰프의 소리는 너무도 신선하고 강렬했다. 생김새도 멋졌다.

이 시청기도 물론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이야말로 국가적인, 문화적인 기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이 우아한 아름다움. 마치 옛날 고교 시절 학교 가는 골목에서 만났던 하얀 컬러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 같은 자태이다. 5년 전 처음 만났던 익스페리언스 2에서 느꼈던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려함이 사사 코키치가 추구하려는 아름다움 같이 생각된다. 소리를 들어 보면 그것이 감회처럼 솟아난다.
자신들이 만드는 트랜스 제작 기법 중 하나는 더블 C 코어라는 것. 쉽게 생각해서 장인이 혼자서 은밀히 수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법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그 노하우의 실체는 잘 알 수 없다. 드라이브관인 ECC81의 구사에도 범상치 않은 기밀이 있다고 한다. 설계의 정체를 잘 모르겠지만 굳이 싱글 회로를 만드는 것도 그와 유관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제품은 대부분 싱글 엔디드이며, A클래스이다. 그런 회로를 특수한 트랜스포머로 잘 버무려 만들어 놓은 맛깔스러운 제품들인 셈이다.
현재 이 제조사는 프리앰프 2기종, 모노블록 파워 앰프 1기종이 있고, 다양한 인티앰프가 있다. 그리고 익스페리언스 시리즈로 각 출력관 별로 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파워 컨디셔너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특별히 고가의 제품이 없으며, 본 시청기 정도라면 스피커와 잘 매칭을 시키면 어떠한 고가 제품 못지않게 고급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싱글 앰프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 전력도 최저이며, 출력관의 가격도 헐해서 아무리 오래 써도 부담이 없다. 겨울이 되어 앰프 구동하는 시간이 늘면서 집안의 전기 미터기가 바람처럼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마나님이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는 제품인 것이다. 하지만 출력이 약해서 스피커를 잘못 만나면 낭패일 수밖에 없는데, 운 좋게도 이번 호 시청 기기인 오데온의 오르페오와 매칭이 되었다(오르페오 시청기 참조). 스피커 시청기에도 리뷰의 절반이 들어 있으므로 참조해 주시기를.

이 매칭을 듣고 나서 첫 생각은 ‘듣게 되어서 영광이군!’인 것이다. 이런 소리는 아무리 매달 여러 기종을 들어 본다고 해도 운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가격도 이 정도 범위인데 이런 소리를 들려주다니, 다 쓸어버리고 여기에 CD 플레이어 한 기종만 얹으면 그런 것이야말로 늦게나마 찾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는 그런 고뇌가 물밀듯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여기에서 올라가 본들 더 이상 무슨 음악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철학적인 체념의 순간이기도 하다. 오르페오 스피커는 트위터가 우드 혼으로 되어 있고, 감도가 90dB이다. 그러므로 이 시청기는 되도록 그런 근처의 스피커와 매칭을 시킨다면 부족함이 없으리라. 싱글 앰프의 검소함과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가슴을 파고든다. 정초부터 이런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나다니 기분이 좋다. 진심으로!

수입원 D.S.T.KOREA (02)719-5757
가격 350만원 사용 진공관 EL34×2, ECC81×1 구성 클래스A 주파수 응답 10Hz-40kHz
S/N비 88dB 입력 임피던스 100KΩ 크기(WHD) 22×20×35cm 무게 12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