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꿈꿔온 오디오의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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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꿈꿔온 오디오의 블루오션
  • 월간오디오
  • 승인 2005.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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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나종방 씨

음미할 만한, 블루오션 이야기
블루오션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경쟁 없는 대안시장이라는 말이다. 반대되는 말은 레드오션이라고 하는데 피 튀기는 경쟁시장을 뜻한다고 한다. 얼마 전 어느 중소기업 하시는 분과 지방을 다녀오다가 차 안에서 ‘블루오션이 과연 있는가’ 에 대해 작은 논쟁을 벌였다. 결국 우리는 실제 공간에는 블루오션이 없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보게 되었다. 끊임없는 지향점은 될지언정 그런 무한 이익을 기대하는 곳이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과연 존재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블루오션을 이야기하는 동안 가슴이 뛰고 의욕이 생겼다. 무언가 그런 세계를 향하는 것이 마치 우리 시대의 의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는 더욱 활기찼다.
왜 난데없이 경영학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오디오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오디오를 하는 사람들도 역시 블루오션의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디오 시스템이 놓여 있는 현실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현장음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경영학의 블루오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과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고, 사람의 호흡과 표정이 어우러지는, 그리하여 인간이 갖는 모든 감각기관과 정신세계가 합일하는 현장의 소리를 드라이한 청취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오디오 시스템의 최종 목적지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블루오션이 실제 공간에 없는 것처럼 오디오 리스닝 룸에도 현장의 음악은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현장음과 비슷한 감흥은 음향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거나 고가의 초하이엔드 시스템이라면 착각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니아는 모든 것을 걸고 오디오에 몰입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소리의 변화에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오디오가 놓여 있는 풍경 속에 실제 현장음은 더 이상 없다. 적어도 오디오가 놓여 있는 거실이나 방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블루오션처럼 말이다.
때때로 현장음과 비슷할 수도 있다. 오디오 매니아들은 현장음과 유사한 소리를 현장이 아닌 리스닝 룸에서 들으면 조미료를 치지 않은 밋밋한 맛처럼 평이한 소리로 들려 이내 싫증을 내게 되고 더 자극적인 소리를 만들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거실이나 방에서 듣는 오디오의 소리는 밸런스가 깨진 왜곡된 음의 세계로 나가기 쉬운 함정을 갖게 된다. 가슴이 답답하도록 밀려드는 초저역의 세계와 돌처럼 단단한 저역을 강조하거나 생생한 임장감을 느끼게 하는 강렬한 임팩트를 갖는 중역이거나 둥실둥실 부유하며 나의 감성을 간지럽히는 고역을 생각한다. 이 또한 왜곡된 소리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현장음은 밋밋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감정이 실마리를 살짝살짝 보이면서 찾아온다. 너무도 자연스러워 슬그머니 잠이 올듯 말듯한 느낌이거나 팽팽한 긴장이 빚어내는 묘미와 그 속에 녹아 있는 조화로운 감성으로 찾아온다. 현장음의 세계는 실연이 아니면 영원히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매니아는 현장음의 세계를 동경하고 추구하며, 이것을 오디오 시스템의 레퍼런스로 삼는다.
그렇다면 우리 오디오 매니아는 모두 꿈을 꾸는 건 아닐까?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위한 가슴 벅찬 설렘이다. 역설적이게도 꿈을 꾸는 순간은 행복하지만,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다. 까만 정적 속에 한 줄기 빛처럼 가냘픈 음이 피어오르고 반짝이는 사금파리처럼 광채를 발하는 소리결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는 꿈의 세계. 베토벤의 처절한 정열, 모차르트의 순진무구하면서 알지 모를 깊은 정신세계, 쇼팽의 가슴을 후벼 파지만 조금은 싸구려 같은 서정들. 그러한 푸른 바다, 즉 우리 오디오 매니아들은 블루오션을 꿈꾸고 있다.

내가 그려온 오디오의 세계
오디오라는 꿈, 음악이라는 보이지 않는 꿈은 내 인생에서 조금 늦게 찾아왔다. 나는 81년도에 지방에서 상경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386세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우리 어렸을 적의 클래식 음악은 마치 다른 나라 일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먼 기억 속 안방의 장식품처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던 별표전축, 술 잡수고 들어온 부친이 어쩌다 한 번씩 듣는 뽕짝들, 형들이 갖고 놀던 포크 기타로 부르던 가요들,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시험과목으로 듣던 고전음악 감상,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던 친구가 자주 다니던 ‘고전음악감상실’에서 그 친구와 함께 들었던 베토벤의 교향악들. 그랬다. 적어도 내게 클래식 음악은 제한된 경험이었고, 386세대에게 낭만은 클래식보다는 오히려 한 잔의 술이나 뿌연 담배연기, 그리고 간혹 들려오던 민중이라든가 시대에 항거해 잡혀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써내려간 반시(反詩)들이었다.
청년기의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나는 20대 중반에 음악을 전공한 아내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달콤한 연애와 함께 나의 클래식 인연은 시작되었다. 주체하기 힘든 젊음을 시대 속에 내던졌던 그 시절,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아내와 함께 들었던 슈만과 쇼팽, 모차르트의 곡들은 내게 새로운 꿈이었고 낭만이 되어 갔다. 그리고 80년대 말 결혼과 함께 (우리 둘만을 위해) 몇 푼 안 되지만 맘껏 쓸 수 있는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오디오는 좀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결혼식 주례 선생님이 주신 LP 몇 장과 그것을 재생하려고 준비한 인켈의 컴포넌트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던 탄노이와 매킨토시는 우리 신혼기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큰 맘 먹고 준비한 국산 탄노이 아덴 통에 K3808 동축 유닛과 매킨토시 인티 6200에 소니 CD 플레이어를 갖다 놓았을 때 우리는 정말 뿌듯해 했고, 과연 인생이란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렇게 나는 오디오 환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의 오디오 시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아덴, 스털링, GRF 메모리로 대변되는 탄노이 시대와 로저스 LS3/5a, 스펜더 SP100, 셀레스천과 하베스의 통울림 스피커들. 그리고 통울림 없는 스피커로 입문하게 한 필 존스가 만든 린필드 300L 스피커. NHT, 틸 2.2, 마틴로건 퀘스트, 아발론 아바타로 이어지는 미제 스피커 시대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어져 왔다. 탄노이와 영국제 스피커의 시대엔 주로 진공관 EL34와 OTL 앰프, 6550을 사용한 앰프를, 미제 스피커 시기에는 크렐, 제프 롤랜드 등의 TR 앰프를 주로 사용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가슴이 뛰었고, 꿈이 있었던 때는 탄노이 시대가 아닌가 싶다. 상대적으로 가장 왜곡된 소리(?)와 해상도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소리에서 나오는 나름의 카리스마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면 새벽까지 까닭모를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던 세월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어김없이 음악에 빠져 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드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주말이면 회현동 지하상가 또는 세운상가를 헤매고 다녔던 그 시절. 신사동 원룸 주택지에 있는 어느 후배 동호인 집에서 밤이면 벌어지던 앰프 비교시청과 음반 토론으로 매일 늦게 귀가하는 게 습관이 되었던 그 시절. 그리고 귀가하고서도 아내와 둘이 반쯤 드러누워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소나타를 들으며 하염없이 행복해했던 그 시절들이 나의 30대를 결정짓는 추억 속의 풍경으로 지금도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시스템 선택의 원칙
오디오의 세계는 다양성 그 자체다. 오히려 다양함이 지나쳐 주관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한없는 방황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가 되기 쉽다. 가격을 들으면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고가 하이엔드의 세계를 귀동냥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나름대로 소위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오디오로 하이엔드를 흉내내보는 재미도 그것 못지않다. 그래서 가난한 자의 와트퍼피 또는 마크 레빈슨으로 불렸던 오디오들이 한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세월이 흘러 여유가 조금 생긴 뒤에도 이번에는 그놈의 주관(사실은 쓸데없는 고집)이란 게 생겨 중저가로 하이엔드 흉내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딱지붙이기를 무엇보다 싫어하지만, 내게도 어쩔 수 없는 실용파라는 딱지가 붙게 된 것이다. 존재가 그 사고를 어느 정도는 지배하니 말이다. 부정적으로 나의 정신을 해부한다면 ‘그게 그거’라는 청산주의(?)적인 생각으로의 귀착과 동시에 끊임없는 탐구열의 상실이 아닐지…….
자 그럼, 내가 터득한 나름대로의 하이엔드 흉내내기의 시스템 선택의 방식을 정리해 보자. 나는 이를 나름대로 정리하기 좋게 ‘둘둘둘 원칙’이라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건 철저하게 주관의 세계이고, 한편으론 상식의 세계에 속해 있다. 다만 정식화를 했을 뿐이다.
첫째, 리스닝 공간을 고려하여 스피커와 파워 앰프를 한 번에 결정한다. 파워 앰프가 스피커를 제대로 드라이브해야 하는 이유는 밸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동력에서 밸런스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가격의 비중을 따진다면 스피커와 파워 앰프를 되도록 비슷하게 가져가라는 것이다. 스피커가 500만원이라면 파워는 400만원에서 600만원 사이로 결정해야 한다. 크렐 KSA250 파워 앰프에 셀레스천 디톤44 스피커를 우연치 않게 매칭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도 디톤44에서 울리던 첼로의 그윽한 향기와 윌리 넬슨의 걸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스피커보다 가격 대비 6배가 넘는 파워 앰프의 조합은 부조화의 전형이겠지만 소리만큼은 결코 부조화가 아닌 것이다. 이른바 ‘어쭈구리 효과’도 아니다. (예정된) 너무도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흔히 스피커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으로 앰프를 생각하는데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스피커에 못 미치는 앰프를 선택하는 경우가 열 중 여덟아홉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심리상 스피커는 오랫동안 고심하고 결정한 것이므로 예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로 인해 뒤에 준비한 앰프 및 소스기기는 항상 실탄부족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피커와 앰프의 순서를 결정해야 한다면 나는 먼저 파워 앰프부터 결정하고 그 다음 여기에 맞는 스피커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피커를 구동하는 데 파워 앰프가 낑낑대는 현상은 적어도 생기지 않는다. 파워 앰프가 기분 좋게 스피커를 구동하여 밸런스를 확보하지 않는 한 어떤 질감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프리와 소스기기를 한꺼번에 결정한다. 프리와 소스기기는 힘, 구동, 밸런스의 세계라기보다는 소리의 질적 특성들 즉 음의 색상과 농도 및 질감에 대한 나름의 취향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프리와 소스기기로서 소리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골조와 그 주요한 외관을 대부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그리려는 소리가 애당초 빈센트 반 고흐의 농도 짙은 색감이 강렬한 남프랑스 풍경화였다면 프리앰프와 소스기기도 그렇게 가면 된다. 모네가 그려내는 파스텔 톤의, 엷지만 아른거리는 안개에 가려 확실한 실체가 뿌옇게 전개되는 몽상적인 풍경, 그리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변덕스러움을 소리에서도 느껴보고 싶다면 그렇게 가면 된다.
스피커, 파워, 프리, 소스기기의 전반적인 조합이 통일된 성격을 잃게 된다면 소리는 내 의도에서 벗어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순전히 소리에 자신을 맡길 도리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셋째, 카트리지와 그와 걸맞은 승압트랜스 또는 포노 앰프를 한 번에 결정한다. 아날로그의 힘은 베이스와 팔뚝에서 나온다. 즉 턴테이블과 암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카트리지를 장착해도 소리는 혼탁해지고 아날로그는 추억의 대상일 뿐 오디오 시스템의 좋은 구성부분은 되지 못한다. 턴테이블과 암은 마치 리스닝 룸과 같은 것이다. 리스닝 룸에 따라 음향적 조건이 기본으로서 갖춰지듯이 베이스와 팔뚝에 따라 아날로그 음악재생의 음향적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리스닝 룸을 좋고 나쁨에 따라 일렬로 세울 수 있듯 턴테이블과 암도 일렬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리스닝 룸에도 나름의 특징이 있듯이 턴테이블과 암에도 나름의 특징이 있다.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카트리지나 포노 앰프처럼 취향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엄정한 기본기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턴테이블과 암이다. 턴테이블과 암에 기본기가 없으면 절대 정숙한 아날로그 음을 얻을 수 없다. 지저분함과 퍼지는 저역, 멍청한 고역이 어김없는 벌칙으로 돌아온다.

소리의 색감과 취향은 카트리지와 그와 걸맞은 승압트랜스 또는 포노 앰프를 사용하여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카트리지와 포노앰프 또는 승압트랜스와의 매칭이다. 매칭의 묘미는 아무리 저가라 할지라도 궁합이 잘 맞는 카트리지와 포노앰프를 사용하면 동급의 디지털 시스템과 비교하여 최소 열 배 이상 좋은 느낌의 소리로 보답해준다는 점이다. 하물며 매칭이 잘 안 맞는 고가의 카트리지와 포노앰프보다 더 좋은 소리로 보답해준다. 따뜻하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은 선예도 있는 좋은 소리로 보답해준다. 가난한 자로 더 빨리 하이엔드에 가까워지길 원한다면 오히려 아날로그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클래식 연주의 전성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그 시기를 같이 한다. 마치 오늘날 영화 한 편을 제작하듯이 정성들여 레코딩한 아날로그 시대의 명음반 명연주를 아날로그 기기로 재생하지 않는다면 어찌 오디오의 진짜배기를 맛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넷째,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전원장치에 투자한다. 배경의 깨끗함은 ‘하이엔드 흉내내기’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리고 가장 빨리 배경의 깨끗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전원장치에 신경 쓰는 것이다. 나는 차폐트랜스와 전원 케이블(비록 국산 자작이지만)을 사용하여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그렇다면 스피커 케이블과 인터케이블 및 진동방지 장치는 어떤가? 나는 솔직히 4,5년 전만 해도 ‘케이블 무용론’ 또는 ‘막선파’에 가까웠다. 처음 며칠간은 인터케이블 등을 바꿨을 때 소리가 달라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케이블이 주요 시스템과 동화되어 그 차이가 미미해진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비록 과학적이진 않았지만 주위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에 의해 내 주장의 정당성을 찾곤 했다. 그러나 케이블 제작의 눈부신 발전과 비교시청에서 얻은 많은 경험은 나의 이러한 생각이 근거 없음을 여실히 깨닫게 했다. 그렇다고 케이블이 주가 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케이블과 진동 장치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나의 오디오 시스템
내가 지금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것은 한 4년쯤 된 듯싶다. 그러나 4년 동안 거의 바꿈질이 없었으니 오디오 매니아라고 이름 붙이기도 창피한 지경이다. 4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후 안방 맞은편에 있는 3평반밖에 안되는 작은 방을 오디오 룸으로 정했다. 당시에 쓰고 있던 마틴로건 스피커는 그 크기 때문에 도저히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연히 마틴 로건 스피커는 거실로 옮기고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오디오 시스템 전체를 처음부터 구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 오디오 환자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열락이 바로 이런 상황이리라. 게다가 아내에게 시스템을 위한 예산까지 공식적으로 배정 받았으니 말이다.
먼저 스피커와 파워 앰프를 구상했다. 리스닝 룸으로 자격미달인 작은 방이지만 그 극한까지 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제한된 예산이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바야흐로 즐거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욕심은 한이 없다. 어느 정도 음장 형성이 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현의 질감도 확보해야 하고, 피아노의 명징함도 나오는 시스템이어야 하고……. 한이 없다. 장고를 거듭한 끝에 얻은 결론은 아발론이었다. 음장 형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리스닝 룸에서 그나마 음장이 형성되려면 아발론 류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인클로저로 나름의 음장재현 설계를 보여준 아발론 스피커는 부족하지만 현의 질감도 흉내내고 무엇보다 피아노와 보컬 재생에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방의 크기에 맞춰 소형 톨보이 모델인 아발론의 아바타를 들이기로 하고 동시에 파워는 제프 롤랜드로 결정했다. 어느 잡지에서 본 제프 롤랜드 시청실에 놓여 있던 아발론의 스피커에 대한 기억, 아발론 스피커와 제프 롤랜드 배선재 둘다 카다스 케이블을 사용한다는 점 등이 매칭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주었다. 제프 롤랜드 라인업에서 엔트리 모델인 모델 1을 브리지 방식으로 사용하기로 맘먹고 사냥에 나섰다가 국내에 잘 돌아다니지 않던 100W 모노블록 파워인 모델 3을 우연히 구하게 되었다. 오더블 일루전 프리에 연결하여 소리를 들어보니 역시 저음이 성에 차지 않았다. 카다스제 점퍼를 제거하고 스피커 케이블을 더블런 방식으로 연결하여 고역은 반덴헐 매그넘으로 중저역은 김형욱 씨(지금은 오디오 숍을 오픈했다)가 만든 케이블을 연결했다. 그제야 저음이 알맞게 터져 나왔다. 제프 롤랜드 모델 3은 모델 1과 모델 2의 중간쯤 되는 파워를 모노블록 형태로 비교적 소량 제작한 것인데, 아바타 스피커와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절한 구동력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프리앰프와 소스기기의 결정이었다. 직진성이 강하고 투명한 소리경향을 갖는 프리를 찾다 매칭한 것이 오더블 일루전 M3A 프리였고, 나중에 약간의 까칠까칠한 질감과 저역을 보강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올닉 L-2000 프리였다. 올닉 프리앰프가 밸런스가 약간 고역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지인들은 말하지만, 오히려 저역 재생과 소리의 질감 표현에 발군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디지털 소스기기는 메리디언 508.24로서 부드럽고 소박한 소리를 들려준다. 소위 메리디언 사운드답지 않은 스케일도 보여주고, 해상도도 좋은 편에 속하고, 무엇보다 소리의 색깔이 맘에 들었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이 이미 메리디언 508.24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되었지만 가격을 생각한다면 아직도 현역기로 충분하다.
아날로그 플레이어는 소타 스타 사파이어에 SME Ⅴ 암을 사용했고, 프리앰프와 비슷한 소리경향을 갖는 올닉의 H-1500 구형 포노앰프에 카트리지는 고에츠 블랙 구형과 데논 103R 바꿔가며 들었다. 진공흡착방식인 미국제 소타 스타 사파이어 턴테이블과 SME Ⅴ 암은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과 넓은 대역폭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다. 어떤 카트리지와 포노앰프를 매칭해도 있는 그대로 성격을 보여준다. 벤즈 마이크로의 루비 2와 PP1과의 매칭이거나 라일라 헬리콘과 실버큐브와의 매칭이거나 고에츠 로즈우드 카트리지와 코터박사의 승압트랜스와 매칭이거나 그 매칭의 묘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날로그 소스기기에 있어서만큼은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솥(鼎)에 다리가 하나 없으면 솥은 쓰러진다
오디오 시스템 매칭에 있어서는 어느 한쪽이 부족하게 되면 전반적인 소리의 질이 떨어진다. ‘첫째도 밸런스, 둘째도 밸런스, 셋째도 밸런스’가 시스템 매칭의 금과옥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른바 ‘둘둘둘 방식’이 유효한 것이다.
이제는 슬슬 하산할 때가 된 것 같다. K2와 같은 최고의 봉우리에 올라와서가 절대 아니다. 그런 봉우리에 올라선 많은 주위의 오디오 선배님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저 우리 동네 앞산 정도의 편안한 산봉우리에 올라온 느낌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팔 굽히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면서 웬만큼 체력을 비축했으니 슬슬 하산하여 이제는 좀더 큰 산에 도전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오디오 환자인 모양이다.

▶▶나종방 씨의 시스템
[하이파이 오디오]
스피커 아발론 아바타, 마틴로건 퀘스트, 마그나복스 풀레인지 타원 6.5인치(자작)
프리앰프 올닉 오디오 L-2000, 오더블 일루전 모듈러스 M3A
파워 앰프 제프 롤랜드 모델 3   CD 플레이어 메리디언 508.24   턴테이블 소타 스타 사파이어
톤암 SME Series Ⅴ   카트리지 고에츠 블랙(구형), 데논 103R  
포노 EQ 올닉 오디오 LCR H-1500(구형)   전원장치 자작 차폐트랜스(김형욱 님 작)
인터커넥트 케이블 첼로 스트링 1, 아크로텍 8N, 트랜스페어런츠 뮤직플러스
스피커 케이블 반덴헐 MC 매그넘(고역용), 자작 케이블(김형욱 님 작, 중저역용)

[홈시어터 시스템]

AV 앰프(혹은 리시버) 야마하 RX-V1200   파워 앰프 인켈 MD2200(민경찬 님 개조)
DVD 플레이어 대우 DQD-2000   프론트 스피커 셀레스천 디톤 44   리어 스피커 크리스 CSC 1.1
센터 스피커 크리스 CX 1.0   케이블 킴버 8TC, 4TC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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