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고2 때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자랑삼아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정작 한 페이지 읽기도 버거웠다. 대학생이 되어 재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얼마 전 불면의 밤에 서가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책을 다시 꺼내 들고 또 도전! 역시 실패했다. 3전 3패! 여기저기 불경을 읽듯 몇 페이지를 뒤적이다가 말았다. 이런 지난한 책이 명저로 소문난 것은 그 당시 18세기는 영화도 없었고 공연도 드물었으며 오직 가끔씩 나오는 책 몇 권이 고작이었으니 나오는 족족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종교적인 사회 기반 속에서 몇몇 구절이 논쟁거리가 되었으니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 법도 하다. 한 구절은 남는다. 순수란 무엇인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이 앰프를 설명하기 위해 위의 예를 적용한다. 이 얼마 비싸지도 않으며 저가품이고 초보자 입문용이라고 할 만한 제품이 나로서는 칸트를 운운하게 만든다. 왜?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이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는 잘 몰랐는데 다시 만나보니 너무나 인상적인 인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감정 때문이다. 그때도 좋았지만 이제 보니 진국 중의 진국이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제품이 이런 가격대에 섞여 있었다니.
최근 밀라노 톱 오디오 쇼에서 선보인 이 제품은 지금 간간히 나오고 있는 올인원 제품의 한가지다. 이런 제품이 그동안 몇 차례 선을 보인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저가격, 편의성만의 장점인 수준이 태반인데 비해 본 기의 차별성은 완전 최신 메커니즘을 갖춘 기기라는 것이 으뜸인데, 이번에 재차 들어보고 완전히 감탄이었다. 거창한 내 시스템을 모두 치워버리고 이거 하나로 안착을 해 버릴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자그마한 스피커 하나. 지금 내 신종 고민이다?

사실 오디오 제품이 복잡다단해지고 오버 엔지니어링으로 넘쳐 나지만, 이상적인 모델은 올인원이라고 생각한다. 스피커야 기본적으로 크기를 줄일 수 없다. 하지만 소스기기나 앰프들은 제발 그 거품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취미라는 것이 일종의 자기도취이고 허욕에 가깝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그런 시각에서도 작은 스피커, 인티앰프, 그리고 이런 올인원을 연구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었으면 한다. 동네 뒷산에 가면서도 수백만원짜리 등산복을 차려입어야 하는 추세인지라 이런 얘기 자체가 좀 이상하게 비치겠지만….
본기의 명칭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네트워크 뮤직 시스템이다. 요즘은 모두 ‘스트리밍’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스트리밍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하드 디스크의 용량에도 제약받지 않게 되었다. 본 기는 그런 시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제품인 것이다.
이 한 기종 안에 기존의 인티앰프와 CD 플레이어는 기본이고, 뮤직 스트리밍 기능, FM·인터넷 라디오, 디지털 입력 5계통, 아날로그 입력 3계통이 있고, 아이팟과 USB 메모리도 연결할 수 있다. 물론 WAV, AIFF, FLAC과 같은 MPS 파일도 재생 가능하다. 네임은 유니티 시리즈를 개발한 뒤 전통대로 정갈하고 미려하며 콤팩트한 몸체 안에 이러한 각종 테크닉을 유감없이 포함시켜 올인원으로 만들었다.

본 기는 ‘크기에 속지 마시라. 슬림한 몸체 안에 리얼한 에너지와 명료한 음악을 제공받을 수 있는 네임의 모든 기술력을 모두 동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DAC만 해도 버브라운의 PCM 1793이라는 유명 부품을 투입했고, 채널당 50W 출력을 담아냈다. 아이패드, 아이폰도 제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재생 목록, 앨범 검색 및 입력 선택 등 어느 IT 제품 못지않게 확장성이 광범위하다. 이런 제품을 사실 좋아하지 않는 세대이지만, 올인원의 매력이라는 것은 사실 오디오에 넌더리가 난 구세대에게도 와 닿는 구석이 있다.
이 제품을 미니 사이즈인 다인오디오의 포커스 160과 피에가의 프리미엄 1.2(이번 호 시청기)에 매칭해서 들었다. 미니 사이즈의 2웨이 스피커는 사실 울리기가 만만치 않다. 작다고 쉬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대출력이 들어가는 편이기도 한데, 이 시청기의 50W 출력은 전혀 모자라지 않다. 너무나 놀랐던 것은 다인오디오의 포커스 160과의 매칭이었고, 이 대목에서 갑자기 칸트 선생의 책이 튀어 나오게 된 것이다. 메모지에 적힌 것을 그대로 소개하자면, ‘띵 호아’라는 것이다. 투명의 극치이고, 현 독주곡의 실체감, 수준을 뛰어 넘는 해상도, 피아노의 우아함, 보컬은 애틋하고 청아하며, 마치 300B로 듣는 듯 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피에가로 옮기면 스피커 장악력이 더 커지면서 다소 탐미적이고 감상적으로 변모한다. 결론은 두 스피커 모두 너무나 우아한 소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갑자기 심각한 고려 대상이 출몰했다.
수입원 디오플러스 (031)906-5381
가격 330만원 실효 출력 50W(8Ω), 75W(4Ω) DAC 버 브라운 PCM1793
디지털 입력 Coaxial×2, Toslink×2, 3.5mm Toslink×1, USB A타입×1
아날로그 입력 RCA×2, 3.5mm 스테레오 잭 아날로그 출력 스피커, 헤드폰, DIN
주파수 응답 10Hz-20kHz(+0.1dB, -0.5dB) S/N비 75dB 입력 감도 125mV
튜너 FM, DAB 지원 크기(WHD) 43.2×7×30.1cm 무게 7.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