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기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 받은 부메스터의 혈통

언제였던가. 어느 오디오 전시장에서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수입원 사장의 부스에 들렀었는데, 유난히 번쩍이며 지금까지 경험했던 프리앰프와는 모습이 전혀 다른 우아한 모습의 프리앰프가 눈에 띄였다. 필자로서는 당시 처음 보는 메이커였는데, 약간 검은 빛을 띠는 크롬 도금의 전면 패널에는 큼지막한 노브가 3개나 장착되어 있으며, 톱 패널에는 자그마한 스위치들과 컨트롤 노브가 달려 있고, 조금 낮은 부분에 단자들이 채용되어 있는 조금은 별난(?) 프리앰프였다. 재생되는 사운드에서도 필자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아주 맑고 깨끗한 음으로 그럴듯한 분위기까지 연출해주어 호기심을 충동질하기에 모자람이 없어보였다. 당연히 귀가 얇고 호기심이 많았던 필자는 그 프리앰프를 눈여겨보며 메이커에 대한 정보도 확인해보았었는데, 부메스터라는 브랜드였다. 이 회사는 'Art For The Ear'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77년 독일에서 출범한 하이엔드 메이커이다. 사장인 디터 부메스터(Dieter Burmester)는 독특한 성격으로, 최고를 지향하는 제품 철학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세계 시장에 부메스터의 진가를 알린 하이엔드 중견 기업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 생산에서 부메스터만의 특징이라면 모델을 자주 변경하지 않으면서, 전 제품의 모듈화로 업그레이드가 용이하도록 설계·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808 프리앰프도 후에 MK5까지 발전시켰고, 80년대 말까지는 프리앰프 외에 파워 앰프와 CD 관련 기기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사 제품들의 진가를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스피커가 많지 않다는 판단에서 5년 동안을 끈질기게 연구 개발하여, 1994년에는 949라는 모델의 스피커를 발표함으로써 종합 오디오 메이커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808 MK3 프리앰프는 호주머니 사정과는 동떨어진 높은 가격 때문에 끝내 함께하지 못했지만, 이 앰프는 MK5에 이르러서 말 그대로 완벽에 다다른다.
완벽한 밸런스 설계 모델로 클래스A급 증폭 방식과 모듈 회로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으며, DC 커플드 설계로 신호단에는 저항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전원부를 가지고 있어 일렉트릭 노이즈에도 강한 면모를 갖추었다. 이루지 못한 짝사랑 때문이었겠지만 지금도 이 앰프에 대한 호기심은 버리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어찌되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부메스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부메스터의 오디오를 만날 수 있어 지난날의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동안 부메스터에서는 회사 출범 당시 내세웠던 제품 철학을 고수하며 하이엔드만을 주장했었지만, 하이엔드의 제작 과정에서 터득한 모든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그동안 부메스터를 애용해준 세계의 모든 고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새로운 설계의 엔트리 기기를 선보였다. 바로 이번에 만나게 된 클래식 라인 시리즈이다. 클래식 라인 시리즈에는 102 CD 플레이어와 101 인티앰프가 포함되어 있다. 파트너인 101 인티앰프는 효율적인 D클래스 전력 섹션과 아날로그 전력 장치의 조합으로 4Ω에서 채널당 120W를 내어주며 부드러운 스위치 감촉과 함께 부메스터의 혈통임을 거부하지 않는 모습으로, 102 CD 플레이어와는 닮은 모습이 특징이다.

102 CD 플레이어는 부메스터의 엔트리급 모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부메스터의 혈통답게 특징들은 유전되어 외장도 크롬 도금으로 마감되었으며, 견고한 만듦새도 여전하다.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동사 061 CD 플레이어에 채용되어 세계의 애호가들로부터 이미 검증을 받았던 D/A 컨버터와 동일한 것을 채용, 정교하고 섬세한 재생음을 보장한다. 동축 및 광 2개의 디지털 입력을 지원하며, TV 혹은 블루레이 플레이어 같은 외부 소스들과 연결이 가능하다. 참고로 업샘플링은 24비트/96kHz, 24비트/192kHz로 변환·선택할 수 있다.
전면 패널 왼쪽 상단에 CD 트레이가 위치하며, 맨 오른쪽에는 전원 스위치와 전원 LED가 있고, 중간에는 LED 디스플레이와 플레이, 스톱 등의 컨트롤 버튼이 자리한다. 디지털 입력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동축 및 광 각각 1조가 마련되었고, 디지털 출력 역시 같은 구성이다. 그리고 아날로그 출력은 밸런스 1조, 언밸런스 2조가 장착되어 있다.
시청에는 이른바 부메스터 풀 시스템으로 단짝 101 인티앰프에 동사의 995 MK3 스피커를 사용했다. 오래전 짝사랑했던 808 MK3에서 느꼈던 사운드와 동일한 사운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느낌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충실한 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피아노의 사운드는 현실감이 좋아 스피디하면서도 어택하는 음이 탱글탱글하게 전해온다. 잔향도 그럴듯해 공명판이 좋은 피아노라는 느낌이 들고, 왼손과 바른손의 위치도 잘 전해진다. 재즈 음악에서도 리얼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연주자들의 상기된 표정, 스윙감도 재즈답다는 생각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앙상블은 무난했으나, 바이올린의 고역에서 조금은 에지가 서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등의 저음에서는 밀도감도 괜찮았고, 무게 중심도 좋았다. 재즈의 보컬은 아주 좋아 크지 않은 무대의 분위기가 리얼하며, 가수의 특징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옛날 첫 사랑하던 사람의 막내 동생을 우연히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며, 그동안의 소식 등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수입원 우리오디오 (02)2246-0087
가격 900만원 아날로그 출력 XLR×1, RCA×2 디지털 입력 Coaxial×1, Optical×1
디지털 출력 Coaxial×1, Optical×1 크기(WHD) 48.2×9.5×32cm 무게 7.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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