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호 주인공 박항서 씨는 ‘가덕 선장’이라는 닉네임이 말해 주듯, 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가덕도 항에서 3톤짜리 낚싯배를 운영하고 있는 선장이다. 짜릿한 손맛을 느끼고 싶은 낚시꾼들을 태우고 가덕도 연안의 포인트로 안내하는 일이 주업이지만, 빈티지 오디오를 통해 자신만의 짜릿한 소리를 찾는 일에 진심인 ‘마니아’다. 요즈음같이 낚시가 금지된 금어기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시간이다. 부산의 서쪽 끝 명지 국제 신도시에 있는 그의 청음실은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지 못해 다소 어수선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각종 빈티지 기기를 다듬고 살려 내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박 씨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하다.

하틀리 24인치 우퍼가 채용된 스피커 시스템
거짓말을 할 때마다 피노키오의 코가 커지는 것과 같이, 더스트 캡 자리에 삐죽 솟아 있는 긴 뿔이 인상적인 하틀리 우퍼는 그 크기만큼이나 여유로운 저음을 내준다. 이 우퍼를 중심으로 스피커를 조립하고 튜닝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하틀리 우퍼와 조합을 이룬 중역 스피커는 JBL의 LE85 혼 드라이버(사각 혼은 국내 복각 제품)이다. 여기에 더해 JBL 375 혼이 고역을, 젠센 RP-302 슈퍼 트위터 유닛이 초고역을 담당한다. 주파수 분할은 와피데일의 3웨이 네트워크가 사용되었다. 슈퍼 트위터는 별도의 네트워크 없이 하이패스 필터용 커패시터를 붙였다.

왜 하틀리 대구경 우퍼를 중심으로 스피커를 만들게 되었는지 박 씨에게 물어보았다. 다이어프램이 없는 구조 때문인지 콘지 재질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좀더 부드러운 저음이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튜브 음원을 통해 해리 벨라폰테의 ‘Danny Boy’를 들려주었는데,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저역이 일품이었다.
메인 스피커 뒤편에 보이는 서브 스피커 역시 하틀리 24인치 우퍼가 채용된 것이다. JBL LE85 혼이 중역을, JBL의 175 벌집 혼이 고역을 담당토록 구성했다. 두 조의 하틀리 우퍼 중 메인 시스템은 영국에서 제작된 것이고 또 다른 서브 시스템은 미국 생산품이라는데, 그의 귀에는 영국산 우퍼의 소리가 잘 맞는다고 한다.

다양한 프리와 파워 앰프
브룩의 12A3 프리는 원래 2A3 출력관을 푸시풀로 연결한 파워 앰프 12A와 짝으로 발매된 것이다. 모노럴 시대의 제품으로 스테레오 구성을 위해서는 두 대가 필요하다. 프리에서 증폭된 신호는 매킨토시 MC30으로 보내져 스피커를 울린다. 브룩 프리앰프의 전원은 브룩 12A에서 공급받도록 제작된 것이지만, 박 씨의 시스템은 MC30 파워가 프리에 공급하고 있다.
박 선장에게 MC30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더니 하틀리 우퍼의 구조와 최대 입력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틀리 우퍼는 보이스 코일의 과도한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다이어프램이 없다. 이럴 경우 직류 성분이나 큰 입력 신호가 인가되면 코일이 영구 자석과 폴 피스 공간을 벗어나 유닛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박 선장이 최대 출력 30W인 진공관 앰프로 스피커를 구동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서브 스피커용 앰프는 매킨토시의 C8 모노-모노 프리앰프와 매킨토시의 MC30 파워 앰프 조합이다.

LP 재생을 위한 아날로그 소스로는 테크닉스의 SP10에 오토폰 퀸텟 블루 MC 카트리지가 사용된다. 미세한 LP 신호는 LCR 포노 앰프를 통해 승압과 보상 기능을 수행한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레코드 소리가 부드럽고 잡음도 나지 않기에 현재 LP 재생 중인지를 살펴봐야 했다.
방송용 장비인 테크닉스 SP10 턴테이블은 다이렉트 드라이브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내구성과 정확한 속도, 강력한 토크로 인한 퀵 스타트 기능까지 나무랄 것이 없다.

방송용 기기인 스튜더 D730과 D731 CD 플레이어 역시 만듦새와 음질 모두 만족스러워 즐겨 사용했지만 자주 고장이 발생해 애를 먹인다고 한다.

자작과 튜닝의 세계
박 씨는 주로 아날로그 기기나 스피커를 대상으로 튜닝과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애호가의 호기심을 무기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최상의 소리를 찾는 데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테크닉스, 데논, PE LP 플레이어의 소리 변화를 즐기기 위해, 여러 개의 톤암을 준비했다. 톤암을 교체한 후 오버행과 침압, 밸런스, VTA 등을 조정해 소리의 변화를 이끄는데, 최적의 상태로 맞춰진 LP 플레이어가 완전히 다른 재생음을 내는 데 놀라곤 하며, 계측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청감에 의존한 튜닝에 어느 정도 만족한단다.

빈티지 마니아란, 고물을 보물로 만드는 연금술사가 아닐까?
빈티지 오디오의 길은 고행길이다. 박 선장도 잦은 고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유한 클랑필름은 소형 극장용 시스템으로 개발한 진공관 프리와 파워 앰프가 내장된 증폭 시스템인데, 언젠가부터 제 성능을 내지 못해 수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서울에 수리 잘하는 기술자가 있다고 하는데 기기 특성상 택배로 보낼 수도 없으니 직접 차에 싣고 갈까 고민 중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생각났다. 우연히 던져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질문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의 여주인공 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한 대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누르고 솟아올라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필사적으로 떨더니 이윽고 저음으로 내려와서는 즉각 멜로디의 흐름 속으로 빠져 들며 다른 소리들과 뒤섞였다. 시몽은 하마터면 고개를 돌려 폴을 안고 키스를 할 뻔했다. (중략) 폴은 그런 시몽의 표정을 보고 그가 정말로 음악광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민음사가 이 책을 펴내면서, 표지에 사용한 그림은 마르크 샤갈의 <생일>이다. 꽃을 든 여인에게 입 맞추려 공중을 휘감아 도는 남자의 모습이 부각되는 그림이다. 과연 남자는 여자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을까? 샤갈의 그림을 보면서, 소설에서 폴에게 던져진 질문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 내게 ‘브람스’를 ‘빈티지 오디오’로 바꾸어 질문한다면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다. 그리곤 나의 ‘빈티지 오디오 라이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어설픈 답을 준비했다.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란 ‘고물’을 ‘보물’로 바꾸는 연금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