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에 혼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에디슨의 포노그라프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은 출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적 도구였다. 전기의 초창기 시절이던 20세기 초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대출력 음향을 구현할 전기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출력 앰프와 거대한 혼의 스피커가 극장용 음향 시스템으로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이후, 전기전자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가 등장했고, 대출력 앰프들이 등장하면서 현재와 같은 다이내믹형 일반 스피커들이 스피커의 표준이 되었다. 그런데 구시대 기술로 여겨지던 혼 스피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혼 스피커 제작에 나선 독일 청년이 있었다. 아방가르드 어쿠스틱(Avantgarde Acoustic)을 설립한 홀거 프로메(Holger Fromme)의 이야기다.
대학생 시절부터 음악과 음향에 관심이 높았던 홀거는 전기전자 전공은 아니지만, 혼 스피커의 매력에 빠져 1983년 아방가르드의 모체가 되는 회사를 세웠다. 2년 뒤, 처음으로 유리 섬유 소재의 혼으로 만든 스피커를 내놓게 되었는데 당시 제품의 이름이 트리오였다. 공식 생산 제품은 아니지만, 프로토타입 스피커 제작에는 엔지니어였던 마티아스 루프(Matthias Ruff)가 기술적 도움을 주었다. 이때부터 홀거와 마티아스는 제대로 된 혼 스피커에 빠져들게 되었고, 1991년 공식적으로 아방가르드 라우드 스피커 시스템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대표는 홀거 프로메, 기술 책임자는 마티아스 루프였고, 이 체제는 2020년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피커 제조사가 된 아방가르드는 2년여의 개발 끝에 1차 시리즈 라인업을 완성했다. 오늘날 아방가르드 스피커의 중심축을 이루는 우노(Uno), 듀오(Duo), 그리고 트리오(Trio)가 그 주인공들이다. 1994년 하이엔드 오디오쇼에 공식 데뷔를 한 아방가르드의 스피커들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대중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큰 도움을 준 것이 한국의 수입원인 태인기기였다. 유명세를 얻기 전이었지만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수입·판매를 하며 매출을 높여준 덕분에 초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이후 전 세계적인 판매망을 확보하며 하이엔드 스피커로서의 기틀을 갖추었고 현재의 아방가르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아방가르드 혼 스피커의 핵심은 혼 설계 및 제작 기술에 있었다. 음향적 기술 원리에 기반을 둔 아방가르드의 혼은 금관 악기들의 개구부 형태와 유사한 스페리컬 타입의 혼 디자인을 사용한다. 스페리컬 혼은 일반적인 익스포넨셜 혼에 비해 훨씬 넓은 면적으로 음파를 퍼뜨리고 음색적 왜곡이 훨씬 적다. 아방가르드는 이를 위해 2,500톤의 압력으로 찍어내는 ABS 수지 소재의 혼으로, 원하는 형태의 혼을 정확히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오차가 0.04mm에 불과한 아방가르드의 혼은 완벽한 좌우 일치를 통해 정확한 스테레오 성능을 자랑한다.
스페리컬 혼 기반의 아방가르드 스피커는 무려 100dB 이상의 놀라운 감도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대개 80-90dB 스펙에 불과한 일반 스피커들과 달리 100dB 이상의 높은 감도 스펙을 지닌 아방가르드의 혼 스피커는 대단히 빠른 반응과 정밀한 사운드를 연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너무 높은 감도 때문에 고역과 저역이 중역을 따라가지 못했다. 1세대 최초의 아방가르드 스피커들은 해결책으로 중역의 감도를 낮추는 크로스오버를 넣어 트위터와 우퍼에 밸런스를 맞추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혼의 장점을 제한시키는 방식을 풀기 위해, 혼 디자인을 개선하여 혼 자체가 음향 필터 역할을 하는 CDC 기술을 개발했다. CDC는 혼이 로우패스, 하이패스 필터 역할을 하여 크로스오버 없이 미드레인지를 우퍼와 트위터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2000년 이후 발매된 신형 스피커들은 크로스오버가 사라졌고, 트위터에만 보호용 저항과 콘덴서 1개가 추가되어 앰프의 직접적인 구동이 실현되었다, 또한 액티브 우퍼도 버전업을 이루어 본격적인 하이엔드 혼 스피커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아방가르드가 단순히 혼 스피커만을 만드는 업체는 아니다. 스피커 드라이버에서 캐비닛과 크로스오버까지 직접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하이테크 음향업체이다. 그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오메가 드라이버이다. 2000년 이후 등장한 트리오 2세대 플래그십을 위해 개발된 새로운 트위터, 미드레인지인 오메가 드라이버는 110dB 수준의 감도와 27Ω의 임피던스라는 전례 없는 수준의 성능을 이루어냈다. 높은 임피던스와 감도는 댐핑 팩터를 비약적으로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에 사용되는 콘덴서의 문제점에도 메스를 가해 CPC(Capacitor Polarization Circuit) 회로를 개발, 100V의 DC 바이어스 상태로 크로스오버를 동작시켜 제로 크로싱 없이 신호를 구현하여 최적화된 콘덴서 동작 성능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섬유 소재에 특수 코팅을 적용한 메시 멤브레인 트위터와 케블라 소재 미드레인지, 페이퍼 콘의 대형 우퍼 등 자체적인 소재 개발로 가장 이상적인 혼 스피커 드라이버를 개발해냈다. 트리오의 오메가 드라이버들은 이후 아방가르드 스피커들 일부에 적용되며, 오메가 버전이라는 베리에이션 시리즈를 만들었다.
아방가르드 스피커들은 작게는 104dB에서 많게는 110dB까지 엄청난 고감도를 자랑하고, 임피던스도 18Ω, 27Ω으로 매우 높다. 통상 85-89dB 수준의 스피커의 구동에는 대개 20-30W에서 많게는 100W 이상의 파워가 필요하지만 아방가르드 스피커들은 그 반대다. 힘센 고출력 파워보다는, 가장 높은 순도와 가장 뛰어난 1W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앰프가 필요했다. 듀오 같은 경우, 제대로 된 1W만 넣어도 100dB라는 엄청난 사운드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앰프로는 아방가르드의 퍼포먼스를 완전히 소화해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아방가르드는 2004년 모델 파이브라는 앰프를 내놓았다. 8Ω 기준 0.4W 출력의 퓨어 클래스A 앰프는 일반 스피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앰프였지만, 아방가르드 스피커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 단 1W 출력만으로도 스피커 감도만큼인 100dB 이상의 대음량을 거침없이 들려주었다. 음량만 큰 것이 아니라 아주 깨끗하고 투명하며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혼 스피커의 잠재력을 완전히 터뜨린 사운드를 내준 것이다.
가장 깨끗하고 가장 음악적인 최초 1W라는 설계 사상을 지닌 아방가르드의 앰프는 아방가르드의 레퍼런스 매칭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성능뿐만 아니라 레트로와 모던을 아우르는 홀거 프로메의 감각적인 디자인은 오디오파일들 사이에서 앰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아방가르드의 앰프는 피드백을 거의 쓰지 않고, 회로의 스테이지를 콤팩트하게 줄여 신개념의 앰프로 자리잡게 되었고 오늘날 XA 시리즈로 이어지며 하이엔드 앰프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XA 분리형 앰프는 모델 시리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배터리 구동 기술까지 더해 훨씬 더 깨끗하고 지고지순한 출력 만들기의 극대화를 이루어냈다. 클래스AB 모드에서는 150W 출력 스펙을 보여줄 정도로 힘이 넘치고, 무게도 45kg에 달하는 대형기의 모습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퓨어 클래스A에서는 1W 출력으로 아방가르드를 위한 최고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아방가르드는 대대적인 변신을 단행했다. 오메가의 기술을 활용한 신형 드라이버들과 새로운 구조의 프레임으로 스피커 구성 방식을 바꾸었다. 새로운 프레임, 새로운 인클로저, 그리고 트위터 인클로저를 우퍼 캐비닛에 서브 인클로저 형태로 결합시켜 대단히 슬림해진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성능 개선과 함께 혼 스피커의 물리적 위압감을 줄여 가정에서 사용하기 쉬운 형태와 크기의 혼 스피커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2세대 아방가르드가 G2(Generation 2) 시리즈이다. 창업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등장한 2세대 아방가르드는 듀오를 시작으로 전체 라인업에 적용되어 2세대 아방가르드 스피커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G2 시리즈 업그레이드 끝에는 신개념 아방가르드 모델 하나가 추가되는데, 바로 신개념 올인원 액티브 스피커 제로 원(Zero 1)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발표된 제로 원은 라이프 스타일의 콘셉트를 살려 혼을 캐비닛에 녹여 넣은 올인원 라이프 스타일 스피커이다. 탁월한 디자인은 오디오 업계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 사이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고, 2014년 레드닷 어워드와 IF 어워드를 모두 쓸어 담으며 하이파이에서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 기기로의 혼 스피커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G2 시리즈 이후 아방가르드는 8년 만에 3세대에 해당하는 XD 시리즈를 내놓게 된다. XD 시리즈는 혼 스피커의 취약점이던 서브우퍼의 한계를 부수며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혼 스피커의 퍼포먼스의 세계를 탄생시켰다. 아방가르드의 혼 스피커는 고감도와 하이스피드에 걸맞은 저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항상 난제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94년부터 꾸준히 서브우퍼의 교체와 개선을 시도해왔다. 그 기술적 한계점을 완전히 극복해낸 결정판이 바로 XD 서브우퍼 시스템이다.
XD의 액티브 서브우퍼 기술은 독일의 DSP 전문 업체가 개발한 솔루션이다. 미국 매지코의 하이엔드 서브우퍼에도 적용된 이 DSP 솔루션은 정교한 EQ 기능과 음향 보정 기술이 제공되며, 파워 앰프는 클래스D로 1,000W급 이상의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한다. 아방가르드는 XD 우퍼 시스템으로 G2 시리즈 전체를 새로 개편·튜닝하는 작업을 단행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아방가르드의 XD 시리즈는 이제 제로 원에서부터 트리오에 이르는 전 제품에 이식되어, 3세대 XD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XD 모델들은 고성능 하이스피드의 중·고역 사운드에 필적하는 스피드와 해상력, 다이내믹스 및 파워를 갖춘 서브우퍼로 혼 스피커의 사운드 퀄러티를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불과 1-2W 수준의 앰프로도 100dB 이상의 대음량과 초 하이엔드 스피커에서도 보기 힘든 단단하고 정밀한 리듬감, 엄청난 초 저역의 깊이감을 간단히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꿈꿔온 혼 스피커의 모든 장점이 드디어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혼 스피커로 알려진 아방가르드. 하지만 이 독일의 첨단 음향 기술 전문가 집단은 디자인에서 기술, 그리고 감성에 이르기까지, 혼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운드로 하이엔드 스피커의 새로운 영역을 탄생시켰다. XD 시리즈로 완전히 달라진 하이엔드 사운드 퀄러티의 아방가르드. 혼 스피커의 산 역사가 그려내는 하이엔드의 사운드를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