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의 선택을 받기 위한 오디오의 디자인 전략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2025-03-10     정재천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의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시청했다. 예선전이어서 그런지 두 바퀴 반을 도는 더블 악셀 동작 후 착지가 불안정하거나 넘어지는 선수들이 많았다. 은반에서 뛰어올라 3회전을 제자리에서 뱅그르르 도는 트리플 점프를 가볍고도 우아하게 연기하는 김연아 선수가 생각났다. 김연아 선수는 탁월함이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오늘의 피겨 경기는 탁월함과 우아함에 대해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디오를 통해 받는 일상의 잔잔한 감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레전드급 스포츠 경기에서 느끼는 일회성의 격한 감동은 물론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잔잔한 감동과 위안 역시 소중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양한 음악을 늘 접하며 살아간다. 좋은 오디오 기기를 탐하는 욕망 역시 음악의 감흥을 잔물결과 같이 늘 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호 글감인 애호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디자인 전략이 나온 배경이다.

1. 오디오 애호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소들 : 카노 모델

노리아키 카노라는 일본의 대학 교수는 고객 만족에 대한 모델을 발표했다. 이 모델은 고객이 제품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기본 요소 : 분명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기기의 특성이다.
◈성능 요소 : 사용자가 분명하게 요구하는 기기 성능이다.
◈신나는 요소(기쁨을 주는 것) :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요소가 기기에 더해질 때 사용자들이 얻게 되는 기쁨을 얘기한다.

카노 모델은 고객 만족의 범주를 기본 요소, 성능 요소, 기쁨을 주는 요소로 나누고 있다. 기본 요소는 오디오 기기가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이다. 이 요소가 부실하면 고객 만족도가 크게 낮아진다. 하지만 추가 기능을 많이 집어넣는다고 해서 만족도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두 번째 요소는 성능이다. 성능은 오디오 애호가의 만족 여부와 비례한다. 좋으면 높아지고, 나쁘면 낮아진다. 주목해야 할 요소는 ‘신나고 애호가의 기쁨까지도 끌어내는 요소’다. 이러한 요소가 새로 추가될수록 시장의 선택을 받기 쉬워진다.

소위 명기로 불리는 오디오 기기의 경우, 시장의 관심과 선택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기술 발전을 이뤄왔다. 오디오용 증폭을 위한 소자의 변천사를 예로 들면, 오디오의 시대를 연 것은 물론 진공관이었지만, 본격적인 흐름은 1948년에 발명된 반도체였다. 최초의 반도체 재료인 게르마늄이 실리콘으로 바뀌어 오디오 기기에 사용되더니, FET(전계 효과 트랜지스터), IGBT(고전력 스위칭용 반도체), GaN(질화갈륨) MOSFET과 같은 최신의 재료들이 채택되고 있다.

2000년 이후에 하이엔드 오디오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스위칭 증폭 소자의 확산도 빼놓을 수 없다. 주로 일체형 앰프에 많이 사용되는 이 소자의 특징은 PWM(펄스 폭 변조) 증폭 방식이란 것이다. 작고 발열도 적은 이 증폭기는 값싼 제품에 사용되더니 고가의 제품에도 채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통적인 변화의 물결에 더해, 역방향의 물결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데, 바로 진공관 앰프의 성장세이다. 여기에도 세부적인 두 흐름이 존재한다. 첫째는 기술적 진보보다 우아한 외관을 강조하는 디자인적 요소로 고객의 선택 유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입·출력단과 인터스테이지 증폭단 등에 트랜스를 채용해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트랜스 방식의 핵심은 주파수 특성이 좋은 트랜스에 있다. 또한 밸런스 입력과 출력을 제공해 신호 전송 효율을 높이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 마니아를 기쁘게 하기 위한 앰프 디자인 전략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기능과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작사의 설계 방향이 반도체식인가? 아니면 진공관식으로 개발할 것인가? 같은 기본적인 것에 머무른다면 카노 모델에서 알 수 있듯이 애호가의 선택을 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장의 흐름은 어느 제품이 마니아의 관심을 끌어내고 기쁨을 주는가에 달려 있다. 오디오 애호가를 만족시키고 기쁘게 하기 위해 앰프 디자인은 지난 60년간 어떻게 바뀌었을까?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세 종류의 매킨토시 프리앰프를 가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디자인 변화를 살펴보았다.

C11과 20여 년의 시차를 가지고 발매된 C29는 진공관식 앰프에서 반도체식 앰프로 전환되었다는 차별성이 있다. C29는 당시로는 최신의 소자인 연산 증폭기(OP 앰프)를 채택했다. C29가 발표된 지 대략 20년 후 매킨토시는 C2200을 발매했다. 종래의 C22를 현대화한 제품이라고 소개된 이 모델은 진공관을 증폭 소자로 사용했다.

60년 동안 매킨토시의 오디오 기기 설계가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다시 진공관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C29는 두 모델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C11이 가지고 있던 저역·고역 보정 회로나 저역·고역 필터 기능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C11의 증폭 소자를 진공관에서 OP 앰프로 변화시킨 차별점이 도드라질 뿐 기본 골격은 그대로다. 그러나 C2200은 C22와 증폭 단계만 유사할 뿐 전체 구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디지털 제어와 표시 기술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C2200은 포노단에 12AX7과 12AT7 진공관을 2개씩 채용하고, 라인단도 동일한 진공관 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진공관 개수를 하나씩 더 늘리는 대신 후단의 이득을 줄여 전체 증폭도는 거의 같게 조절한 것으로 기본적인 회로는 거의 같다.

C11은 포노단 등화 회로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 LP 디스크의 발매원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LP를 선택했을 때는 저역이 줄어들어 깔끔한 소리를 즐길 수 있는 반면, RIAA는 저역 이득이 높아 소리가 좀더 풍성해진다. 요즈음 하이엔드 기기 중 다양한 등화 곡선에 맞춰 가며 듣게 만든 설계 개념과 유사하다. 저항과 커패시터(CR)를 이용해 구성한 보상 회로는 CR 소자 값을 11단 스위치로 가변시켜 고역과 저역의 이득을 조절한다. 이 프리앰프를 매킨토시 MC240 파워 앰프에 물려 92dB 음압의 탄노이 RHR 스피커를 구동시켜 보면, 한밤중에도 자체 잡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이기고 좋은 소리를 내는 원동력은 높은 신뢰도의 부품으로부터 나온다. 이외에도 저역과 고역의 일정 주파수 대역을 차단하는 럼블 필터와 고역 제거 필터 역시 CR 회로로 이루어져 있다. 이 CR 소자는 에나멜로 보이는 붉은색 물질로 단단히 몰딩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성능은 어떠할까. 60년이 넘은 C11의 주파수 응답을 보기 위해 신호 발생기와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해 주파수 파형을 측정했다. 요즈음 하이엔드 기기보다는 측정 파형이 다소 떨어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진공관을 교체하고 가변 저항을 세척한 후 다시 측정해 보니 좌, 우측 채널 간 약간의 편차가 많이 개선되어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C2200은 정확한 주파수 응답을 보여 주었다.

3. 성능 요소를 강화해 오디오 애호가 만족을 높이기 위한 노력

C2200 프리앰프의 전자 볼륨이 애호가를 기쁘게 한다면, 볼륨단에 저가의 가변 저항 대신 고가의 감쇠기(Attenuator)를 사용하는 경우는 또 다른 만족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수동 조절 대신 리모컨을 이용한 볼륨 조절을 위해 스테핑 모터와 타이밍 벨트까지 활용된 기기 설계를 대하다 보면 과연 성능 요소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끝은 어디일지 묻게 된다. 어떠한 요소까지 설계에 반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제작자다. 그러나 어떠한 디자인적 요소에 만족하고 기뻐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애호가에게 달렸다.

좌측 사진은 C2200의 후면 패널로, 각종 밸런스 입·출력 단자와 종래의 RCA 단자가 빼곡하다. 3개의 밸런스 출력이 RCA 출력 단자와 함께 제공되므로 여러 대의 파워 앰프를 하나의 기기로 제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OP 앰프 기반의 변환 회로가 쓰인다. 우측 사진은 C11의 후면 패널이다. 한 조의 출력만을 제공한다. 모두 고 임피던스 RCA 단자로 입·출력 신호를 주고받는다. 오른쪽 위쪽에 보이는 두 개의 노브는 릴 테이프의 헤드에서 신호를 받을 때 앰프에 내장된 등화 회로로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좌측 사진은 저가의 가변 저항 대신 사용된 볼륨용 감쇠기이다. 30단 이상의 실렉터와 고정밀 저항으로 구성되어 음량에 따른 임피던스 변화가 작아 신호 전달 특성이 좋아진다. 우측 사진은 스테핑 모터가 타이밍 벨트로 저항 감쇠기를 돌려 볼륨을 조절하는 장치가 내장된 프리앰프다. 성능적 요소와 신나는 요소를 모두 포함한 좋은 설계다.

4. 에필로그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의 피겨 경기 금메달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차지했다. 차준환과 김채연 두 젊은 선수들의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김연아가 일군 피겨의 토양을 흠뻑 먹고 자란 새싹들이 은반을 마음껏 휘저으며 보여 주는 연기는 탁월함, 우아함, 신뢰감의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대단한 것이었다. 문득 오디오 애호가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 역시 이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빈티지에서 최신 하이엔드 기기까지 다양한 기기가 저마다의 소리를 뽐내고 있는 시대에 우리나라 오디오 산업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국산 제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국내·외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우리의 제품이 성장하기 위한 요소는 무엇일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