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L Acoustics TDL-M88 Harts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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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L Acoustics TDL-M88 Hartsfield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18.11.01 00:00
  • 2018년 11월호 (556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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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쉬로 즐기는 하츠필드의 또 다른 매력

 

밤에 불을 켜놓고, 마일즈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를 듣고 있으면, 미터기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 전체적으로 개방적이고, 시원시원하면서도 진공관만의 포실한 감촉이 함께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듣게 된다. 차제에 턴테이블을 구해다가 아날로그의 진미도 맛볼 생각이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계절. 유난히도 지독했던 여름 더위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정말 각별하다. 그런 차에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선생, 명동에서 한 번 볼까요?”
명동이라. 늘 지나치기만 하고, 실제로 거리를 걷거나, 식당을 찾은 기억이 최근에 없다. 그냥 차창 밖으로 영상처럼 흘러만 갔던 것이다. 지인 역시 오디오 전문가라, 아마도 나와 공유하고 싶은 뭔가가 있었나 보다. 이 가을에 웬 명동? 아무튼 쾌히 승낙하고, 오후 5시경, 중앙 우체국 앞에서 만났다.
때는 금요일. 이른바 불금 아닌가. 특히, 수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고,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가게가 줄지어 있는 덕분에 명동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이국의 어느 대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 났다. 그와 내가 공유하고 있던, 기억 저편의 아스라한 풍경. 이제 그것은 오로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괜히 입맛이 썼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내 주요 활동 무대(?)는 명동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동 한쪽에 쭉 펼쳐진 오디오 상가였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하지만, 8-90년대에 이쪽엔 제법 멋과 관록이 묻어났던 오디오 숍들이 많았다.
실은 대학 시절부터 줄곧 여기를 지나다니며 진열장 너머로 보이는 명기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싶다. 탄노이, 인피니티, 매킨토시, 마크 레빈슨, 크렐…. 그저 잡지에서나 보던 물건들을 실물로 보면 그 강력한 포스에 그냥 주눅이 들고 말았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 숍의 한구석이라도 자리를 잡고 음을 듣게 되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언젠가 이런 기기를 소유하고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불끈 불끈 들었다. 아마도 그런 추억 때문에 지금도 오디오 평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때 내가 자주 접했던 기기는 클립쉬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앰프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아도 좋은 음을 들려줬다. 공간이 좀 넓은 곳에 살 때엔 라 스칼라나 벨 클립쉬를 들였고, 좀 좁으면 그 밑의 톨보이로 만족했다. 뭘 사던, 기본적인 퀄러티는 보장하니, 한 번 들이고 나면 쉽게 교체하지 않았다. 물론 JBL, 탄노이, 하베스 등도 자주 들락거렸지만, 어디까지나 안방마님은 클립쉬 차지였던 것이다.
최근에도 이런저런 바꿈질을 하다가 문득 어느 숍에 진열된 KLF-20을 보고 그냥 지르고 말았다. 이것은 90년대 말에 생산되었는데, 오리지널 클립쉬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더 쓰기 편하게 3웨이 톨보이로 마무리 지은 물건이다.
클립쉬의 특징이라면, 기본적으로 3웨이 구성이면서, 트위터뿐 아니라 미드레인지도 혼 타입으로 설계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클립쉬만의 특허여서, 타 메이커들이 함부로 만들지 못한다는 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혼 스피커의 전성기였던 1950-60년대 많은 제품들을 보면 의외로 2웨이에 그친 경우가 많다. 이 설이 사실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 클립쉬는 울리기는 쉽지만, 제대로 울리기란 쉽지 않다. 나름대로 특이한 개성 같은 것이 있어서, 잘못 구사하면 고역이 좀 쏜다. 저역도 풀어지기 쉽다. 이 부분에 실망하고, 그냥 내치는 애호가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일이든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 이 단점을 잘만 극복하면, 한동안 바꿈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재즈, 그것도 1950-60년대 모던 재즈가 감상의 핵심이고, 60년대 록과 이 시기에 녹음된 클래식도 주요 레퍼토리다. 따라서 내게는 첨단의 하이엔드 제품보다는, 약간 케케묵은 스타일이 더 맞을 수 있다. 물론 이 시대의 음악은 약간 거칠다. 녹음 환경도 열악하고, 히스라든가 잡음도 좀 있다. 형편없는 퀄러티를 가진 녹음도 적지 않다. 이것을 적당히 음악답게 만드는 재주가 필요하다. 또 이런 거친 맛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들려야 한다.
물론 리뷰를 하다 보면 가끔 내 취향에 맞는 최신 제품이 걸리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언젠가 로또에 맞지 않는 이상, 일단 버킷 리스트에나 올릴 상황이다. 그러므로 클립쉬 계통을 계속 보유하려고 한다. 일단 KLF-20을 갖고 이런 저런 앰프를 빌려다 비교해보고 있는데, 최근에 만난 TDL 어쿠스틱스의 TDL-M88 하츠필드(Hartsfield)가 상당히 매력적인 조합이 되었다. 물론 출력은 약간 센 편이다. 하지만 내 공간이 워낙 협소한 탓이고, 넉넉한 거실에서 듣는다고 가정하면 별문제 될 것은 없다(하긴 혼 타입은 일단 청취 공간이 넓어야 한다).
워낙 TDL-M88에 대한 리뷰가 많이 나왔으므로, 이 대목에서 새삼 스펙 운운하는 것은 우습다. 단, 본 기의 개발 과정에 벨 클립쉬도 걸어서 체크했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했다. 그래서 빌려서 들어본 것이다.
역시 이런 혼 타입 스피커는 진공관이 특효약이다. TR의 경우, 출력이 높지 않지만 퀄러티가 좋은 클래스A 방식이 적합하다. 대략 실험해보니, 그래도 40W 정도 이상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시중에 클래스A 방식의 TR 파워는 별로 많지 않고, 60W를 내는 패스의 XA60.8은 모노블록으로 매우 호화로운 사양이다. 정말 클립쉬가 좋다면, 이 정도 파워를 걸어줄 만하다. 그리고 클래스AB의 INT60이라는 인티앰프도 있으니, 이 또한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비를 고려하면, 양질의 진공관 앰프가 좋다. TDL-M88은 그런 면에서 안성맞춤이다.
TDL-M88의 음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클래스A 설계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출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음질은 신뢰할 만하다. 무려 100dB의 감도를 갖고 있는 KLF-20에 걸어보면, 앰프 자체의 성격이나 장점, 그리고 결점까지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TDL-M88은 제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클립쉬뿐 아니라, 알텍, JBL 등 혼 타입 스피커와 좋은 궁합을 보일 것이다.
단, 라우드니스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 클래식이나 보컬의 경우, 라우드니스를 절대로 쓰지 말라. 괜히 스위치를 올렸다가 어수선한 음을 들을 수 있다. 팝이나 재즈도 큰 볼륨으로 들을 때엔 라우드니스가 필요 없다. 단, 낮은 볼륨으로 들을 경우, 라우드니스가 유용하기는 하다. 물론 이것은 애호가의 공간에 따라 또 취향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인생도 그렇고, 오디오도 그렇고, 이론보다는 실천이다.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한편 TDL-M88을 가져다 놓고 보니, 우드 케이스에 담긴 디자인이 KLF-20과 잘 매칭이 된다. 아니, 한 쌍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클립쉬의 다른 제품과 짝을 이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드 케이스의 재질이나 마무리가 각별하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밤에 불을 켜놓고, 마일즈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를 듣고 있으면, 미터기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 전체적으로 개방적이고, 시원시원하면서도 진공관만의 포실한 감촉이 함께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듣게 된다. 차제에 턴테이블을 구해다가 아날로그의 진미도 맛볼 생각이다.
P.S.) “그래도 음식점 몇 개는 건재하지 않습니까?”
함께 명동을 돌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지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 명동 돈가스, 하동관, 명동 교자, 충무 김밥, 명동 영양센터 등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오향장육과 물만두에 공부가를 더해서 오랜만의 명동 나들이를 자축했다. 그래도 명동은 명동. 뭔가 다른 지역에 없는 낭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인심이 각박해져도, 뭔가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뇌리에는 아직도 TDL 어쿠스틱스와 클립쉬의 랑데부로 펼쳐지는 모던 재즈의 음이 흐르고 있었다. 또 그 당시 이곳에 성업 중이던 <디아파송>과 <부루의 뜨락>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음반을 구하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쩌면 내 오디오관의 시작이 바로 이런 데에 있지 않을까 반문하며 가을 저녁을 공부가와 함께 즐겼다.

 

문의 TDL-하츠필드 (010)6832-3083
가격 335만원   사용 진공관 KT88×4, 12AX7×1, 5814(12AU7)×2   실효 출력 25W+25W, 클래스A   USB 입력 PCM 32비트/384kHz   주파수 특성 10Hz-42kHz(-3dB)   THD 1%(1kHz)   S/N비 91dB   입력 감도 290mV   입력 임피던스 100㏀   출력 임피던스 4Ω, 8Ω   크기(WHD) 40×19.7×38.5cm   무게 2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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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8년 11월호 - 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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