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L Acoustics TDL-M88 Hartsfield
상태바
TDL Acoustics TDL-M88 Hartsfield
  • 월간오디오
  • 승인 2018.05.01 00:00
  • 2018년 5월호 (550호)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설의 하츠필드를 기억하며

살아가면서 가끔씩 ‘양’이냐 ‘질’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를 겪게 된다.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오디오 애호가라면 서브시스템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갖고 싶어 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저마다 매력적인 오디오 기기들이 생긴 것처럼 서로 다른 소리를 내기에, 애호가들이 다양한 시스템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올망졸망한 시스템으로 번갈아 음악을 듣다보면, 다 팔아버리고 똘똘한 것 하나로 바꾸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갈등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디오에서 ‘양’과 ‘질’의 문제는 오디오 기기의 대수보다는 출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문제와 통한다. 음질은 좋지만 출력이 작은 앰프와, 음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출력이 높은 앰프가 있다고 쳤을 때 여러분은 어떤 앰프를 선택하겠는가? 물론 이 문제는 애호가마다 리스닝 공간의 크기나, 평소 음악을 듣는 음량의 크기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겠지만, 이에 따른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리 간단한 문제라고도 할 수 없다.
음질도 좋고 출력도 큰 앰프를 사용하겠다고? 물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기의 가격은 천정을 뚫고 올라가 버릴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애호가들이 모두 수억대의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오디오는 재미있다. 오디오가 돈만 갖고 된다면, <월간 오디오> 같은 잡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더 나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항상 뭔가 괜찮은 게 없을까 기웃거리고 있다.
앰프의 출력이 커지면 가격도 상승한다. 하이엔드 반도체 앰프들은 출력석을 다수 사용하여 출력과 전류 공급 능력과 같은 ‘양’을 향상시킨다. FET나 출력 트랜지스터는 편차가 많은 부품이므로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질’을 높이기 위해 이를 선별하여 사용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므로 제품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진다. 하지만 이렇게 물량투입형 앰프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일반적인 애호가들에게 과연 이 정도의 ‘양’이 필요한 것일까?
진공관 앰프들도 마찬가지로 반도체 앰프처럼 출력관의 개수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진공관은 출력석보다 사이즈가 워낙 크고, 발열량도 크므로 출력관의 개수를 늘리는 데 실용상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시중에 유통되는 앰프들을 보면 대개가 출력관을 하나 사용하는 싱글 앰프이거나, 채널당 두 개씩 사용하는 푸시풀 방식이다. 이렇게 앰프의 형식이 제한되는 것은 큰 장점이 있다. 가격이 적정선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쓸 만한 앰프들을 고르다보면 ‘양’을 제한하는 대신 ‘질’을 추구하는 진공관 앰프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편이다. 즉, 출력은 작더라도 음질이 좋은 앰프가 좋다. 단, 내 경험에 의하면 앰프의 출력은 진공관 앰프 기준으로 15W는 되어야 한다. 송신관이나 특정한 진공관을 제외하면 싱글 앰프로 15W를 내는 것은 무리이므로 내가 추천하는 앰프들은 거의 모두가 푸시풀 구성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거실에서 웬만한 스피커들은 15W의 출력으로 충분히 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10W보다 작은 출력을 내는 앰프는 스피커를 선택할 때 음압이 높은 것을 가려 뽑아야 한다. 혹시 15W 정도의 소출력 앰프에서 형편없는 소리를 경험했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애호가는 아마도 앰프의 출력 부족이 아닌 음질이나 음색에서 실망했을 확률이 높다. 아니면 메이커에서 제공하는 앰프의 스펙이 과장되었을 것이다.
TDL 어쿠스틱스의 TDL-M88 역시 적당한 출력을 내면서 합리적인 가격표를 갖고 있는 진공관 앰프다. M88의 외형은 그리운 아날로그 시절을 듬뿍 담고 있다. 오디오 목공계의 장인 김박중 씨가 정교하게 다듬어 낸 우드 케이스와 그리운 오렌지색 조명이 비치는 커다란 아날로그 시그널 미터, 요즘 보기 드문, 가운데를 파낸 절삭 노브를 보면 아무래도 우리 시대의 제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친구라도 M88을 보게 되면 마음도 훈훈해질 것 같다. 아날로그는 남녀노소와 상관없이 자연의 품처럼 편안한 것이니까. 하지만 M88의 겉모습만 보고 레트로 타입의 진공관 앰프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M88은 최신 PC USB DAC가 내장되어 있고, 현대 앰프의 제작 이념을 가득 담은 ‘첨단’ 진공관 인티앰프이기 때문이다.
M88을 베이스로 하면서 ‘질’을 극대화한 제품이 나왔다. 바로 M88 하츠필드(Hartsfield)다. 하츠필드? 어딘가 낯익다. 제품 설명 전에 이 단어를 조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우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보면, ‘나는 글쓰기에 관한 모든 것을 데릭 하트필드에게서 배웠다’라는 말이 나온다. 하츠가 아닌 하트지만, 이 작가는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곰곰이 추측해보면, 재즈에 오랜 기간 심취했고, JBL 스피커의 유저인 하루키가 하츠필드를 모를 리 없다. 이것을 슬쩍 작가명으로 차용한 듯하다.
그렇다. 아무래도 하츠필드 하면, JBL의 명기가 떠오른다. 1954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애호가의 마음을 흔드는 전설적인 모델. 그런데 왜 하츠필드? 실은 나중에 JBL의 부사장이 되는 레이 펩이란 인물이 있는데, 그가 워싱턴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친구인 빌 하츠필드가 클립쉬혼을 애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자주 가서 귀동냥을 한 모양이다. 나중에 클립쉬혼을 바탕으로 신제품을 설계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츠필드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어쨌든 JBL 하면 재즈, 그러므로 TDL 어쿠스틱스에서 TDL-M88의 또 다른 버전인 하츠필드를 출시했다는 것은, 전 모델과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즉, 모델명에서 재즈나 록, 팝 등 다양한 음악을 보다 활기차게 재생하겠다는 포부가 있는 셈이다.
TDL-M88 하츠필드는 M88의 성공적인 런칭 후, 여러 진공관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롱 플레이트 타입의 멀라드 복각관 12AX7 진공관과 필립스 ECG 구관 5814(12AU7), 그리고 엔틱 셀렉션 사가 선별한 제네렉스 골드 라이온 KT88과 같이 매력적인 진공관들이 M88 하츠필드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제작자는 단지 진공관을 교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제작자는 음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커플링 커패시터에 주목했다. 비싼 오디오의 음이 누구에게나 맞지 않는 것처럼, 커패시터도 단지 값이 비싸다고 소리가 좋은 것은 아니므로, 교체한 진공관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플링 커패시터를 찾기 위해 명성 있는 커패시터들은 거의 모두 섭렵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산 클래러티캡이(ClarityCap CSA+6개 장착) 선정되었다. 이는 앰프 제작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제작자가 음악 애호가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성을 앰프에 이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M88 하츠필드는 음악적으로 더욱 충실한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소스기는 TDL 어쿠스틱스의 TDL-18CD를 사용했고, 스피커는 하베스 콤팩트 7 ES3을 동원했다. 첫 곡은 짐머만 연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확실히 스피커를 강력하게 움켜쥐고 있다는 인상이다. 비록 25W의 출력이지만, 순 A급 증폭 방식이 갖는 높은 음악성은 여기서도 톡톡히 발휘되고 있다. 넓고 광대한 오케스트라의 숲을 헤치고, 피아노의 음 하나하나가 영롱하게 빛난다. 그 음에 중독성이 있다. 다소 노스탤직하면서,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가감 없이 다가온다.
이어서 다이애나 크롤의 ‘I Remember You’. KT88답지 않은 유려하고, 완숙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확실히 KT88, 그것도 스베틀라나의 명성이 여기서 확인된다. 더블 베이스와 킥 드럼의 깊은 저역은 바닥을 확실히 두드리고,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비상은 무척 거대한 무대를 연출한다. 그 앞에 다소 함초롬하면서 세련된 크롤의 보컬은 확실히 감칠맛이 있다. M88 자체의 디자인은 약간 빈티지스럽지만, 재생되는 음은 무척 현대적이고 또 럭셔리하다.
마지막으로 건즈 앤 로지즈의 ‘Knockin' On Heaven's Door’. 이 밴드의 전성기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트랙이다. 그러나 아주 거칠지 않고, 적절한 음장과 음색으로 꽤 매력적인 재생음을 들려준다. 보컬은 다소 까칠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을 끌고, 절묘한 기타 리프는 피를 통하게 하는 강렬함이 있다. 여기에 파괴적인 드럼이 가세하면서, 무대를 꽉꽉 채운다. 확실히 하츠필드에 와서 이런 록과 팝에서 상당한 강점이 보인다. 특히, 스피커를 완전히 제압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서두에 양과 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연 하이엔드 앰프가 갖고 있는 대단한 ‘양’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내 대답은 일반적인 우리 리스닝 공간에서는 그토록 큰 ‘양’은 결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질’은 꼭 필요하다. 엉성한 댄스 음악을 하루 종일 들어도 좋다는 애호가들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 음악 감상의 본질은 양이 아니라 질이니까.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훌륭한 앰프, 게다가 합리적인 가격표를 갖춘 M88 하츠필드의 출현을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환영한다.

 

문의 헤르만오디오 (010)4857-4371   가격 335만원   사용 진공관 KT88×4, 12AX7×1, 5814(12AU7)×2   실효 출력 25W+25W, 클래스A   USB 입력 PCM 32비트/384kHz   주파수 특성 10Hz-42kHz(-3dB)   THD 1%(1kHz)   S/N비 91dB    입력 감도 290mV   입력 임피던스 100㏀   출력 임피던스 4Ω, 8Ω   크기(WHD) 40×19.7×38.5cm   무게 22kg

550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18년 5월호 - 550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