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nic L-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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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nic L-7000
  • 김편
  • 승인 2018.02.01 00:00
  • 2018년 2월호 (547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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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진공관 프리앰프란 바로 이런 것

프리앰프의 덕목은 무엇일까. 인티앰프를 쓰다가 프리·파워 분리형으로 넘어가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이 사운드스테이지 안길이의 확장과 음수의 증가, 디테일한 표현력의 상승이다. 그리고 프리앰프 급수가 높아질수록 녹음 당시의 미세한 공기감이나 악기 연주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느껴지게 된다. 음들의 윤곽선과 표면이 더욱 또렷해지고 매끈해지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 오디오 제작사 올닉(Allnic)의 진공관 프리앰프 L-7000을 들었다. 가격대로 보면 L-8000 DHT가 윗급이지만, 두 프리앰프는 가는 길이 서로 다르다. L-8000 DHT는 출력관뿐만 아니라 앞단의 전압 증폭관에도 직열 3극관(DHT)을 투입, 풀 DHT 프리앰프의 끝장을 봤다. 이에 비해 L-7000은 직열 3극관, 그중에서도 300B 진공관을 채널당 1개씩 투입해 정전압 회로를 극한으로까지 완성시킨 프리앰프다.
L-7000으로 정말 여러 곡을 들었다. 다닐 트리포노프 등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3중주에서는 피아노 타건음의 풍부한 잔향감에 이까지 시렸다. 리 모건의 명반 에서는 드럼을 연주하는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고, 손을 뻗으면 연주자들과 악기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필자 자신도 모르게 어깨의 들썩임과 발장단이 이어졌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잘 만든 프리앰프는 오디오 애호가들을 춤추게 한다.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프리앰프, 바로 L-7000이었다.

300B, 정전압관으로의 화려한 변신
L-7000의 첫 번째 키워드는 정전압 회로에 투입된 300B다. L-7000을 오디오 시스템에 투입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점이 ‘정숙도와 다이내믹 레인지의 증가’와 ‘사운드 스테이지의 확장’이었는데, 이는 좌우 채널로 완벽히 분리된 튼실한 전원부와 진공관 정전압 회로 설계 덕분이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앰프의 전원부는 ‘전원 트랜스 → 정류 회로 → 평활 회로 → 정전압 회로’로 구성된다. 이 중 정전압 회로는 말 그대로 입력 전압이나 부하 저항에 상관없이 출력 전압이 늘 일정하게 나오도록 설계한 회로다. 그리고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진공관 정전압 회로의 기본 개념은 이렇다. ‘입력 전압 → 정전압 진공관 + 피드백 회로(냉음극관 or 제너 다이오드 → 전압 에러 디텍터 → 정전압 진공관) → 출력 전압’.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정전압의 원리는 수도꼭지를 생각하면 알기 쉽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일정하게 나오는 게 정전압이다. 그러다 물이 많이 나오면 수도꼭지의 밸브를 조금 잠그면 된다. 이 밸브 역할을 하는 것이 위에서 말한 정전압 진공관이고, 밸브를 돌리는 사람 손 역할을 하는 것이 전압 에러 디텍터다. 한마디로 정전압 진공관(밸브)이 피드백 회로(사람 손)와 함께 작동되어, 결과적으로 항상 일정한 출력 전압(물)을 얻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이 출력 전압은 뒷단에 물린 앰프 증폭단의 진공관 플레이트에 가해지는 B전압이다.
L-7000은 이러한 정전압 진공관에 300B, 전압 에러 디텍터 진공관에 5극관인 5654를 썼다. L-7000이 빛나는 것은 바로 정전압 진공관으로 다름 아닌 300B를 썼다는 데 있다. 고음이 청아하고 미려한 음을 내주는 것으로 유명한 300B이지만, 300B의 또 다른 진가는 바로 이 정전압 성능에 있다. 1938년 오리지널 웨스턴 일렉트릭(WE) 300B가 탄생했을 때부터 이 진공관의 용도는 극장 영사 및 음성 설비의 신호 증폭과 정전압이었다. 1969년 생산이 종료된 오리지널 WE300B가 트랜지스터 시대가 활짝 만개했던 1981-1988년 화려하게 부활한 것도 미항공우주국(NASA) 내부 설비의 정전압 회로에 쓰기 위해서였다.
웨스턴 일렉트릭 역시 1940년대 초에 이미 300B를 정전압 회로에 투입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전설의 파워 서플라이 WE 20A다. 인터넷에서 그 회로도를 찾아볼 수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정전압 진공관에 300B, 전압 에러 디텍터 진공관에 5극관인 348A를 투입했다. 올닉의 박강수 대표가 L-7000 정전압 회로에 대해 ‘WE 20A를 현대적으로 개선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그러면 WE 20A, NASA, 그리고 L-7000은 왜 하필 300B를 정전압 진공관으로 썼을까. 이는 다시 수도꼭지의 원리를 떠올려 보면 된다. 물이 많이 나와 밸브를 손으로 잠그려 했는데 이 밸브가 뻑뻑하다면? 순간적인 대처가 안 될 것이다. 같은 원리다. 출력 전압이 기준치보다 높거나 낮아 전압 에러 디텍터관이 정전압 진공관 제어에 들어갔는데, 이 정전압 진공관의 내부 저항이 높다면 제대로 된 정전압 구현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즉, 정전압 진공관은 내부 저항이 낮아야만 미세한 전압 변화에도 플레이트 전류를 많이 흘려줄 수 있어, 순간적인 정전압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300B는 내부 저항이 700Ω에 그칠 정도로 극히 낮은 대표적인 3극관이기 때문에 전가의 보도처럼 정전압 진공관으로 즐겨 활용된다는 얘기다.

전원부와 증폭부, 완벽한 듀얼 모노 시스템
좌우 채널의 완벽한 분리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최종 귀착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좌우 채널의 상호 신호 간섭(크로스토크) 방지와 독립 전원부 구성에 따른 다이내믹스 확보를 위해서다. 한 섀시에 좌우 채널을 독립시킨 듀얼 모노, 아예 별도로 섀시를 구성한 모노블록, 심지어 전원부까지 별도 섀시에 담은 4블록까지 등장하는 이유다.
L-7000은 정전압 회로를 포함한 전원부를 모두 완벽한 듀얼 모노 시스템으로 구성했다. 즉, 전원 트랜스부터 정류, 평활, 정전압 전 과정을 채널별로 독립시킨 것이다. L-7000을 위에서 봤을 때 맨 앞 줄 2개의 커다란 트랜스가 올닉이 자랑하는 전압 변동률 1%의 전원 트랜스, 가운데 줄 양옆의 진공관이 전압 에러 디텍터관인 5654(가운데 2개 진공관은 증폭관인 E810F), 뒷 줄 양옆의 진공관이 정전압관인 300B, 가운데 2개의 트랜스가 올닉의 트레이드마크인 니켈 출력 트랜스다.
이러한 듀얼 모노 구성의 전원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대용량의 전원 트랜스다. L-7000이 전원부 뒷단에 정전압 회로를 구성하고 있지만, 이미 앞단에 투입된 전원 트랜스도 전압 변동률이 1%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압 변동률은 부하를 걸 때와 안 걸 때의 전압 차이를 말하는데, 당연히 이 수치가 작을수록 좋은 전원 트랜스다. 왜냐하면 만약 전압 변동률이 크다면 음악 신호에 따라 B 전압이 크게 출렁거린다는 것이고, 이는 오디오 신호를 다루는 앰프에서는 거의 재앙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증폭부도 듀얼 모노 시스템이다. 올닉의 프리앰프는 음질과 노이즈 유입 방지를 위해 전통적으로 단 1개의 진공관만을 증폭부에 투입하는데, 이번 L-7000에서도 5극관인 E810F를 좌우 채널에 1개씩 썼다. E810F는 내부 저항이 560Ω으로 낮으면서도, 전류 증폭률(gm)이 50mA/V를 보일 정도로 높아 1단 증폭에 자주 쓰이는 진공관이다. ‘전기를 컨트롤하는 전원부에 지금까지 써온 방열관 대신 직열관을 투입했다. 이에 맞춰 출력 트랜스도 중·고역이 좀더 아름답게 나올 수 있도록 개선했다’는 박강수 대표의 설명이다.

트랜스 프리앰프의 마무리, 니켈 출력 트랜스
듀얼 모노 시스템으로 전원부와 증폭부를 구성한 L-7000의 대미는 니켈 출력 트랜스가 장식한다. 올닉의 앰프들이 ‘진공관 앰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광대역에 저 왜곡, 빠른 스피드 특성을 보이는 것은 역시 이 니켈 출력 트랜스 덕분이다.
올닉의 모든 출력 트랜스는 니켈 트랜스, 정확히 말하면 니켈과 철의 합금인 퍼멀로이(Permalloy) 트랜스다. 퍼멀로이는 니켈과 철의 합금 비율에 따라 퍼멀로이PC(니켈 78% + 철 22%)와 퍼멀로이PB(니켈 50% + 철 50%)로 나누어지는데, 퍼멀로이PC의 니켈 78%는 오랜 실험 결과 초투자율(Initial Magnetic Permeability)이 가장 높게 나오는 비율이다. 퍼멀로이PC가 전력량이 적고 예민한 곳, 그러니까 L-7000을 포함한 프리앰프 출력 트랜스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 MC 카트리지용 승압 트랜스에 사용되는 이유다.
그러면 L-7000을 비롯한 올닉의 모든 프리앰프가 이처럼 출력 트랜스 방식, 즉 프리아웃(Pre-out) 트랜스포머로 출력단을 마무리하는 것은 왜일까. 이는 출력 트랜스 방식은 전압뿐만 아니라 전류까지 흐르므로 뒷단에 전력(W=I×V), 즉 에너지를 더 많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파워 앰프를 강력하게 드라이빙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비해 커패시터 커플링 방식(C-R 결합 방식)은 단지 전압 결합 방식이어서 전력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출력 트랜스는 또한 출력 임피던스가 낮다는 장점도 있어, 인터 케이블을 덜 가리고 파워 앰프와 결합 시 노이즈 유입 가능성도 줄어든다.

접점부를 1개로 줄인 41단 은접점 어테뉴에이터
프리앰프의 또 다른 생명줄은 볼륨단이다. 올닉에서는 모든 프리앰프와 인티앰프의 볼륨단에 자체 제작 어테뉴에이터를 쓴다. 모든 접점부를 전도율이 뛰어난 은으로 처리하고, 각 볼륨 스텝마다 맞닿게 되는 접점부를 기존 2개에서 1개로 혁신한 41단 어테뉴에이터를 직접 제작한 것이다. 통상 어테뉴에이터는 안쪽 링과 바깥쪽 접점부, 이렇게 접촉 단자가 2개여서 음악 신호는 반드시 이 접점을 2번이나 거쳐야 한다. 이에 비해 올닉의 어테뉴에이터는 안쪽 링에 돌아가며 접촉하던 기존 구조를 고정 케이블로 바꿈으로써, 결과적으로 접점부를 바깥쪽의 단 1개로 줄였다. 그만큼 음질 왜곡의 여지를 처음부터 줄였다는 얘기다.

시청
소스기기로 루민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T1과 올닉의 D-5000 DAC, 올닉의 M-3000 MK2 모노블록 파워 앰프, 스피커로 윌슨 베네시의 디스커버리 2를 동원, 평소 듣던 음원을 여러 곡 집중 시청했다. 콘체르토 쾰른이 연주한 요한 안드레아스 카우클리츠의 만돌린 협주곡 라장조에서는 심지가 굵고 튼실한 음이 쏟아져 나온다. L-7000이 전체 시스템의 무게 중심을 흔들림 없이 잡아주고 있다. 악기들의 높이가 상당히 높게 느껴지며, 만돌린이라는 악기가 일체의 색 번짐이나 흐릿함 없이 또렷하게 제 음색을 뽐내고 있다.
피에르 불레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의 불새 중 카세이 무리들의 지옥의 춤을 들어보면,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곳곳에 입체적으로 뿌려주는 대목부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안길이는 물론 위·아래 높이까지 확연하게 그려진다. 또한 음들이 어디 걸리적거리거나 달라붙지 않고 매끄럽게 뛰쳐나오는 모습은 마치 도약력 자체의 수준이 다른 넓이뛰기 선수를 보는 것 같다. 포물선 자체가 크고 시원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4K UHD TV를 통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인상.
파트리샤 바버의 ‘Summertime’에서는 좌우로 흔들리는 셰이커의 리듬감과 베이스의 두터운 파동음에 오디오적 쾌감이 일단 급상승한다. 바버는 일체의 빅마우스 현상 없이 실물 크기로 등장해 발음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들려준다. 파워 앰프를 포함한 노이즈 관리는 그야말로 극한의 수준. 아무리 잘 만든 인티앰프라도 도저히 못 따라갈 이 공간감과 음들을 잘게 뽑아내는 능력이 기막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3중주에서는 음의 가닥수가 정말 많게 느껴졌고 ‘어 다르고, 아 다른’ 악기 연주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총평
L-7000으로 ‘The Sidewinder’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홀로그래픽하게 펼쳐진 가상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리 모건의 트럼펫이 왼쪽에서 쑤욱 필자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넘어서는 안 될 금도를 침범당한 느낌. 그런데 이 느낌이 싫은 게 아니라 자지러질 정도로 좋았다. L-7000이 전해준 이러한 현장감과 드럼 트럼펫 베이스 색소폰 피아노 등 이 곡에 담긴 모든 악기들을 다 받아주는 넉넉한 포용력과 여유에 정말 감탄했다.
정리해본다. 1) L-7000의 놀라운 정숙도와 드넓은 다이내믹 레인지. 이는 직열 3극관인 300B를 정전압 진공관으로 채택하고 전원 트랜스 용량을 더욱 늘린 결과로 보인다. 2) 현장 그 자체인 사운드 스테이지. 이는 진공관 정전압 회로를 듀얼 모노로 확장한 덕분으로 보인다. 3) 올닉 프리앰프 특유의 디테일한 재생력과 빠른 스피드. 이는 내부 저항이 낮고 전류 증폭률이 높은 5극관 E810F로 1단 증폭을 한 뒤 니켈 출력 트랜스로 커플링한 설계 방식 덕분으로 보인다. 맞다. 올닉의 L-7000은 듣는 내내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그런 웰메이드 진공관 프리앰프였다.

 

총판 오디오멘토스 (031)716-3311   가격 1,400만원   사용 진공관 E810F×2, 300B×2, 5654(EF95, 6AK5)×2   아날로그 입력 RCA×3, XLR×2   아날로그 출력 RCA×1, XLR×2   주파수 범위 20Hz-20kHz   S/N비 -90dB   전압 게인 +20dB   THD 0.06%(0.3V)   입력 임피던스 10㏀   출력 임피던스 150Ω   크기(WHD) 43×17.3×41cm   무게 1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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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8년 2월호 - 5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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