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DAC-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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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DAC-9730
  • 김유겸
  • 승인 2016.12.01 00:00
  • 2016년 12월호 (533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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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폰 사용자의 리얼 청음기

출시된 해가 2013년이니 DAC-9730은 이제 4년이 다 되어 가는 노장이다. 디지털 소스의 스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과연 바쿤의 노장 D/A 컨버터는 어떨까? 최근 접했던 몇몇 바쿤 앰프들의 소리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던 DAC이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리뷰를 위해 DAC-9730을 받아들었다.

DAC-9730의 외관
처음 물건을 보고 그 크기에 놀랐다.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물건인 줄은 알았지만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컸던 것. 책상 위에 놓으니 원래 한 덩치 한다고 느껴졌던 올닉 HPA-3000GT가 귀엽게 느껴질 정도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코드의 2Qute는 DAC-9730에 비하면 아기 수준. 물론 거치형 DAC이기에 사실 사이즈가 크다고 해서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DAC-9730은 바쿤 기기답게 RCA 출력과 사트리 출력단(SATRI-LINK)이 달려 있는데, RCA와 SATRI-LINK가 동시에 출력된다. 바쿤의 성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전류 출력단인 SATRI-LINK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앰프도 바쿤의 것을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자 청음 환경에서는 RCA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밸런스 출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주문 제작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밸런스 출력단이 달린 제품은 DAC-9730D로 별도의 이름을 가진다. 밸런스단(XLR)을 추가할 경우 내부에 동일한 기판이 한장 더 올려져 2층으로 겹쳐진다고 한다. 기판이 추가되는 만큼 가격도 일반 모델에 비해 꽤나 상승하는 편이다.
전면부 왼쪽부터 입력단 설정, 게인 조절, 전원 노브가 위치한다. 바쿤 특유의 짙은 주황색 베이클라이트 노브는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대여 제품이라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인지 노브의 색이 진하게 익어 있었다. 전원 노브 옆에 현재 재생되는 음원의 샘플링 주파수를 표시하는 LCD 화면이 있는데,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녹색 화면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바쿤 프로덕츠의 제품은 디자인 측면에서 호 불호가 갈릴 만하다. 누구의 눈에는 21세기에 맞지 않는 올드한 디자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눈에는 이 디자인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볼수록 정감이 가는 자태랄까. 적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는 디자인이니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DAC임에도 게인 조절 노브가 달렸다는 점이다. 디지털로 볼륨을 조절하는데, 간단한 내부 조작을 통해 게인을 최대치에 고정시킬 수도 있다. 리뷰 제품은 이미 그렇게 세팅되어 있었는데, 음질적으로 좀더 낫다고 한다.
디지털 입력은 USB, 동축, 광 입력을 지원한다. 이번에는 맥북 프로와 USB로 연결하여 청음했다. 최대 샘플링 주파수는 24비트/192kHz까지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에서도 DSD를 지원하는데’라는 생각에 애초에 구매 목록에서 제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DSD 미지원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다(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사트리? 사트리!
이제는 기기의 내부를 좀 살펴볼 차례이다. 바쿤은 사용자에게 공부를 시키는 제품이다. 이전에 바쿤의 헤드폰 앰프를 리뷰할 적에도 생소한 개념들이 너무나 많아서 하나씩 알아보느라 고생한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이런 경험들 덕분에 조금은 낯설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DAC 칩은 TI 사의 버 브라운 PCM1792가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고급 칩이었겠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최신형의 DAC에 비해서는 스펙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도 칩의 스펙을 살펴보면 SNR, 다이내믹 레인지, THD+N 뭐 하나 떨어지는 스펙은 절대 아니다.
바쿤의 제작자인 일본의 나가이 씨는 DAC 칩의 성능보다는 이후의 아날로그단이 음질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FPGA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DAC 모듈을 구성하는 기업을 제외하면 DAC 모듈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제품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음질의 차이는 확연하다. 동일한 DAC 모듈을 사용하면서도 이러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이후의 과정이 음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자료를 조금 검색해 보니 애초에 SATRI 회로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DAC를 개발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 ‘얼마나 정확하게 시간의 흔들림 없이 소리를 전달하는가’ 이는 많은 오디오 기업들이 현재까지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업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데, 바쿤의 해답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나왔던 것이다. 바로 SATRI 회로, 네거티브 피드백이 없는 전류 증폭 방식으로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25년 역사의 SATRI 회로이니, 달인의 경지는 가뿐하게 뛰어넘은 셈이다.

편안함, 자연스러움
청음에 사용된 환경은 다음과 같다. 소스기기로는 맥북 프로의 오디르바나 2.0, DAC은 바쿤 DAC-9730, 헤드폰 앰프는 올닉 HPA-3000GT, 헤드폰은 포칼 유토피아이다. 직접적인 비교는 가지고 있는 코드 2Qute와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청음기의 몇몇 부분은 소리를 사진에 비유해서 묘사해볼까 한다. 아무래도 청각적인 요소를 시각적인 것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코드 2Qute는 깨끗하고 선명한 소리를 들려주는 좋은 기기이다. 소리의 강약 대비 표현이나 깨끗한 음의 표현력 등이 2Qute의 장점이다. 사진으로 치면 원본에서 채도와 샤픈을 살짝 강조한 느낌과 유사하다. 날카로운 음선 덕에 악기의 분리도도 좋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대 공간의 앞·뒤까지 활용하는 공간 표현이 부족하다. 아마도 깨끗한 기음의 표현에 비해 부족한 배음 표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들었던 동사의 Hugo TT와 비교하면 악기의 잔향에 대한 처리에 한계가 있다.
얼마 전 웨스톤 W80 청음한 적이 있다. W80은 무게 중심을 아래로 유지한 채 고음역대의 BA를 늘려 배음의 표현력에 초점을 맞춘 결과 무대의 입체감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바쿤의 DAC-9730도 그러한 예가 아닌가 한다. 기음뿐 아니라 잔향의 표현까지 자연스럽다. 덕분에 2Qute에 비해 무대의 입체감이 살아났다.
DAC-9730은 음역대 전체에 걸쳐 쨍하고 날카로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분히 무난한, 편안한 소리 표현에 가깝다. 고음부의 표현 역시 마찬가지인데, 굉장히 듣기 편한 고음의 찰랑임이었다. 그러한 가운데에도 곡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좋다. 앨범을 들을 때에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 이런 걸 ‘음악성’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베이스의 둥둥거림, 드럼의 찰랑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전체적으로 조화가 훌륭하다.
바쿤의 소리를 사진에 비유하면 사진 어느 한 부분 계조의 무너짐이 없이 선형적으로 잘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만큼 소리들의 연결이 부드럽다. 만약 소리 표현이 뭉뚝하기 때문이라면 비트 중심의 팝 계열 곡을 들었을 때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리듬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소리의 결이 자연스러운 것과 뭉뚝한 것은 확연히 다르니까….
이러한 바쿤의 매력은 포칼 유토피아와 궁합이 잘 맞았다. 우선 무대의 앞·뒤 공간 표현이 좋다. 필자가 느끼기에 유토피아는 볼륨의 스위트 스팟이 좁은 편이다. 일정 볼륨 이상이 되면 무대가 소리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넘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을 보완해준 것이 바쿤 DAC-9730이 아닌가 한다. 볼륨을 어느 정도 올려도 공간을 풍성하게 채운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전처럼 넘친다는 느낌이 덜하다. 이 부분은 필자가 원래 볼륨을 작게 맞추어 듣는 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효과도 결국 무대 표현과 연관이 되는 것 같다. 유토피아가 제공하는 3차원적 공간을 온전히 이용하는 데에서 오는 효과인 듯하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한 배음 표현의 정확성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DAC-9730의 단점이라면 우선 쨍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선율이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만 해도 2Qute를 사용해 오다가 바쿤으로 바꾸니 우선 음선의 날카로움이 덜어졌다는 것이 바로 체감되었다. 기존에 강렬한 음색을 선호한다면 입맛에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듣기 편한 소리가 반드시 좋은 소리는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면서 소리에 대한 평가를 마치려 한다. 어디 한 번 나그라와 비교해 볼까? 나그라의 소리를 장시간 집중적으로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지난 번 헤드폰 페스티벌 때 일찍 도착한 덕에 조용한 가운데에서 들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 보면. 나그라와 유토피아 조합은 꽉찬 밀도감, 선명한 음선, 어느 하나 연하지 않은 진한 음색 등 여러모로 완성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조합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래 듣기에는 조금 과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한 시간 내내 소리로 마사지를 받는다면 나그라에 눌려 몸이 물렁물렁해질 것 같다. 그에 비해 바쿤은 모든 면에서 조금씩 덜어낸다. 밀도감 조금, 진한 음색도 조금, 음선 역시도 조금 덜어서 오래 들어도 부담이 없는 소리이다. 실제로 주말 동안 4-5시간 연속해서 음악을 들었을 때에도 부담이 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나그라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그렇게 꽉 찬 소리를 내어주면서도 강약 조절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약한 소리조차 뚜렷한 존재감 속에서 표현하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바쿤은 전체적으로 힘을 좀 빼서 소리에 여유가 느껴진다.

자연스러운 소리, 강렬한 인상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쿤의 부드러운 소릿결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간편하게 적으려 했던 청음기가 이렇게 길어졌나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이 있다면, 전자기기라 할지라도 무조건 최신 기기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점. 잘 만들어진 기기는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수입원 바쿤매니아
가격 475만원
아날로그 출력 XLR×1(DAC-9730D), RCA×1, SATRI-LINK×1
디지털 입력 USB×1, Coaxial×1, Optical×1
디지털 입력 지원 24비트/192kHz
크기(WHD) 34.9×9.4×39.7cm

533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16년 12월호 - 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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