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와 음악, 그리고 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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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와 음악, 그리고 나의 행복
  • 월간오디오
  • 승인 2006.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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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영모 씨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목표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 열심히 달려갔고, 그 행복이라는 틀 속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충족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굳게 믿으며 착각 속의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을 알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내가 그토록 찾아왔던 행복의 기준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음악, 그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가.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의 행복’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음악, 그리고 행복을 전해주는 오디오. 그가 TR이어도 좋고, 진공관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소리가 강물처럼 맑고, 투명하고, 깊고, 은은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생각하게끔 해줄 수 있으면 된다. 또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다. 내 내면의 멋을 느끼게 해주고, 미래를 오랫동안 함께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여건에 있으면서도,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음악을 알게 된 것을 어찌 보면 큰 행운이 아닐까.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내가 택한 취미가 아니라, 운명처럼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여 내 영혼이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도록 큰 선물을 준 것 같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메인 시스템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반려자가 가슴을 열고 나를 반기는 것이다. 가족과 오디오 그리고 음악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혼자 시작한 오디오와 음악생활
오디오 취미의 시작은 대부분 누군가의 영향이나 권유로 오디오다운 오디오를 접하면서 빠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외롭게 출발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테크노 마트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구경삼아 들어간 곳이 바로 수입 오디오 숍. 평소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세계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곳에서 잠깐 들려준 레베카 피존의 ‘스페니쉬 할렘’은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천상의 소리랄까. 가끔 집에서 그 음악을 들을 때, 그때 그 광경이 펼쳐져 나를 즐겁게 한다.
지금 생각하면 신혼 때 사용하던 미니 컴포넌트, 그리고 집 평수를 늘려 이사할 때 장만한 롯데 매니아 풀세트, 이것만으로도 모든 음악을 듣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만족 그 자체였는데….
AV로 시작했지만, 음악 듣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하이파이 세계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디오 숍을 기웃거렸고, 그곳에서 잠깐씩 음악을 들으며 귀 호강시키는 일이 왜 그리도 좋은지…. 지금 생각해도 참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그러다가 인터넷 오디오 동호회(하이파이 뮤직)를 알게 되면서, 견문도 넓혀 갔고, 여러 기계를 귀동냥하는 기회도 많아져, 나의 오디오력은 조금씩 높아갔다.

언제 봐도 흐뭇한 나의 아날로그
아날로그는 나에게 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턴테이블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다. 토렌스 320으로 본격적인 아날로그 라이프를 시작했는데, 그 때 한 장씩 모은 LP가 지금은 800장이 넘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린 LP12는 나 같은 초보에게는 과분하지만, 아날로그의 실력향상을 위해 더 없이 좋은 기기라고 생각한다. 에코스 암과 아키브 카트리지에 린 린토 포노 앰프로 잘 사용하지만 100%의 성능을 뽑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세팅 공부를 더하고, 링고 파워 서플라이를 업그레이드하여 최상의 아날로그 음을 만들고 싶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케이블은 아직 고급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업그레이드를 위한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는 부분이다(차후 케이블을 하나하나 구해가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개척할 예정). CD 플레이어와 프리 단에 카다스 골든크로스 인터커넥트 케이블 외의 모든 케이블은 전문가들의 자작 케이블을 쓰고 있는데, 그 중 현재의 시스템에 잘 맞는 것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교체 후보는 스피커 케이블인데, 이것을 교체하면 좀더 투명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좋은 것들을 물색 중이다.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전원장치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 집의 전압은 저녁에 205V까지 떨어진다. 기계 보호와 안정된 전원을 위해 파워텍 전원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경험상 벽에 직접 꽂을 때 음질이나 음색은 더 좋다. 하지만 파워감이나 다이내믹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원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더 좋은 전원장치가 합리적인 가격대로 공급된다면 다른 기기로 교체할 예정이다.

나의 메인 시스템
짧은 오디오 경력인지라 많은 기기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내 음악 경향을 정해놓고 즐기는 편이다. 마크 레빈슨 20 파워 앰프, 마크 레빈슨 26 프리앰프, 마크 레빈슨 39L CD 플레이어와 B&W 매트릭스 801은 나에게 ‘하이파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것을 알게 해준 시스템이다. 마크 레빈슨 앰프의 따뜻한 음색과 고급스러운 고음, 안정된 음장 등은 나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주었으며, 이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었다. 801의 저역을 통제하기 위해 나름대로 도면을 그려 철공소에서 제작하여 탁월한 효과를 보았다(801 스피커와 스탠드는 동호인 후배의 집에서 호강하고 있다).

음악성이나 음질, 음색에 있어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디자인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B&W 노틸러스 801을 더럭 들여 놓아버렸다. 나는 B&W 스피커를 좋아한다. 다들 B&W의 소리가 모니터적이고, 중립적이고, 맛이 없는 범생이 스피커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B&W만의 색깔이 느껴져 이 브랜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W 스피커만의 중독성이랄까. 하지만 마크 레빈슨 20으로는 노틸러스 801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중고역은 예쁘고, 훌륭하지만, 볼륨을 많이 올리면 저역은 버벅거리고, 중고음은 쏟아지는 등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적은 비용으로 좋은 효과를 바라는 마음에 한동안 여러 기기를 물색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소닉 프론티어즈 파워 3과 마크 레빈슨 26SL로 교체했다. 처음 사용하는 진공관 앰프지만, 일단 사용하기 편하고 마크 레빈슨 26SL과의 매칭도 생각보단 훨씬 좋았다. 노틸러스 801을 고중저 전대역을 넉넉히 울려주었고, 소편성에서 대편성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좋은 매칭을 찾은 것이다. 소닉 프론티어즈 3는 진공관 앰프이지만 스피드도 뒷받침되고, 저음 통제력과 중고역의 밸런스도 좋고, 특히 진공관 특유의 부드러움이 자극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노틸러스 801을 물리는 데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스피커 아래의 알루미늄 바닥판 위에 LP 재킷 한 장씩 얹어 놓으면 저음이 단정해지면서 고역의 쏘는 부분이 감소되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탄노이의 매력에 빠져 들다
안방에서 조용히 듣기 위해 라디오로 시작하여 3/5a, AR, 탄노이 GRF 메모리, 인켈, 로저스 앰프, 네임 인티, 피셔, 마란츠 리시버 등을 거쳐 현재는 코너 요크 통에 탄노이 12인치 모니터 레드, 쿼드2+22, 티악25xn CD 플레이어, 마란츠 125 튜너, 토렌스 124(SME 시리즈 3, 슈어 15) 턴테이블을 갖춰 놓고 있다. 늘 이 시스템에 2%의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쿼드를 통해 탄노이로 흘러나오는 낙낙한 음악은 오히려 2%의 부족이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음악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탄노이를 들으면서 항상 뭔가를 느끼게 되는데, 사람들이 왜 ‘탄노이 음’이라고 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도 이제 ‘탄노이 음’에 빠져 들게 된 것이다. 탄노이에서는 클래식뿐 아니라 옛날 가요까지 촉촉하게 흘러 나와 오디오의 즐거움을 더욱 더 배가하여 준다. 쿼드 22 프리앰프는 음색이 약간 가늘게 느껴지고, 반응이 느려 약간 불만이다. 현재 다른 진공관 프리앰프를 열심히 물색 중이다.
토렌스 턴테이블은 서브 역할만 하지만, 암과 카트리지를 오토폰 297 정도와 SPU로 업그레이드한다면 메인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아내를 위한 또 하나의 작은 시스템
시스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내가 낮에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더없이 좋은 친구다. 스피커는 구형 린 칸 스피커. LS3/5a와 같은 크기의 촌스러운 보라색 그릴을 달고 있지만, 약간 빈티지적인 성향이 있어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앰프는 로저스(ecl86) 프리, 파워로 한동안 잘 듣다가, 이번에 광우 뮤즈 인티앰프로 교체했다. 힘은 좀 나아졌지만, 로저스 앰프의 고운 소리에는 미치지 못해 아쉽다. 로저스 앰프의 그 소리는 아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늘 FM 93.1에 고정된 쿼드 FM3 튜너는 소형 스피커 옆에서 예쁜 모습을 하고 늘 소박한 모습에 변함없는 옛 친구다운 소리를 내준다.
자주 듣는 음악은 클래식(기악부터 대편성까지 골고루 듣는 편이지만, 가끔은 가요나 팝도 들으면서 옛날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현악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바이올린과 첼로 파트가 들어간 음악을 특히 즐겨 듣는다. 차이코프스키, 베토벤, 브람스, 비오티, 모차르트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언제 들어도 좋다. 특히 2악장의 느린 곡들을 들을 때면 지친 내 심신의 피로가 모두 음악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기분의 전환을 위해서는 베토벤 7번, 쇼스타코비치 5번 등을 아주 큰 볼륨으로 즐긴다. 시원하게 울려 펴지는 다이내믹한 타격감이 좋다. 좋아하는 작곡가는 브람스다. 그의 네 개의 심포니를 골고루 듣는데, 절제 속의 아름다움은 언제 들어도 일품이다. 우울할 때는 스카를라티,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자주 듣는다. 종교적이지만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기 때문에 적적할 때 더없이 생각나는 음악이다. 좋아하는 지휘자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푸르트벵글러, 클라이버, 그리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오토 클렘페러. 이들의 연주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음악지식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나하나 즐겨 들으며 배워나가고 있다. 최근 오페라에도 관심을 가져 볼 생각으로 대중적인 오페라 DVD를 몇 개 골라 찬찬히 즐기고 있다.

오디오, 그 깨우쳐가는 즐거움
좋은 오디오 기기는 사진으로만 봐도 즐겁고, 언젠가 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 설레게 된다. 아는 분이 새 기기를 들였다 하면, 마치 내가 그 시스템을 장만한 것처럼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욕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내 시스템에 만족하면서 내 소리를 찾아 튜닝하고,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기쁨은 곧 나의 즐거움이리라.
오늘은 구렁이 줄은 아니더라도 케이블 하나 가져와 이놈저놈 물려 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테스트했다. 한참 그렇게 이런 저런 실험을 하다가 적절한 소리를 마침내 찾아내고 ‘바로 이 소리야’ 하고 감탄하면서 즐거워한다. 물론 하루 지나고 그 간절했던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순간만은 오디오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시스템도 이 마음을 아는지 내 눈에 들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 역시 음악은 머리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 같다. 이런 오디오 취미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풍요로운 마음의 결실이 있길 바란다.

▶▶ 오영모 씨의 시스템
스피커 B&W 노틸러스 801, 탄노이 모니터 레드 12인치, 린 칸
프리앰프 마크 레빈슨 26SL, 쿼드 22   파워 앰프 소닉 프론티어즈 파워 3,  쿼드 2
인티앰프 뮤즈 KI-40W   CD 플레이어 마크 레빈슨 39L, 티악 25xn  
DVD플레이어 파이오니어 DV-S747A   포노 앰프 린 린토   튜너 쿼드 FM3, 마란츠 125
턴테이블 린 LP12, 토렌스 TD124   케이블 카다스 골든크로스   전원장치 파워텍 PAV-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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