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tofon MC 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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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tofon MC Anna
  • 최윤욱
  • 승인 2014.07.01 00:00
  • 2014년 7월호 (504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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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혼을 그려내는 흔들리지 않는 품격의 세계

현재의 하이엔드 카트리지가 뛰어난 해상력과 섬세함을 무기로 안 들리던 소리까지 들려주는 것으로 치닫거나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음색을 무기로 마니아들을 유혹하는 상황이다. 안나는 이런 흐름과 상관없이 SPU로 보여주었던 진중한 심지를 극한의 해상력과 빠른 스피드까지 갖춰 보여준다. 취향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안나가 최고의 카트리지라는 점을 부인할 마니아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안나는 음악의 혼을 심지 깊게 그려내는 단연 돋보이는 이 시대의 최고의 카트리지다.

안나가 오토폰의 최상급 카트리지라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오토폰이 어떤 회사인가 MC 카트리지 탄생의 주역이자 현재도 세계 최대의 카트리지 메이커가 아닌가? 그런 오토폰이라는 회사의 최고급 카트리지라면 일단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기대를 품을 만하다.
안나라는 이름을 어디서 따온 것인지 전부터 궁금했다. 혹 안나 카레니나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알고 보니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것은 맞는데, 안나 카레니나가 아닌 러시아 출신의 현존 최고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에서 따온 것이란다. 현재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소프라노의 이름을 따서 안나라고 명명한데는 현재 생산되는 카트리지 중에서 최고의 카트리지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지상 최고의 카트리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서 안나 카트리지에는 다양한 기술들이 적용되었다. 우선 SLM이라는 공법으로 티타늄 판을 레이저로 녹여서 바디를 만듦으로써 바디의 불필요한 공진을 최소화했다. MC 카트리지는 자석이 만드는 자기장 속에서 코일이 움직이면서 전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그런데 바늘의 움직임에 의해서 코일이 움직이면 코일이 자기장에서 약간씩 벗어나면서 균일하게 전기 신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FSE라는 방식을 사용해서 코일이 움직여도 자기장이 균일하게 미치도록 했다. 안나 카트리지의 핵심은 WRD라는 것으로 코일이 감긴 보빈을 받치고 있는 댐퍼를 백금드럼과 실리콘을 사용해 반응이 아주 빠르면서 기민하게 움직이도록 했다. 캔틸레버는 가볍고 강한 재질인 보론을 사용했고, 중요한 스타일러스 팁은 리플리컨트 100이라는 커팅머신의 커터 팁과 비슷한 형태의 누드 팁을 사용했다. 궁금해서 현미경으로 확인을 해보았는데, 여태껏 봐오던 팁과는 모양 자체가 전혀 달랐다. 시골에서 논이나 밭을 가는 쟁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옆면이 아주 샤프한 형상이었다. 이것으로 커팅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안나 이전 최고 모델은 오토폰 창립 90주년 기념작인 A-90이다. 그런데 A-90의 스펙을 살펴보면 안나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A-90 카트리지의 무게가 8g인데, 안나는 두 배인 16g에 이른다. 출력 전압은 0.27mV에서 0.2mV로 더 낮아졌다. 안나에서 출력 전압이 낮아진 이유는 코일의 권선을 극도로 줄여 작게 만들수록 레코드 소릿골을 따라 예민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하이엔드 카트리지 제조사의 탑 라인 카트리지의 출력 전압은 한결같이 극도로 낮다. A-90의 침압은 2.0~2.5g이고 안나는 2.5g으로 약간 무거워졌다고 할 수 있는데, 침압과 직접 관련이 있는 컴플라이언스는 16(um/mN)에서 9로 확 낮췄다. 이런 데이터를 살펴보면 안나가 A-90과는 지향하는 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90은 가벼운 몸체에 캔틸레버가 부드럽고 쉽게 움직이도록 컴플라이언스를 높게 해서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의 음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안나는 두 배로 무거워진 몸체에 컴플라이언스를 확 낮춰서 캔틸레버의 움직임이 다소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몸체 무게가 무거워지면 캔틸레버의 움직임에 카트리지가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게 되고, 거기에 컴플라이언스까지 낮추었으니 심지가 굳고 단단한 음을 내게 된다.
과연 예상한 대로 음이 나올까 궁금해서 안나 카트리지를 그래험 2.0 톤암에 장착했다. 어라? 그런데 카트리지가 너무 무거워서 보조 무게추가 없이는 세팅이 불가능한 것이다. 부랴부랴 톤암 박스에서 보조 추를 가져다가 장착을 하고나서야 세팅이 가능했다. 승압 트랜스는 저임피던스에 저출력인 것을 감안해서 코터 MK2L을 간택했다. 평소보다 볼륨을 두 칸 정도는 더 올려야 비슷한 음량이 되었다. 예상대로 심지가 굳고 단정하며 그러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나왔다. 다만 아직 몸이 덜 풀려서인지 무대의 좌우 폭이 좁고, 악기의 음상이 스피커 연결선 앞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몸을 풀어줄 요량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얹어놓고 계속 돌려댔다. 대여섯 시간을 이렇게 돌리고 나서 들어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대가 뒤로 들어가면서 좌우 폭이 확 벌어졌다.
처음에는 주로 김광석이나 김두수 같은 보컬이나 마이클 라빈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품을 주로 들었다. 듣는 내내 귀를 쫑긋하지 않고 일부러 책도 보고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하는 식으로 해찰을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고가의 카트리지가 내주는 소리가 나의 귀를 얼마나 잡아끄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메인으로 사용하는 고에츠 우루시보다 음색에서의 매력은 약간 적은 듯하다. 고에츠가 여기서 음악을 들려주니 제발 들어주라는 식으로 자신을 뽐내고 호소하는 스타일이라면, 안나는 단정하고 기품 있는 사운드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테니 부담 느끼지 말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라는 스타일이다.

본격적으로 안나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저음이 많이 나는 음반을 걸기 시작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걸었다. 이 음반은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첼로가 낮은 저음을 낼 때 저음의 윤곽을 명확하게 내주기가 쉽지 않다. 우루시조차도 약간은 얼버무리는 듯하게 표현을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안나는 저음의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안나와 비슷한 가격대의 카트리지들도 저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들려주었지만 저음의 양을 줄여서 저음의 윤곽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안나는 저음의 양도 줄지 줄이지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음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낸다. ‘어라? 이것 봐라!’ 하는 느낌이 순간 스쳐간다. 아바도가 지휘하는 ‘봄의 제전’을 걸고 싶어졌다. 다행히 집엔 스마트폰에 열중인 아들밖에 없다. 볼륨을 올리고 봄의 제전을 만끽한다.
깊게 내려가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베이스 라인에 전후좌우 사방에서 빵빵 터지는 강렬한 현과 금관, 예측 불허로 터지는 팀파니의 혼란스러운 리듬, 한마디로 정신 사나움 그 자체다. 대부분의 경우 흐리멍텅하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서 이런 음악을 오디오로 듣기 거북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런 봄의 제전은 내 집에선 나온 적이 없다. 악기의 공간 배치가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나서 여기저기서 터지는 파열음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고 총주 시 엉키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따라가면서 즐겁게 즐길 수가 있었다. 봄의 제전이 주는 쾌감에 와인 한잔과 더불어 흥겹게 빠져 들었다.
음악을 들을 때 사람마다 중요하게 듣는 게 다른 법인데, 나는 특히 베이스 라인의 리듬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저음의 리듬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고 풀어지거나 벙벙거리면 음악 듣는 즐거움이 확 줄어든다. 이런 성향은 재생 음악인 오디오에 그치지 않고 실연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서울시향의 말러 2번을 듣고는 엉키고 흐트러진 베이스 라인 때문에 듣는 중간에 짜증이 확 밀려온 경험이 있다. 물론 이 공연 얼마 전에 한 서울시향의 말러 5번은 DG와의 녹음 계약 때문에 신경 썼는지 아주 좋게 들었지만 말이다. 안나로 듣는 저음은 한마디로 이놈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적당한 볼륨감으로 리드미컬하게 그려내는 저음을 듣다보면 시청이 아닌 몰입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결국 아바도가 지휘하는 말러 2번을 걸었다. 아마도 얼마 전에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실망한 기억 때문에 이 판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안나가 1악장 초입부터 자신의 진가를 확연히 드러낸다. 작렬하는 금관과 바닥을 긁어대는 현의 총주에서 쾌감이 몰려온다. 이 판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내 집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마지막 악장의 총주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담담하고 분명하게 아바도의 지휘임을 느끼게 해준다.
트랜스피규레이션의 오르페우스가 넓은 대역과 고음에 색채를 자랑하지만 깊고 묵직하다는 느낌은 없다. 에어타이트의 PC-1과 마이소닉의 하이퍼 엘리먼트는 극도의 해상력을 바탕으로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심지가 없어서 허전한 느낌을 준다. 얀 알러츠나 고에츠가 매력적인 음색으로 호소력이 뛰어나지만, 역시 대편성 곡에서의 정리 정돈 능력은 한계가 있다. 올닉의 퓨리타스는 극한의 해상력을 보여주지만 저음이 야위어 전체적으로 날아다니는 느낌을 준다.

오토폰의 안나 카트리지는 매력적인 음색으로 듣는 이를 확 잡아끄는 스타일은 아니다. 깊고 분명하면서 정확한 저음을 바탕으로 중립적인 음색의 중음과 빠르고 섬세한 고음이 얹어져 있다. 고음의 섬세함이 대단히 훌륭하지만 탄탄한 중음과 저음 덕분에 어떤 경우에도 소리가 들뜨거나 날리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심지가 곧고 중심이 무거운 음이라는 얘기다. 보통은 무게가 무거우면 둔하거나 스피드가 느려지기 십상인데 안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카트리지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장 사랑받는 카트리지를 들라면 단연 SPU일 것이다. SPU가 사랑받는 이유는 해상력이 좋아서도 아니고, 매력적인 음색이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U, SPU!’하는 이유는 덤덤한 듯하지만 묵직하게 음악의 혼을 그려내는 흔들리지 않는 심지 깊은 음을 내주기 때문이다.
안나 카트리지가 그려내는 음악의 세계가 바로 SPU의 심지 깊은 음과 맞닿아 있다. 극한의 해상력과 디테일, 그리고 빠르고 깊은 저음을 들려주지만 절대 오버하지 않고 진중하고 차분하게 음악을 표현하는 깊이감이 안나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사진 촬영 때문에 카트리지를 반납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는데,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하루를 더 듣고자 일부러 택배가 아닌 필자가 지불하는 퀵서비스로 카트리지를 잡지사에 보내야 했다.
현재의 하이엔드 카트리지가 뛰어난 해상력과 섬세함을 무기로 안 들리던 소리까지 들려주는 것으로 치닫거나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음색을 무기로 마니아들을 유혹하는 상황이다. 안나는 이런 흐름과 상관없이 SPU로 보여주었던 진중한 심지를 극한의 해상력과 빠른 스피드까지 갖춰 보여준다. 취향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안나가 최고의 카트리지라는 점을 부인할 마니아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안나는 음악의 혼을 심지 깊게 그려내는 단연 돋보이는 이 시대의 최고의 카트리지다. 

수입원 소비코AV (02)525-0704
가격 800만원  출력 전압 0.2mV  채널 밸런스 0.5dB  채널 분리도 25dB(1kHz) 
주파수 응답 20Hz-20kHz(-1.5dB)  컴플라이언스 9㎛  트래킹 포스 2.6g  내부 임피던스 6Ω 
추천 출력 임피던스 10Ω 이상  무게 16g

504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14년 7월호 -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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